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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본부 Oct 10. 2022

이중섭의 행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이중섭>전에 가면 이중섭이 1954년 경에 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족>이라는 작품을 볼 수 있다. 흔히 알려진 은지화 작품 가운데도 똑같이 <가족>이라고 이름 붙은 작품이 있는데, 그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종이에 유채로 그린 작품이다. (양면화라서 종이 뒷면에는 다른 작품이 또 그려져 있다)아래의 그림이다.

그림 왼쪽 상단에 천 같은 것으로 짐작되는 직물이 있고, 거기에서 꽃송아리가 떨어지고 있다. 이게 사진으로는 잘 안 느껴지는데, 실제 육안으로 보면 색의 쓰임이 무척이나 절묘하다. 일단 톤 다운된 보라색 계열의 배경과 대비되는 아이보리색이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한다. 거기에 더해 포인트가 되는 분홍색, 다홍색 등이 어우러져서 색이 무척 조화롭고, 그래서 아름답다. 왼쪽 하단 아이들의 몸 윤곽은 짙은 회색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 보면 금색에 더 가깝다. 그 색의 쓰임마저도 다른 색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가족>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이중섭이 색을 얼마나 잘 쓰는 작가인지 상기한다. 잘 알려진 <황소>나 <가족과 첫눈>처럼 말이다.

여기에 슬픔이 있다. 화가가 남긴 많은 <은지화>가 떠오른 탓이다.


위 사진은 <가족>이라는 동명의 작품이다. 실제 전시회에서도 다수의 은지화가 소개되고 있다. 은지화는 세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독특한 기법의 작품이다. 작가는 왜 은지에다 그림을 그렸던 걸까. 그건 그만큼 화가가 가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가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생활고 탓에 일본으로 떠나보낼 정도였으니까.

색을 다루는 놀라운 능력이 있지만, 가난 때문에 은지화를 그릴 수밖에 없는 화가에 대한 연민. 내 슬픔의 실체는 이것이다. 이중섭에게 가난이 없었다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은지화 또한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족들을 일본으로 보내지 않을 정도로 풍족하고, 그래서 행복할 수만 있다면야, 은지화가 무슨 대순가? 나는 전시회에서 종이에 유채로 그린 <가족>을 보고 난 뒤로,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미래에 혹시라도 내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 기회가 생긴다면,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담긴 작품으로, 그게 아니라면 보고 그가 행복해할 수 있는 작품으로 한 번 만들어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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