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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만쥬 Feb 24. 2022

8일차 어쩌다 단독 투어

2020년 2월 21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비엔나에서의 첫 아침

와 진짜 아늑해서 내 방처럼 잘 잤다. 이 방의 아늑함은 여러 번 칭찬해도 부족하다. 침대가 정말 아늑하고 편해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불이 뽀송뽀송해서 더 비비적거리고 싶은 그 느낌. 이번 여행 첫 에어비앤비인데 집이 참 예쁘다. 샤워할 때 비치되어 있던 샴푸를 썼는데 화이트 초콜릿 향이 너무 좋았다. 유럽 여행 중 지나가다 가끔 맡았던 냄새였는데, 이거였구나 찾은 느낌! 덕분에 비엔나에서의 첫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한다! (브랜드를 잘 기억해놓았다가 나중에 DM에서 샴푸랑 바디워시까지 구매했다.)



호스트의 취향이 묻어나는 공간이 좋다



어쩌다 단독 투어


비엔나에 꽤 오래 있을 거라서 교통권을 뭘 사야 할지 고민했다. 어젯밤 비엔나 역에 도착해서 에어비앤비 체크인을 기다리는 동안 이것저것 찾아보고 비교해 본 결과, 교통권 기능과 더불어 미술관 할인이 되는 '비엔나 카드'를 구매했다. 교통권 3일권에 추가로 일주일 동안 미술관 할인이 되는데, 내가 가고 싶은 미술관 몇 곳만 가도 본전은 뽑는 셈이다. 교통권은 개시 후 72시간만 유효하니, 마지막 날 부다페스트로 넘어가는 시간을 늦추고 도보로 이동 가능한 미술관을 더 둘러보면 완벽하다! 가고 싶은 곳이 많아서 어제 미리 교통권과 거리를 고려하여 계획을 알차게 세워두었다. 비엔나에서의 첫날, 오늘은 비엔나 투어를 하는 날이다. 나 홀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이 도시와 굵직한 미술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서 일부러 첫날 예약하였다. 어젯밤에 교통권 구입 후 여행 계획을 세우며 부랴부랴 예약했더니 단독 투어가 되어버렸는데 감사하게도 투어 진행을 해주셨다. 스웨덴 광장 앞 맥도날드에서 가이드님을 만나 비엔나 링슈트라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쇤부른 궁전으로 이동했다. 비엔나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 가이드님만의 샐러드 비법 소스까지 어찌나 즐겁게 얘기했는지 내리는 역까지 지나쳤다. 단독 투어이고 무엇보다 사전에 빈에 대한 책을 읽고 오니 설명이 더 잘 들어왔다. 역에서 내려 어마어마한 칼바람과 우박을 뚫고 쇤부른 궁전으로 향했다.



쇤부른 궁전의 겨울 정원, 그리고 언제 우박이 떨어졌냐는 듯이 맑은 하늘


쇤부른 궁전

쇤부른 궁전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해서 아쉬웠다. 베르사유 궁전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가이드님의 설명과 함께 꼼꼼히 봐서 그런가 베르사유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좀 더 세밀하고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랄까. 특히 나전칠기방하고 중국식 파란 방, 인도 그림 콜라주 방이 인상 깊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나폴레옹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정확히는 나폴레옹과 결혼한 오스트리아의 공주와 그의 아들의 삶이 너무 안타까웠다. 오스트리아의 궁에서 나폴레옹의 침대를 볼 줄이야. 그리고 7년간의 계승 전쟁 이후 왕위에 오른 마리아 테레사의 업적이 흥미로웠고 참 대단한 여성이자 리더라고 느꼈는데, 기념품샵에는 씨씨여왕 상품밖에 없는 게 아쉬웠다. 이렇게 궁전까지 직접 와보니 오스트리아가 과거에 영광이 정말 어마어마했던 나라임이 새삼 느껴졌다. 궁전을 나오니 아침에 우박이 언제 왔냐는 듯이 쨍한 햇볕이 쏟아졌다. 유럽 날씨 변덕스러운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범상치 않은 날씨는 처음이었다. 비엔나 여행이 더더욱 기대된다!


