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여름 Nov 04. 2024

건강히 돌아오길

종일 표정 없이, 혹은 누군가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주저앉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돌아다녔다.


길을 걷다 휴대폰 화면을 이리저리 넘기다 보면 추천사진엔 여전히 너와의 사진이 뜨곤 했다. 겨우 2년 전, 길게는 5-6년 전 사진들인데 갑자기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선 또렷하기만 한데.


그리고 투썸플레이스에 들어와 멍하니 앉아있다가, 네가 부천에서 수업을 마친 날에, 근처 투썸에서 종종 함께 먹었던 아이스크림라떼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여름이 지나서 그런지 없다. 시즌 메뉴니까 당연한건데, 지금은 이것마저 슬프네…


너와 헤어지고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네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너와의 시간들을 떠올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연애의 마침표가 정확히 찍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서로의 세상에 등장할 일은 없을테니, 내 세상에서 엑스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래서 연락도 하지 않고 그 흔한 sns 염탐도 하지 않는다. 다 아무 의미없는 일들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헤어진 지 일 년쯤 지났을 땐가, 즐겨찾기(긴급통화)에 여전히 네가 등록되어 있는 걸 발견하곤 삭제하려다 잘못해서 통화버튼이 눌려졌다. 헤어진 후 내가 연락할리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아는 너는, 잘못 걸렸을거란걸 아는지 역시나 콜백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네가 만약 콜백을 한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못 걸었어”라고만 얘기하고 통화를 종료할 정도로, 아무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몇 가지 정황상, 너는 환승을 한 것 같았다. 헤어질 때도 특별한 이유 없이 헤어짐을 고하는 네게, 미심쩍었던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굳이 따지고 들지 않았던 건 내 자존심 때문, 그리고 이러나저러나 한 번 떠난 마음은 돌리기 힘들다는 걸 잘 알기에 그저 순하게 이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알아챘을 때 배신감이 들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하나 고작 4년밖에 붙잡아두지 못할 정도인 걸까, 내 자존심도 무너졌다. 이런 미운 마음은 일말의 미련조차 떨쳐내 주는데 크게 일조했다.


그렇게 널 완전히 잊은 채로, 너 없는 나의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너는 너대로 새로운 사람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구축해 나갔듯이. 나는 나를 좀 더 되찾았고, 사업을 시작해 나름대로 바쁜 생활을 이어갔다. 그 사이 내게도 몇 번의 썸이 있었고, 나도 새롭게 누군가를 만날 수 있겠구나,라는 확인 또는 확신으로 충분했다. 당분간 연애는 좀 쉬고 싶다는 결론이었다. 또 누군가와 열정적인 연애를 이어갈 너와는 달리. 그러고 보면 너와 나는 참 다른 사람이었다. 그렇게 다른 너와 내가 만나, 그래도 참 즐겁고 애틋한 4년을 보냈다는 게, 이제 와서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한 일이었다.


겨우 2년 여. 참 짧다면 짧은 시간. 내 세상에서 너라는 이름이 온전히 지워진 채로 살아가던 중에, 너와 나를 소개해준 후배로부터 받은 장문의 카톡에서 네 이름을 정말이지 오랜만에 봤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조차 들 틈 없이, 네가 해외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의식이 없다는 얘기. 벌써 며칠이 됐고, 함께 여행을 갔던 친구가 페이스북에 모금글을 올려 언젠간 나도 알게 될 것이기에, 조심스럽지만 고민하다가 내게 이 소식을 알린다고 했다.


카톡을 읽어 내려가는데 손이 벌벌 떨렸다. 바로 통화버튼을 눌러 후배와 통화를 하는데 말이 제대로 안 나오고 눈물만 나왔다.


몇 년 동안 비활성화 해뒀던 페이스북에 오랜만에 들어가서 글을 찾아봤다. 함께 여행을 갔던 친구는 비교적 상세하게 현재 상황들을 기재해 뒀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모금에 동참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외국인이라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데다 중환자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5천만원 정도가 필요한 듯했는데, 전 애인이 사회운동도 적극적으로 오래 해왔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잘하는 그동안 잘 살아온 사람이라 목표모금은 빠른 시간 내에 채울 것 같았다. 모금 계좌가 현애인의 것이라, 나도 모금에 동참하면 괜히 내 이름보고 불편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곧 이것도 얼마나 유치한 생각인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싶어서, 나도 아주 많지도 아주 적지도 않은 금액을 보냈다. 성인이 되고 4년이란 시간을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낸 것이니, 성인 시절의 1/6-1/7을 함께 한 것인데… 우리가 이미 다 끝난 사이여도, 사실 내가 지금 경제적으로 많이 여유로운 상태라면 한 천만 원쯤 보내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데 아쉬웠다.


이제 눈은 깜빡인다고 하던데, 조금 더 차도가 있으려나 하는 걱정들과 오랜만에 몰아치는 너와의 추억들로 인해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고맙고 미안했던 기억만 끊임없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늦은 시간에 학원 강의 마치고 오면서 “나 배고파. 밥 좀 차려주라” 하면, 나는 업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와인 몇 잔을 마시고 너의 집에 가도 알딸딸한 기운을 차려가며 계란말이를 하고, 밀키트 김치찌개에 두부와 스팸을 넣어 끓였다. 너는 언제나 맛있게 먹어줬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두부도 여러 번 씻어서 넣을걸, 스팸같이 짠 거 아무리 좋아해도 먹지 말라고 넣지 말걸, 요리 좀 더 익혀서 나물도 무쳐주고 그럴걸, 이런 하찮은 후회들이 밀려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니까,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요리 실력이 아주 조금은 더 늘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더 잘해줄 수 있었는데 아쉽고 그런 것이다.


이틀간 꼼짝없이 누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이런 생각들만 들었다. 도움도 되지 않고 다 부질없는 생각들이었다. 나는 이제 너와 다른 세상에 산다. 나는 또 내 일상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전 같을 수는 없을 너의 미래가, 그래도 조금은 더 괜찮고 건강하고 무사하길, 기도해 주고 응원해 줄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으려고 글을 남겨둔다. 언제 이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일어나고 건강해지길 바라. 많은 이들의 마음과 진심이 모여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을거라 믿어. 이미 그 기적은 시작됐잖아. 언제나의 너처럼, 이번에도 한 번 보여줘. 기다릴게.

작가의 이전글 어느 여름, 네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