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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찬 Mar 07. 2023

덜렁이의 첫 등교

93.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인수인계’ 절차는 까다롭다.  

보호자는 예정된 하교 시간에 학교에 도착해, 학교보안관 선생님에게 몇 학년 몇 반 누구의 보호자임을 알린다. 그리고 보안관실에 걸려 있는 내선 전화를 이용해 방과 후 돌봄 교실이나 방과 후 학교 교실 선생님에게 도착 사실을 알린다. 그러면 선생님은 어떤 아이의 어떤 보호자인지 확인하고 아이를 보내준다. 이에 앞서 학부모는 미리, 방과 후 누가 데리러 갈 것인지 학교에 통지해야 한다. 보호자는 보안관실 옆 공터에 있어야지, 교실은 물론 운동장 안에 들어가서도 안 된다. 용무가 있으면 학교의 동의 아래 보안관실에서 출입증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나쁜 목적을 가진 사람이 보호자인 척 학교를 드나드는 걸 막기 위함이다. 아이는 ‘위험 사회’의 입구에 서 있다.

찍는 게 남는거야. '으쌰' 엄마와 찍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한 것이겠지만 마음 한구석이 께름칙하다. 학교와 보호자 사이의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려는 뜻도 있지 싶어서다. ‘나 때는’ 아이들은 놔서 길렀다. 학교는 물론 들이건 산이건 마을 골목이건 부모, 형제, 이웃, 학교, 마을 공동체가 함께 보호했다.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누구라 할 것 없이 함께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고 위로했다. 그때 비하면 수백 배 잘 살긴 하지만 세태는 그 이상으로 험악해져, 학부모와 학교 사이에도 미묘한 긴장관계가 조성되어 있다.

첫날(3월 3일) 아이는 2시에 하교했다. ‘즐거운 우리 학교’ 3시간과 ‘중간놀이’를 한 뒤 ‘학식’을 먹고 돌봄 교실에서 놀다가 영어학원 시간에 맞춰 나왔다. 아이들은 보호자의 연락을 받고 교문 쪽으로 우르르 달려 나왔다. 헌데 우리 아이는 저만치 뒤에서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느림보 거북이처럼 태평스레 걸어왔다. 입학 전 잔뜩 긴장했던 모습은 종적을 감췄다. 

“오늘은 어떤 공부를 했어?” 

“응~, 딱 5분만 했어. 각자 소개하는 거. 누구는 앞에 나가서 발표하고, 누구는 그냥 공책에 썼어. 나머지 시간은 놀았어.” 

“중간놀이는 뭐 하는 시간이야?”

“화장실도 가고, 제각각 좋아하는 책 읽기도 하는 시간이야.”

“힘든 거 1도 없었겠네.” 

“그럼.” 

'예쁜 짓', 아빠와도 찍고

아이들은 대체로 보호자를 만나자마자 교문 밖 도로에 줄지어 서 있는 학원 버스로 갔다. 맞벌이 부모여서 2차 돌봄은 학원이었다.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보호자의 1차 역할은 아이를 인수하는 것과 학원 차까지 20~30미터를 에스코트하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는 영어학원이 끝나면 피아노(혹은 미술)학원으로 가야 했는데, 영어학원 차가 피아노학원이 입주한 상가 건물 앞에까지 데려다준다. 우리가 할 두 번째 보호자 역할은 피아노학원이 끝날 때쯤 상가로 가서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아이가 집에 와서야 알았다. 등교할 때 아이는 가방 메고, 실내화와 신발주머니 들고 물병 어깨에 걸치는 등 완전군장을 한 상태였는데, 가방만 딸랑 메고 있었다. 깜짝 놀라 물어보니, 아이도 그제야 없어진 걸 알았는지 당황했다. “어디에 두고 왔는지 기억나질 않아.” 1학년 교실엔 두고 간 물건이 천지라는데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찬찬히 기억을 되살려봐. 주원이는 오늘 교실 두 군데 갔었잖아. 공부하는 교실이랑 방과 후 교실. 어디에 두고 왔는지 잘 생각해봐.” “잘 모르겠어.” 아이 엄마와 할머니가 마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아이 아빠를 떠올리며 ‘덜렁이가 어디 가겠어?’

가방을 살펴보니 자크에 있던 열쇠고리(키티키링)도 없었다. 아이가 요즘 가장 애지중지하던 시나몬 꼬마 인형이 달린 열쇠고리였다. 

