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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찬 Apr 22. 2023

곰탱이와 방퉁이의 배틀

96.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4개월 가까이 산비탈 추위에 떨며 오매불망 기다렸던 봄이지만, 봄이 가는 건 순식간이다. 이제야 봄인가 싶더니 곧 여름을 문턱을 넘는다. 4월인데도 엊그제는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했다. 기후변화 탓일까, 나이 탓일까, 봄은 갈수록 짧아지고 아쉬움은 커진다.

아이는 언제나 봄이다. 할배도 덩달아 봄이다.

“매화꽃 지고 살구꽃 자두꽃도 지고, 하귤 꽃 지자 라일락 꽃도 덩달아 지고. 주원이 얼굴 보고 싶었던 친구들이 다 떠나가고 있어. 그래도 하나 남은 게 있어. 뭔지 알아?” “몰라.” “주원이 태어났을 때 심은 나무 있잖아.” “꼬마 사과?” “그거 말고.” “~.” “주원이 세 살, 네 살 때 좋아하던 노래 있잖아.” “~.” “주원이도 할아버지처럼 늙었나 봐, 어렸을 땐 자동차 번호판도 한두 번 보면 다 기억했는데. ‘~꽃 꽃잎에 싸여 어느새 잠이 든 낮달’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있었잖아.” “이제 생각났어. 돌배.” “맞아, 하도 오지 않으니까 다 잊어먹었나 봐. 그 돌배꽃이 지금 피고 있거든. 주원이가 올 때까지 남아 있을까 몰라.”

한번은 아이를 유혹한답시고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쏜살같은 봄날이 특별히 아쉬운 것은 피고 지는 꽃들 때문이라지만, 그런 하릴없는 애상은 아이가 등장하는 순간 종적을 감춘다. 세상에 아이만큼 신비한 꽃이 어디 있는가.

푸념이 효과를 발휘했나? 어느 날 아이가 엄마에게 산이네 가자고 조르더란다. 물론 아이가 내건 이유는 할아버지가 늘어놓던 꽃 때문도 아니고, 산 아래 동네의 파스텔톤 화사한 봄 때문도 아니었다. “산이랑 산책하고 싶어. 이번엔 백사실도 가고 (상명대) 뒷산에도 갈 거야. 두 밤 자고 와야지.”

그리하여 돌배꽃이 ㅔㅔ사라지기 전 아이는 세검정에 왔다. 물론 아이의 속셈에는 산이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고기국수다. 얼마나 간절했던지 아이는 피아노 학원 끝나고 엄마와 버스를 타고 제주면장으로 바로 왔다. “오늘 두 그릇, 아니 세 그릇도 먹을 수 있어.” 그러나 아이는 안타깝게도 한 그릇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러게, 피아노 끝나고 왜 쪼글이 오뎅을 먹긴 왜 먹었어.”

할배 나이지만, 간식 앞에서 넙죽 엎드렸다.

아이는 산이에게 줄 갖가지 선물을 가져왔다. 간식 두 종류에, 물면 병아리 소리를 내는 장난감, 애견 놀이용 플라잉 원반도 있었다. 그런 아이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산이는 머리로 아이 궁둥이를 밀어대고, 아이 주위를 돌며 킁킁댄다. “왜 이제 왔어?” 따지는 듯했다.

아이는 그런 산이에게 간식으로 보답했다. 덩치가 산이만 해졌다고 이제는 ‘앉아’, ‘엎드려’, ‘일어나’ 호령도 했다. 산이 나이는 13년 5개월. 아이보다 다섯 살 위지만, 사람 나이로는 여든이 넘었다. 할아버지다. 그런 산이를 아이는 서너 살 아기 다루듯 한다. 하긴 ‘앉아, 일어서’ 명령만 안 하지 할아버지도 그렇게 쥐락펴락하는데, 하물며 개쯤이야! 말 잘 따르는 산이가 할아버지보다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이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간식이 손에 있을 때만 넙죽 엎드리거나 벌떡 일어서지, 병아리 장남감이나 플라잉 원반을 던지며 가져오라고 시키면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다. 그럴 땐 꼭 ‘어른한테 그런 거 시키면 안 되는 거야!’라고 하는 것 같다.

아이는 이튿날 엄마 아빠 그리고 산이와 함께 넷이서 백사실에 다녀왔다. 집에서 제법 먼 거리였지만 돌아온 아이는 한층 더 신이 났다.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랑 놀았던 현통사 앞 너럭바위에서 산이랑 놀려고 했는데~ 쫑알쫑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음식 준비 때문에 동행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불통을 청소하고, 쓰다남은 소나무 각목을 잘라 쌓고, 그 위에 참숯을 얹어 놓았다. 바짝 마른 소나무 각목은 타오를 때면 불꽃놀이 할 때처럼 불꽃이 튄다. 지난해 노을공원 야영에서 아이의 기억에 가장 선명한 것이 그 소나무 각목 불꽃이었다. 철제 테이블 깨끗이 닦아내고, 식재료 쌓아둘 간이 탁자도 마련했다. 할머니는 애 아빠가 가져온 가리비로 찜을 하고, 상추 따서 겉절이 만들고, 돼지 목살과 함께 구울 버섯 손질했다. 잔치가 따로 없었다. 순전히 아이 한 놈 때문이었다. 아이가 오지 않으면 생전 불 피울 일이 없다.

