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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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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May 19. 2021

‘나도 엄마를 많이 사랑해요’

복직한 지 4주가 되어 갈 때쯤.

뭔가 마음이 힘들다고 느껴졌다. 우울감도 있는 것 같고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회사에서 복지 포인트가 남은 김에 심리상담을 예약했다.

아주 오래전에 미술치료 심리상담을 받았던 그 센터에 신청할 수 있었다.


6년 전인가,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 때 처음 찾았던 심리 상담센터,

거기서 3개월 정도 집중 상담을 받고 이후에는 너무 힘들 때 가끔씩 찾았던 선생님이 있었다.

여리여리 해 보이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온화하지만 내면의 힘이 느껴지는 친한 언니 같은 선생님이었다.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부터는 크게 상담을 받을만한 일이 없고, 결혼 준비하느라 바쁘기도 했었고

그래서 한 2~3년 찾지 못하다가 작년 초였나 정말 ‘안부’ 차 그냥 선생님을 한번 만나 뵈러도 갔었다.

상담센터에 상담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수다 떨러 가는 기분이 드는. 그런 분이다.


선생님과는 많이 친해져서 이제 예약했다가 취소하거나 하면 선생님이 직접 핸드폰으로 무슨 일 있는지 전화도 주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참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나에게 참 든든한 자산과 같이 느껴졌다.


흘러버린 많은 시간 동안 센터는 이전을 했고, 지도를 보며 낯선 동네를 헤매다가 도착한 낯선 센터에서

낯익은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반가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오자마자 하나도 변하지 않은 선생님과 이런저런 안부를 물으며 서로 반가움을 표현하기도 잠시,

‘무슨 일 있냐’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나는 무장 해제되어 그간의 일을

마치 어디서 맞고 와서 구구절절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어린아이같이 와르르 쏟아내었다.


마음 아파하며 얘기를 듣던 선생님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겠네요’라고 첫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 나의 감정상태를 확인하시고는

가족과 다른 사람들 생각하느라 내가 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한 번쯤은 지난 얘기를 좀 하고 싶었다.

회사에서도 동료들이 모두 나의 상황을 알고는 있으나 이야기하기를 피하고 

물론 좋은 얘기가 아니고 감히 위로할 수 없어 그럴 것임을 이해하는 바이나,

나는 그래도 가끔은 얘기를 하며 아이를 그리워도 하고 잘 버텨내고 있는 나를 돌아보고도 싶었나 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남편과 할 수도 있겠고, 종종 그렇게 하는 편이나 그래도 서로 마음 아파할 것을 알기에

생각나는 것이 10만큼 이라면 남편과 나누는 것은 그중 2~3 정도였던 거 같다.


그리고 나는   마일리지처럼 쌓여만 있었던 그 간의 나의 마음들을  선생님께 모두 쏟아냈다.

선생님은 온전히 모든 것을 다 받아주었고 들어주었다.

얘기하는 중간중간 내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들 때쯤

선생님도 재빨리 눈물을 닦아내시는 것을 흘깃흘깃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또한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내가 울컥 눈물이 나려  때는 억누르고 참지 말고 쏟아내도 된다고.

 곳은 안전한 곳이니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한마디에.. 정말 오랜만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맘껏 울기도 했다.


감정이  추스러지고  , 선생님이 아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나는 오랜만에 아이를 추억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드렸고 그러는 동안 아이가  그립기도,

어느새 또 도치맘이 되어 사랑스럽고 기특하기도 했다.

나는 그 시간이 꽤 마음에 들었다. 너무 예뻤던 아기를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얘기를 듣던 선생님이 말했다.


“ 정말 아기가 천사였네요. 천사로 00 씨 가족에게 왔다가 임무를 수행하고 조금 빨리 하늘나라로 간 것 같아요”


정말 그랬다. 너무나도 배려심이 깊고 사랑스러운 아이였고 우리 가족에게 그냥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가족 간의 하나 됨과 사랑을 주고 갔다.

그리고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셨다.


“ 아기를 키워보니,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엄마를, 부모를 더 사랑해요. 너무너무 크고 무조건적인 사랑이에요. 아마 아가도 00 씨를 너무 사랑하고

00 씨가 가끔 짜증을 냈어도 그것이 엄마가 잠깐 힘들어서 그런 거겠지 하고 이해할 거고, 엄마 아빠가 본인을 너무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충분히 느꼈을 거예요”


“...”


아... 말을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에 미안했고, 마지막 그 날에도 내가 몸이 피곤해 짜증을 낸 것이 가슴에 사무치게 후회가 되고 미안했다.

내가 못해준 것만 생각났고 그것이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나를 많이 사랑했을 것이라는 은 정말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그 말 한마디가 또 나를 무너지게, 하지만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너무 고마웠다. 서툴고 못난 엄마를 사랑해주었을 아이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상담을 끝내고 오는 내내 아이도 나를 많이 사랑했을 것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맴돌며 나에게 깊이 자리 잡았다.

아. 나도 사랑받는 엄마였구나. 내가 사랑하는 만큼, 아이도 그 맘을 알아주고 날 사랑해줬었겠구나.


이상하게 그것이 나에게 너무나 큰 치유가 되었고 자유를 주었다.

무겁게 가지고 있던 죄책감도 조금은 짐을 덜 수가 있었다.


선생님은 한 달에 한번 정도라도 몇 번 더 세션을 가져보면 어떻겠냐고 하셨고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두세 번 정도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주말밖에 시간이 되지 않는 내가, 너무나 인기 많은 선생님의 상담 스케줄을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으나,

너무 감사한 배려로, 4시에 상담이 끝나지만, 나만을 위해 한 세션 더 해주시겠다고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다.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믿을만한 ‘남’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축복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일반인도 아닌 무려 ‘전문가’라는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다.

나를 돌아보게 해 주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짚어 주셨다.

나보다 나를 더 잘 기억하고 알고 있는 분이어서 나는 이 분을 통해 잊었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회복의 길로 한발 더 나아갔다.

상담실을 나와서도 나의 상황과 환경은 변한 것이 없었으나

그것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조금은 변화되었다.

사실 비쌀 수 있는 상담비용이지만, 아깝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상담도 열심히, 최대한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고

그런 만큼 더 많이 회복되고 치유될 것이다.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내가 회복될 수 있게 미리 내 인생을 통해 준비시켜 놓으신 것들이 있었다.

혼자 살 때부터 우연히 가게 된 한의원, 친해진 한의원 원장님.

정말 몸은 물론 마음의 병까지 치유해주시는 친절한 원장님을 병원을 옮기신 후에도 알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분을 통해 몸이 정말 많이 회복되었다.

몸만 회복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마음의 회복까지 준비시키셔서, 상담 선생님과 몇 년 전부터 인연을 만들어주시고

지금 꼭 필요한 이 시기에 만나게 하시고 그분을 통해 또 많은 회복을 이루셨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라면 나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11월부터 계속해서 어찌 보면 그냥 습관처럼 했던 기도

“내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주세요”라는 기도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기도가 돼버린 느낌이었는데

무엇하나 허투루 들으시는 법이 없었다.


아직도 내 마음은 많이 아프고, 답답하고, 움츠러들어 있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다.


하늘나라에서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봐줄 아이를 위해 나는 꼭 그래야만 한다.

이 사실이 나에게 큰 위로가, 기쁨이, 살아갈 이유가 된다.


오늘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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