“응, 옆자리 친구한테 줬어.” 

“그거 주원이가 가장 좋아하는 거잖아.” “응. 그걸 달라고 해서 줬어.” 

친구가 먼저 팔목에 거는 고무밴드를 주길래 자기도 선물했다는 것이다. 

“뭘 줄까? 라고 물었더니 키티키링을 달라고 해서 그냥 줬어.” 

아이 엄마 입에선 들릴락 말락 한숨이 나왔다. 아이의 막무가내 선의가 걱정스러웠다. 달라는 대로 내주는 것도 문제이긴 한데, 그런 선의가 친구들에게는 만만한 아이로 보여, 이른바 ‘학폭’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도 찍고

“친구가 달라고 하면 물병도 줄 거야?” “~.” “군것질하게 돈 달라고 해도 줄 거야?” “~.” 처음엔 싱글거리던 아이가 엄마의 거듭된 추궁성 질문에 분위가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나 보다. “음, 물병은 내게도 필요한 거니까 ‘안 돼. 빌려줄 수는 있어’라고 할 거야.” “그래도 좋은데 이러면 어떨까 싶어. ‘이건 나에게도 필요한 거야. 네가 필요하면 엄마 아빠한테 먼저 사달라고 해.’ 그래도 ‘너와 안 놀 거야’라며 달라고 떼를 쓰거나, 네가 싫어하는데 억지로 가져가려 하면 위협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런 친구는 없었는데~.” “그런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해. 그럴 땐 이렇게 말해봐. ‘왜 내가 너에게 줘야 하지? 왜 네가 나에게 시키고 나는 왜 네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지? 선생님에게 물어볼까?” 아이는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등교 2일째인 월요일이었다. 엄마와 함께 교문을 들어서는데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엄마를 부르더란다. 마침 엄마는 ‘오늘은 무엇을 또 두고 올까?’ 걱정하고 있었다. 

“왜?” 

“응, 이제야 생각났는데 신발주머니와 실내화는 교실에 두고 온 거 같아. 선생님이 학교에 두고 가라고 했거든. 물병은 실내화 주머니에 넣어둔 거 같고.” 

“그래? 맞아. 자기 물건 함부로 버리고 다니는 주원이가 아니지. 주원이도 걱정했구나?” 

절친과도 찍었다

전날(3월 2일)은 입학식이었다. 간혹 할머니 할아버지가 동행한 아이도 있긴 했지만, 친가 외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동행한 아이는 없어 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래도 눈치가 보이는데, 아이는 든든한 백으로 생각했는지 제집 놀이터처럼 학교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맞다. 앞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할 손주가 주원이 말고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살아 있는 동안 손주의 학교에 와 볼 일이 언제 있겠으며, 입학식 졸업식 때 손주와 사진 한 장 언제 남기겠는가. 이런 생각에 입학 축하 현수막이 걸린 포토존이나 운동장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아이와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부산을 떨다 보니 우리가 교문을 나설 때쯤 학교 운동장엔 학부모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교문을 나서며 아이가 할머니에게 자랑했다. 

“강당에서 입학식을 했는데, 초콜릿 3개를 줬어. 하나는 딴짓하다가 못 받았다는 친구에게 주고, 나도 하나 먹었어.”

“그러면 하나 남았겠네. 그건 뭐 하려고?” 

“응, 아빠 주려고.” 

“그래? 할머니 주면 안 돼?” 

“할머니는 단 거 안 먹잖아.” 

“다크 초콜릿이던데, 그건 달지 않아.” 

아이는 당황했는지 할머니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렇게 능청을 떨었다.

“내가 먹어보니까, 끝 맛이 달아.”

할머니는 벙쪘다. 그러나 대신 입학이나 졸업 행사 뒤엔 빠질 수 없는 자장면을 청요리까지 곁들여, 아이 덕분에 배불리 먹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아이 엄마나 아이 삼촌이 대학을 졸업한 게 12, 13년이 됐다. 

등교 사흘째 아이는 물통과 물통 주머니를 찾아왔다. 실내화와 실내화 주머니는 학교에 두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숙제하는 걸 잊었다. 이튿날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엄마랑 초치기로 했지만 다 끝내지 못해, 생애 첫 숙제를 미완성으로 가져갔다.

'주원이의 즐거운 학교 생활을 위하여!' 할배 할매들의 손주 입학 기념 고량주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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