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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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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pr 04. 2021

홍길동이 된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복직 둘째날,

몸과 마음이 힘든 첫째날을 보내고

다행인건지 고단했던 나는 꿀잠을 자고 좀 더 나아진 컨디션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휴직 전 하던일을 다른 직원이 하는 덕에

나는 당장 바쁘게 업무를 할 일은 없었고 자잘한 업무들만 보면 되서 비교적 수월한 이틀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짬나는대로 오랜만에 친했던 직원들과 메신저로 인사를 나누곤 했다.

종종 화장실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 신기한 게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아기의 안부를 묻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휴직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냥 ‘안녕하세요’ 처럼 ‘아기 잘 커요?’ 한마디쯤은 물어볼 수 있는 일이었다.

복직을 하면서 제일 우려했던 부분도 그 부분이긴 하다. 그렇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는 사실 지금도 대책이 서있지 않다.


그런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 혹자는 슬슬 나를 피하는 것도 같다.

내 얼굴을 보고 반가워는 하나 못내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돌리거나 피하기도 한다.


딱 한명,

친했던 이사님께서 차 한잔 하자며

얘기 들었다” 한마디와 함께 말없이 차를 따라 주시며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셨다.

오히려 난 다른 누구보다 이사님께 너무 감사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와르르 무너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담담하게 웃어보일 수 있었다.

차라리 상황을 인정하고, 누구처럼 딴에는 위로한다고 1도 위로가 되지 않을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도 않으셨다.

다만 ‘얘기 들었다’ 한마디 속에 묵직한 공감과 위로만을 꾹꾹 눌러 담으셨다.

그렇게 한 잔 주시는 차는 온 몸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가시면서 어깨를 한번 툭 쳐주시는 것으로 마무리까지 완벽한 위로였다.


그런데 모두들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내 앞에서 어쩔줄 모르는 모습이 나에 대한 배려임을 알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어딘가 불편했다.


팀장이 그랬다.

혹시나 사람들이 아기 안부를 물어보면 그게 나에게 상처가 될까봐

본인이 여기저기 얘기 했다고. 심지어 팀장 미팅때도 (이게 왜 공식적인 팀장미팅에서 얘기해야 할 사항인지 모르겠으나).

그런데 이렇게까지 다들 묻지 않는것을 보니 팀장이 전사 공지를 했나, 방송을 했나 싶을 정도다.


사실 내 가까운 주위 사람들은 같은 팀 친한 동료와, 회사 친구가 혹시모를 참사(?)에 대비해

슬쩍 소식을 흘려줬을 거다. 그래서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하다.


그런데 그냥 화장실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의 다른팀 직장동료들 마저 그러는 것을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얘기를 했을지, 하면서 딱하게 여겼을지 혹은 그냥 불쌍하네 하고 넘겼을지. (그 무엇이든 상관없으나)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를 모르니 기분이 썩 편하진 않았다.


뭐 어쨌든, 부자연스럽지만 덕분에 조금의 불편함이 있을뿐 마음이 무너지는 일은 없어 다행이다.

뭐 더 지내봐야 알겠지만 아직까지는 고민하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 누군가에게 주목받는 것 싫어하고,

구설수에 오를 일도 한 적이 없는 내성적이고 비교적 평탄하게 살아온 나였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입에 오르내리게 되다니. 참.


근데 뭐라고 말하든, 불쌍하게 보든 사실 큰 상관 없다.

나에겐 이제 오늘 그만두면 내일 볼 일 없는 사람들의 시선 같은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가족, 친구 외에 더 중요한게 이제 없다.


-


인생의 큰 일을 겪으면서 삶의 우선순위가 더욱 단단해졌다.

그러니, 쫄지 말고 한발 더 나아가자.

쫄보는 우리집에 코아 하나로 족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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