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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만쥬 Dec 04. 2020

3일차 베니스 마지막까지 알차게

2020년 2월 16일, 이탈리아 베니스


너무나 쉽게 본 너무나 아름다운 일출


어제 동행했던 언니와 오늘은 일출을 보기로 해서 아침 6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일출 보기' 역시 이번 내 여행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생각해보니 국내 여행을 가서는 일출을 자주 보곤 했는데, 해외 여행지에서는 한 번도 일출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행하는 도시의 일출과 새벽 풍경도 꼭 보고 싶어서 버킷리스트에 넣어보았다. (그러나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일출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일출 스팟은 아카데미아 다리! 일출 시간을 찾아보고 도착할 시간을 고려해서 호기롭게 일찍 나섰는데, 수상 버스 정류장에 오니 이미 해가 뜨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광경이 너무 멋진 거다! 차가운 새벽 공기, 고요함 속에서 조용히 출렁이는 바닷소리 너머로 붉게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가려던 아카데미아 다리까지 가지 않고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수상 버스 정류장에 그대로 서서 황홀한 일출을 감상했다. 원래 일출이란 새벽에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졸음을 싸워 힘겹게 얻어내는 것 아니었나. 이렇게 쉽게,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을 본 건 처음이었다. 고요하고 상쾌한 새벽에 수상 버스를 타고 운하를 가로질러 가는 것도 정말 좋았다. 수상버스를 타고 바다를 가르며 일출을 바라보다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일출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카데미아 다리가 아닌 시내로 가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을 찾다가 들어간 곳은 식당이 아니라 호텔이었다. 적당한 가격에 조식을 제공하고 있어서 조식을 이용해보았는데, 너무 괜찮았다. 바다에서 일출을 보고,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정말 근사한 하루의 시작이다. 



베니스의 일출, 아름다워라


호텔에서 조식만 먹는 것도 괜찮네



부라노섬, 올만하네!


동행했던 언니와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오늘 밤 야간열차를 타기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부라노섬에 가보기로 했다. 날씨가 조금 흐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부라노섬은 참 예뻤다. 화창한 날 오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어제 날씨가 참 좋았는데, 그래서 숙소 사람들이 다들 부라노섬에 갔구나 뒤늦게 이해해버렸다.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것 같아서 그저 골목을 걷기만 해도 들떴다. 사진 찍어줄 사람 없어 안 가겠다고 생각했던게 무색할만큼, 핸드폰 갤러리에 내 사진이 가득 들어찼다. 지나가는 사람 중 내 핸드폰을 들고 도망갈 것 같지 않은 사람, 그 중에서도 사진을 성심성의껏 잘 찍어줄 것 같은 사람을 찾아내는 실력이 늘어가는 것 같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웃는 것은 아직 부끄럽지만. 



알록달록 아름다운 부라노섬의 풍경





베니스 제대로 즐기기
카니발과 타파스


부라노섬에서 돌아와서 다시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바로 일요일! 숙소 사장님께서 오늘이야말로 베니스 카니발의 하이라이트라고 하셔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축제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장으로 가는 베니스의 모든 골목이 축제의 장이었다. 가는 길 내내 코스튬을 하고 들뜬 사람들, 꽃가루를 뿌리며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축제 분위기가 물씬 났다. 점심은 골목에 위치한 낡은 타파스 가게에서 가볍게 해결했다. 관광객도 어렵지 않게 주문하고 편하게 음식을 즐길만하다고 느껴지는 식당마다 들어갔으나, 모두 만석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골목 구석에 위치한 작은 타파스 가게에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서도 딱히 반기지 않고, 주인장의 뚱한 눈빛은 '여기는 너 같은 뜨내기 관광객이 올만한 식당은 아닌데?'라고 말하는 듯하여 괜히 위축되는 그런 가게. 진열되어있는 타파스 중 베스트를 추천해달라하니 다 맛있단다. 나도 쿨한 척 대충 고르고 스프릿츠도 한 잔 시켜 빈 자리에 앉았다. 입 안 가득 짠맛이 퍼지는 연어 타파스와 스프릿츠를 먹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이런 곳에서 자연스럽게(?) 타파스와 스프릿츠를 먹고 있다니, 나 이제 베니스 여행 좀 해봤다고 할 수 있겠군!