산이가 궁금하다. '너 뭐하니?' '토마토 모종 몰라?'

아이는 잠깐 쉬고는 미리 준비해둔 열매채소 모종을 심었다. 고추, 토마토, 가지 각 4주씩이었다. 아이 오기를 기다리느라 고추는 한참 웃자랐다. 우리 텃밭이 비장한 아스파라거스도 땄다.  쌈채는 본 척도 안 하는 아이가 아스파라거스만큼은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이틀째 아이는 늘어지게 자다가, 상명대로 산이와 산책하자는 재촉에 군말 않고 일어났다. “집에 오는데 우리가 아까 갔던 길에 개똥이 한 걸음씩 똥, 똥, 똥 이렇게 떨어져 있더라고. 이건 분명히 산이 똥이야 라고 내가 엄마한테 말했어. 할아버지가 매양 산이가 여기저기에 똥을 떨어트리고 다닌다고 투덜댔잖아. 그래서 여기 주워왔어.”

아침 먹고는 아이는 일찌감치 돌아가야 했다. 엄마의 사촌인 이모네 아이들과 또 놀기로 한 약속이 있었다. 떠나기 전 아랫방에 혼자 내려가 피아노를 뚱땅거리더니, 밖으로 나와 다짜고짜 아쉬워한다. “나 집에 가고 싶지 않아.”

저 산(보현봉과 문수봉)

하긴 겨우내 언제 이사 가나 고민하던 할아버지도 봄만 오면 집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 신록의 산과 계곡, 맑고 투명한 개울, 그리고 온갖 꽃들. 게다가 언제 보아도 가슴 벅찬 보현봉과 문수봉 좌우로 펼쳐진 비봉능선과 형제봉 능선. 어디 가서 이런 풍광을 즐길 수 있을까. 물론 아이를 잡아끄는 건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아파트 단지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것들, 개와 함께 제멋대로 뛰어놀 수 있고, 피아노 제아무리 뚱땅거려도 걱정할 일 없고, 백사실로 상명대로 쏘다닐 수 있고, 아스파라거스에 가리비 구워 먹을 수 있고.

그러나 우리는 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엄마 아빠가 일어나면 아이가 먼저 현관문을 열고 나가리라는 것을. 게다가 오늘은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하늘이 시원이 쌍둥이와 놀 일이 있지 않은가. 그날 아이는 오전 11시에 엄마 아빠 삼촌, 두 이모네 부부 그리고 쌍둥이 동생들과 만나 밤 11시까지 놀았다고 한다.

저 꽃(모란)

“주원이 좋겠다. 지난주엔 봄이가 집에 와서 밤 새워 놀고, 다음 날엔 시헌이, 라온이네가 와서 앙카라공원에서 놀고 이번 주엔 이모네 쌍둥이가 와서 놀고. 어쩌면 그렇게 놀 게 많아?” “나도 주원이처럼 놀았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어이없다는 투고 한마디 날린다. “당신도 주원이처럼 매일 놀면서 어떻게 그런 소리 나와?” 아이가 고소를 머금고 한마디 더 날린다. “늘근이라서 나처럼 노는 거야?” “뭐? 늘그니?” ‘어린이’의 상대말이 ‘늘그니’라고 생각했나보다. 젊은이도 있으니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질 수 없다.

“주원이는 뭐야. 학교도 다니는 애가 만날 놀 생각만 하고.”

“나? 응애야.”

“초등학생 응애가 어딨냐? 응애가 뭔지 알아?”

“뭔데?”

“아무데나 응아(똥) 싸는 애를 줄여서 응애라고 해. 주원이가 똥싸개야?”

말 잘 듣는 할배 산이.

“할아버지는 늘그니, 늘그니.”

“주원아!” 아이 엄마가 곰탱이와 방퉁이의 막말 전쟁을 막아섰다. “할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말 하면 안 돼!”

아이의 개그가 이제 ‘늘그니 개그’ 수준을 넘어섰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묻더란다.

“할머니가 집에 없으면 할아버지는 뭐 먹어?” “아마 라면 끓여 잡수실 거야.” “라면 잘 끓여? 무슨 라면 좋아해?” “응 다 좋아해. 그런데 집에 김치찌개 있으면 김치찌개 라면, 된장찌개 있으면 된장찌개 라면을 끓여. 라면이라고 할 것도 없어. 그냥 잡탕이지.” “할아버지 라면 식당 내도 되겠다. 할배장인라면!”

‘늘그니’면 어떻고, 라면 식당이면 어떠랴. 봄이 가고 꽃이 지면 또 어떠랴. 언제나 따듯한 봄 같고, 언제나 싱싱한 청춘인 아이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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