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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범 Nov 10. 2023

질문을 권하지 않는 교육

영화 <디태치 먼트> 

영화 <디태치먼트>는 미국 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삶의 문제를 다룬 영화이다. 평범한 기간제 교사 핸리가 문제 학생이 많은 학교에 부임하여 겪는 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 수업에서 한 학생은 핸리에게 대놓고 욕을 한다. 한 학생은 핸리 앞에서 또래 여학생을 희롱한다. 희롱을 목격한 학생들은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토록 문제가 많은 학생들인데도 불구하고 핸리는 이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첫 에세이 과제의 주제로 ‘죽음’을 제시하고 학생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훈련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학생들이 삶의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여겨서다. 하루는 수업에서 핸리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짓을 알기 위해서는 잘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 예를 들어보자. 행복을 위해서는 예뻐져야 하고, 성형수술이 필요하고, 날씬하고, 유명하고, 패션 감각도 필요하다고 해.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창녀라고 불러. 진짜처럼 말하지만 거짓일 뿐인데도 말이지. 우리는 모두 이러한 혐오 마케팅 속에서 살아가. 이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죽도로 일하다가 끝마칠 거야.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무뎌지는 것과 싸우기 위해 배워야 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의식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출처: 왓챠 피디아


핸리의 말을 들은 학생들의 감명받은 표정이 영화를 끝까지 본 후의 내 표정과 같았다. 우리 교육이 어떻게 학생의 사유를 억제하는지 일깨워주었기 때문이었다. 설핏하면 폭력과 혐오를 일삼는 아이들도 사유와 자각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훈련받는다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우리 교육은 단 한 번이라도 가르친 경험이 있던가.


온갖 가짜 뉴스와 혐오 마케팅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생각하는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정과 분노를 격리한 채 이성과 논리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리적인 공동체의 의사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름을 이유로 상대를 악마화하고, 비인간화하는 혐오로부터 벗어나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토대 위에서 논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혐오를 매개로 분절되고 만다. 극단적으로는 전쟁도 가능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세기 초 독일 나치당과 히틀러를 당선시켰던 독일 대중의 선택이다. 1933년 초유의 인플레이션으로 많은 독일인들은 가난에 허덕였다. 이때 히틀러의 나치당은 이 모든 빈곤과 가난의 원인을 고리대금업으로 이윤을 창출한 유대인의 탓으로 돌리며 이들에 대한 인종청소와 과거 독일의 영광을 되찾는 것을 주장하여 총선에서 승리하였다. 당시 독일은 형식적 민주국가였으나 혐오를 숭상하는 정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을 만큼 대중민주주의의 시민성이 성숙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성을 바탕으로 사유하지 않으면 혐오에 익숙해지고 만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학생 개개인이 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을만한 시간적, 비용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 질문의 과정을 억압한다. 가장 대표적인 억압 중 하나가 수능제도이다. 지난 3월, KBS는 수능 도입 이후 30년 동안 출제된 문제를 모두 분석한 결과 학생들이 논리를 바탕으로 추론하여 문제를 푸는 것보단 정보처리, 연습, 암기를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문제가 출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고민하고, 대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론력과 논리력을 사용하기보단, 문제의 단순한 해결을 위해 암기를 하고 문제 유형을 분석하는 과정만을 요구한 출제 방식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독서와 토론을 배제한 정규 교과 강의는 학생 스스로 질문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억압하고 있다. 재작년 한 해 동안 서울시 양천구에서 고등학생들에게 ‘비판적 질문’에 관한 민주주의 교육을 하며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 학생은 현 교육 제도의 문제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단 한 번도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했을 때 학교에서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없었어요. 어느 날 선생님은 ‘성공하려면 공부를 해’라고 말을 했죠. ‘왜 성공해야 하나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때부터 저는 질문하고 싶지 않아 졌어요.”


다시 영화 <디태치먼트> 중 문제 학생들에게 돌아가 보자. 그 아이들은 결국 핸리를 통해 스스로 사고하여 혐오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났을까? 영화 스포일러를 기피한다면 지금이라도 이 글을 보지 않길 바란다. 자, 다시 물어보겠다. 아이들은 핸리를 통해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학생이 되었을까? 아니다. 실패했다. 핸리는 학교를 나왔고, 아이들 중 한 명은 독극물을 먹고 자살을 했다. 영화의 결말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사 단 한 명의 선의도 소중하나, 결국 시스템의 변화가 문제아로 치부되는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좋은 사회의 조건은 핸리와 같은 개인의 선의 보단 시스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출처: 왓챠 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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