오래된 서점도 구경하고 마지막까지 베니스의 골목을 실컷 누볐다. 그렇게 도착한 산마르코광장은 어제보다도 훨씬 활기찼다! 혼자였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어제보다 더 신나고 들떠서 재밌게 놀았다. 가운데 메인 무대에서는 계속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었고, 그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스프릿츠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언어와 노래가 들리는 게 아닌가! 메인 무대에서 한국 공연팀의 부채춤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에 베니스에서 부채춤과 아리랑이 울려 퍼지다니! 정말 뿌듯하고 기뻤다. 스프릿츠 두 잔에 약간 취기도 올라서 나홀로 아리랑을 함께 열창하며 열렬히 환호했다. 내가 바로 저 나라에서 왔어요! 엄청 멋있죠! 온몸으로 자랑했다. 



베니스에서의 마지막 저녁(feat. 개고생)


오늘 밤에 야간열차를 타는데 숙소에 짐 보관이 저녁 6시까지만 가능하다고 해서 저녁 5시쯤 캐리어를 찾아서 끌고 다녔다. (이것은 이번 여행 나의 최대 실수였다.) 베니스의 자갈길을 과소평가한 덕에 막판에 진짜 개고생 했다... 그 와중에 '프리토인' 이라는 유명 맛집의 오징어 튀김을 먹겠다고, 숙소에서부터 그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베니스의 자갈 바닥과 수많은 다리를 건너 찾아갔는데...! 이럴수가 일요일 휴무였다. 팔이 후들거리고 정말 울고싶었다. 나를 위로해준건 식당 앞에 펼쳐지던 버스킹 공연이었다. 전통복장을 입고 연주하는 공연팀과 그 음악에 맞춰 함께 어울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 덕분에 기분이 나아졌다.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저녁식사는 가까운 수상 버스 정류장 근처에 구글 평점이 좋은 식당에 갔다. 꽤 근사한 레스토랑이었고 먹물 파스타와 함께 마지막 스프릿츠까지 알차게 즐겼다. 캐리어를 끌고 더 이상은 다닐 수가 없어서 산타루치아 역에 두 시간이나 일찍 가서 기다렸다. 역 안에 말끔한 시멘트 바닥이 어찌나 반갑던지! 액세서리를 하나도 안 챙겨 와서 역에 있는 가게에서 링 귀걸이를 하나 샀는데 여행 내내 아주 잘 끼고 다녔다. 



마지막 스프릿츠 그리울거야



잘츠부르크로 넘어가는 야간열차


기대했던 야간열차! 이번 여행 나의 또 다른 버킷리스트였다. 이것 때문에 전체적인 여행 동선이 조금 꼬였지만, 야간열차를 꼭 타보고 싶어서 베니스에서 잘츠부르크로 넘어가는 구간으로 예매했다. 베니스를 통과하는 구간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해서 기대를 정말 많이 했다. 자고 일어났을 때 창 밖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그림처럼 지나가고, 침대에 기대 그 풍경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바보같이 저녁 9시에 출발해서 새벽 4시에 도착하는 기차 편을 예약해버렸다. 이말인즉슨 아름다운 풍경은 커녕 온통 깜깜해서 바깥 풍경이 용산역인지 잘츠부르크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3인실에 나 혼자 탔다는 것! 나 혼자여서 쾌적하게 왔지 이 좁은 곳을 모르는 사람들 2명과 함께 썼다면 끔찍했을 것 같다. (아는 사람 2명이어도 끔찍했을 것 같다) 슬리퍼, 간식, 와인까지 숙면에 필요한 것들을 잘 챙겨줘서 생각보다 잠도 잘 자고 편하게 왔다. 이번 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야간열차 타보기는 어쨌든 성공! 비록 자다 일어나서 창밖의 아름다움 풍경을 감상하는 로망은 이루지 못했지만, 나 홀로 야간열차라는 색다른 경험이어서 꽤 만족스럽고 좋았다. 



이런 풍경을 기대한 게 아닙니다만...




2020. 2. 14 ~ 3. 11 

퇴사 후 떠난 27일간의 유럽여행 일기를 꺼내 읽어본다. 

복잡한 마음을 가득 품고 간 '퇴사 후' 여행이었는데, 다시 꺼내 읽어보니 다신 없을 '코로나 이전' 여행기로 다가오는 27일간의 유럽 여행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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