누군가의 사연이 담긴 꽃들
호프부르크 궁전(좌)과 로스하우스(우)


걸어서 비엔나 속으로

쇤부른 궁전을 나와 트램을 타고 이동하며 도보 투어를 시작했다. 시립공원에는 포대로 쌓인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했는데, 알고 보니 겨울이라 덮어놓은 '꽃'이었다. 일정 금액을 내면 자기만의 꽃을 할당받고 원하는 문구도 쓸 수 있었다. 공원에 꽃도 심고, 더불어 시민에게 특별한 경험도 제공하는 꽤 즐거운 이벤트인 것 같다. 링슈트라세를 따라 멋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트램과 도보로 이동하면서 웬만한 랜드마크 건물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호프부르크 궁전은 한 번에 만들어진게 아니라 4대의 왕에 걸쳐 점점 건축물을 늘려간 게 흥미로웠다. 얼핏 한 건물로 보여도 자세히 보면 증축되고 다른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게 보였다. 도보 투어 중 가장 흥미로웠던 '로스 하우스'였다. 생각보다 훨씬 근사하고 멋있었다! 외관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이 시대에 주상복합 건물을 생각했다니 대단했고, 로스의 개혁적인 정신과 책에서만 봐왔던 이야기가 담긴 건물을 실제로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신기하고 조금은 벅찬 느낌이었다.




슈테판 대성당

이 웅장한 대성당은 바로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긴 시간 교회를 짓는 동안 당대의 신념에 따라 건축의 모양이 바뀌게 된 것이다. 고딕양식의 큰 창에는 원래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있었다고 한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남아있었다면 훨씬 멋졌을 텐데, 지금은 비용도 비싸고 무엇보다 기술자가 없어 복원을 못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나 유럽이나 현대기술이 훨씬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것에 있어서는 옛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참 많다. 한옥이나 온돌 같은 것들도 여전히 현대의 과학과 기술력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그곳, 벨베데레 궁전

쇤부르궁전은 로코코 양식, 벨베데레 궁전은 바로크 양식의 진수라고 하는데 사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여기의 정원도 정말 아름다웠다. 가이드님과 나는 바로 궁전의 상궁으로 향했다. 물론 건축양식도 아름답고 훌륭하겠지만, 내가 벨베데레 궁전에 온 목적은 오로지 클림트의 그림이기 때문. 그리고 마주한 클림트의 '키스'와 '유디트'는 정말이지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키스'는 황홀했고, '유디트'는 매혹적이었다. 그 유명한 '나폴레옹' 작품에 대한 설명을 끝으로 가이드님과는 헤어졌다. 왠지 아쉬워 나폴레옹 그림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도 찍었다. 단독 투어이다보니 가이드라기 보다 좋은 어른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라 정말 좋았다. 빈이라는 도시와 미술 작품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맛있는 음식도 추천해 주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즐거웠다. 헤어지면서 가이드님도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한 어른으로서 나를 응원해 주는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투어를 마친 후에 다시 한번 혼자서 천천히 둘러보았다. 언제 또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겠나! 마음껏 감상했다. '키스'는 정말이지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훈테르트 바서

벨베데레 궁전을 나오니 오후 네시 반. 남은 하루는 나 홀로 훈테르트바서 투어를 하기로! 예전에 우연히 서울에서 훈테르트바서 전시회를 보고 아주 인상 깊었는데, 이렇게 오스트리아에서 훈테르트바서의 건물을 실제로 보는 날이 올 줄이야!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훈테르트바서 하우스'. 나무 세입자와 창문의 권리를 주장한 훈테르트바서의 정신이 그대로 느껴졌다. 내부도 정말 궁금했는데 실제로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맞은편 훈데르트바서 빌리지에서 내부 느낌을 조금 알 수 있었다. 푸른 나무가 가득한 봄, 여름에는 훨씬 아름답겠지. 다음으로 '쿤스트하우스'도 가보았다. 도착하니 거의 문 닫기 직전이어서 외관만 간단히 둘러보았다. 오늘이 빈에서의 첫날이지만, 왠지 이번 비엔나 여행으로 훈테르트 바서와 클림트의 팬이 될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트램 안과 밖의 풍경
가이드님과 왔던 'Henry'에서 저녁까지 해결




2020. 2. 14 ~ 3. 11

퇴사 후 떠난 27일간의 유럽여행 일기를 꺼내 읽어본다.

복잡한 마음을 가득 품고  '퇴사 ' 여행이었는데, 다시 꺼내 읽어보니 다신 없을 '코로나 이전' 여행기로 다가오는 27일간의 유럽 여행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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