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본부 Jun 27. 2021

[12] 사건 발생의 유형 : 장르

디즈니, 픽사, 지브리 작품으로 보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구조

구조와 장르

구조와 구성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가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범주화한 게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장르의 세계는 무척 넓습니다. 저는 장르의 세계를 다 다룰 지면, 재간도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디즈니, 픽사, 지브리가 어떤 장르의 작품을 주로 만들어왔는지 논점을 좁히고자 합니다.


모험극과 레퍼런스

디즈니, 픽사, 지브리의 작품들을 보면 "모험극"이라는 범주 안에서 모두 설명이 가능합니다. <귀를 기울이면>과 같은 예외적인 것처럼 보이는 작품 또한 모험극의 특성을 띄고 있습니다. <모아나>와 같은 정통 모험극부터, <이웃집 토토로>와 같은 일상 모험극까지 대부분의 작품이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지금부터는 다른 장르와는 대별되는 모험극의 특징을 알아보겠습니다.


모험극의 구성 요소 1 : 낯선 곳으로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

모험극에서는 당연하게도 주인공이 모험을 떠납니다. <라푼젤>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모험을 떠납니다. <인사이드 아웃>, <토이 스토리4>, <소울>과 같은 작품의 주인공들은 뜻하지 않은 모험을 떠납니다. <모노노케 히메> 같은 작품의 주인공은 생존을 위해 모험을 떠나기도 합니다. <코코>처럼 기상천외한 공간으로의 모험일 수도 있고, <이웃집 토토로>처럼 새로 이사간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일상 모험극일 수도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면>은 결국 자신의 내면 속으로 모험을 떠납니다. 구체적인 모습이야 어찌되었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낯선 곳으로 모험을 떠나고 그곳을 무대 삼아 새로운 생활을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건을 만납니다.


모험극의 구성 요소2 : 주인공과 조력자

주인공은 모험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조력자를 만납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키키는 톰보와 만나고, <모아나>의 모아나는 마우이와 만납니다. 물론 처음 만났을 때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주토피아>의 주디와 닉처럼 서로 으르렁거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서로의 든든한 조력자가 됩니다. <온 워드>나 <겨울 왕국2>, <몬스터 주식회사>, <이웃집 토토로>처럼, 주인공과 조력자가 이야기의 처음부터 함께 하기도 합니다.


모험극의 구성 요소3 : 공간의 이동

모험은 곧 탐색입니다. 따라서 모험극의 주인공과 일행은 목적에 따라서 이곳저곳을 여행합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바람계곡에서, 피지테국으로, 그리고 다시 바람계곡으로 돌아오는 것을 공간적 배경 구성의 큰 틀로 삼고 있습니다.

<소울>은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띕니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현실의 지구에서 머나먼 저세상으로 향하는 길로 갔다가, 유 세미나를 경유해서 육신과 영혼의 중간 지점에 이르고, 또 다시 지구로 되돌아옵니다. 하지만 결국 테리에 의해 붙잡혀서 다시 유 세미나로 되돌아오게 되죠. 그곳에서 22와 크게 틀어진 조 가드너는 홀로 지구로 돌아오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그걸 22에게 전해주기 위해 다시 육신과 영혼의 중간지점으로, 다시 유 세미나로 돌아옵니다. 22가 지구로 귀환하고 조 가드너는 다시 머나먼 저세상으로 가는 길에 서지만, 제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부여받아 마침내 지구로 귀환합니다.

그런가 하면 인물의 이동이 보다 지엽적인 차원에 머무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나 <이웃집 토토로>는 주인공이 사는 마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끽 해야 학교, 집, 가게, 거리 등을 오고갈 뿐입니다. 이는 거주하는 공간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일상 모험극의 특징입니다.

주인공이 경험하는 세로운 세계가 얼마나 충격적이든 간에, 새로운 세계를 접한 주인공은 그것을 보며 경탄합니다. <소울>의 조 가드너가 유 세미나에 떨어져서 어리둥절해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웃집 토토로>에서 토토로와 함께 하늘을 나는 사츠키와 메이의 눈에는 평소와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지만 신비와 경탄이 담겨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검뎅 벌레가 가득한 빈 집 여기저기를 탐색할 때도 사츠키와 메이는 흥미로운 것 투성이입니다. <귀를 기울이면>에서 시즈쿠는 지대가 높은 곳에서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때, 골동품 가게의 분위기에 압도되었을 때, 백작의 눈을 골똘이 쳐다볼 때에도 이런 눈이 됩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탄은 판타지 요소가 있냐, 없냐와는 무관한 문제입니다.


모험극의 구성 요소4 : 활극

모험극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활동을 두 가지만 꼽으라면 주인공과 적대자 간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둘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일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시간을 다투는 상황도 모험극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입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일상 모험극에도 두루 표현되는 단골 장면입니다. 정통 모험극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 모험극인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새들과 키키가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이,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작은 정령들과 메이가 소소하게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대결은 장애 요인이 적대자의 형태로 셋업되어 있는 작품에 주로 나타납니다. <주먹왕 랄프>에서 랄프는 터보와 대결을 벌이고, <인크레더블>에서 인크레더블 가족들은 신드롬과 대결을 벌입니다. <붉은 돼지>에서 포르코는 커티스와 결국 주먹다짐을 벌이고 맙니다. <온 워드>에서는 주인공이 결국 깨어난 용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맙니다.

시간을 다투는 상황은 직접적인 적대자와 대립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형성하는 방법입니다. <토이 스토리3>은 쓰레기 폐기장의 불꽃에 가까이 다가가 소멸되기 전에 그곳을 탈출해야 하며, <라따뚜이>의 최종 도전 과제에서는 비평가 이고와 손님들이 시킨 요리를 늦지 않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레미 없이는 요리라고는 시작도 할 수 없는 링귀니 혼자서 말입니다.


모험극의 구성요소5 : 최종 도전 과제

이야기의 중간 구간이 끝나고, 끝 구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주인공은 마침내 최종 도전 과제에 봉착합니다. <UP>에서는 러셀이 자기 혼자서라도 새를 구하겠다면서 찰스 먼츠의 비행선으로 떠납니다. 주인공 프레드릭슨에게는 러셀을 구해와야 한다는 최종 도전 과제가 생기며, 이것을 완료하면 곧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프레드릭슨은 집 안에 있던 물건을 버리고 집을 가볍게 만든 다음 찰스 먼츠의 비행선으로 향한 끝에 찰스 먼츠와의 대결 도중 자신의 집을 포기하고, 러셀을 구합니다. 이제 프레드릭슨과 러셀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이것이 이 작품의 결말입니다.

<코코>에서 미구엘은 델라크루즈에 의해 헥터와 함께 감금됩니다. 그곳에서 미구엘은 헥터가 자신의 진짜 고조부였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미구엘에게는 자신의 고조부인 헥터가 마지막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최종 도전 과제가 주어집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델라크루즈의 손에 있는 헥터의 사진이 필요합니다. 미구엘은 델라크루즈에게로 향해 사진을 빼앗으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하지만 미구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빈손으로 이승으로 돌아온 미구엘이 코코에게 헥터가 작곡했던 <기억해줘>를 부르는데, 코코는 아버지 헥터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서랍 속에 있던 헥터의 사진을 꺼내게 되는 것입니다. 최종 도전 과제가 성공합니다. 다음 년도 죽은 자의 날, 미구엘은 가족들 앞에서 당당하게 음악을 할 수 있게 되고, 죽은 코코는 아버지 헥터, 어머니 이멜다와 함께 이승으로 외출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모험극의 진화

반도체나 인공지능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합니다. 우리와는 먼 얘기라고 느껴지시나요? 우리가 자주 사 먹는 과자나 피자 같은 것은 어떨까요? 새로운 맛으로 무장한 과자와 피자는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끊임없이 유혹의 손길을 뻗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장르 또한 발전합니다. 모험극 장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미 모험극은 많은 발전을 이룩한 상태입니다. 장르가 발전했다는 것은 새로운 문법을 발견했다기보다는, 다른 장르와의 혼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에 더 가깝습니다. <주토피아>만 보더라도 풋내기 경찰 주디가 주토피아 곳곳으로 모험을 떠난다는 점에서 어드벤처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범죄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경찰의 이야기니 수사극입니다. 주디와 닉이 한패를 이루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한다는 점에서 버디무비라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주디가 편견을 벗고 내면적 성숙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성장영화입니다. 이미 장르의 최첨단에 도달한 작품을 경험한 감상자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촌스러운 작품을 직감적으로 알아챕니다. 때문에 창작자는 플롯과 동시에 장르에 대한 눈과 귀 또한 사방으로 열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토피아>보다 진일보한 형태의 작품을 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어렵다구요? 원래 산다는 것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11] 사건의 줄기 : 플롯 라인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