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그 곳에서 행복하렴
짧았지만 찬란했던 네 삶을 기억할게
후배야 너는 오늘 정말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안겨줬어. 너희 아버지 말씀대로 너의 생명은 이 땅 여러 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을 거야. 너의 모습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말이야. 수술이 시작되던 오후 3시 나는 가만히 서서 기도했어. 네 죽음이 헛되지 않게, 목표한 바대로 수술이 완벽히 끝나기를.
지난달 30일에 네가 의료사고로 뇌사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을땐 실감이 나지 않았어. 그러다 너가 어떤 상태인지 구체적으로 전해 듣고 나서야,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했어. 그리고 나는 너라는 사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우리가 회사 선후배로서 처음 만났던 2017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갔어. 수습 시절 어리버리하면서도 참 열심이었던 네 모습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 물론 그땐 나도 고작 2년차였어서 어리버리한 건 매한가지였을 테지만. 신나서 이것저것 보고하는 네가 귀여울 때도 있었고, 또 소위 '얘기 안 되는' 걸 들고 와서는 흥분해서 두서없이 와다다다 보고하는 너한테 짜증을 낼 때도 많았지...ㅎㅎ..
산적같이 생겨서는 말투도 씩씩해서 처음부터 널 너무 편하게 대했던 것 같아. 말이 좋아 편하게 대한 거지, 다른 네 동기들한테 하는 것보다 훨씬 불친절했다는 말이 맞을 거야. 짜증도 내고, 혼도 내고. 너는 쉽게 상처받지 않을 거라 단정했던 거지. 물론 너는 단단한 사람이어서, 나의 이 모자란 부분까지도 다 이해해주었지. 동갑이지만 너가 훨씬 더 어른스러웠으니까.
두고두고 미안해서, 4년 동안 입버릇처럼 농담반 진담반 "수습 때는 미안했다"고 했잖아. 그러면 너는 "아닌데. 선배 진짜 잘해줬어요"라고 했어. 너의 말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만 같다. 근데 후배야, 수습 때 뿐만 아니라 나는 너를 알고 지낸 4년 동안 잘해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이제는 수습 시절 이야기로 네게 농담을 건넬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
나는 네가 툭툭 받아치는 게 재밌어서 더 짓궂게 말하고, 장난을 자주 쳤어. 일부러 말도 거칠게 하고. 네가 왜 후배한테 욕하냐고 투덜대면, 나는 욕과 애정도는 비례한다는둥 시덥잖은 대화를 나눴었지. 너가 돌아오면 밥도 술도 많이 사주고, 좀 더 따뜻한 선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는 이제 없구나.
좋은 녀석이란 건 알았는데, 떠난 뒤 네 주위 사람들이 너를 추억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니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넌 더 훌륭한 사람이었더라. 너처럼 좋은 사람을 십수년 더 알아갔으면 했는데. 주니어인 우리가 팀장급이 되고, 차장급이 되고...그렇게 함께 나이먹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돼서 참 아쉬워. 사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쉬움보단 훨씬 무거운 것 같아. 널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 가운데에 싱크홀이 생기는 기분이랄까.
산적같이 생겨서는 고양이 집사였던 현우야. 배우 안길강을 닮고, 한겨울에도 파카 속에 반팔을 입고 다녔던 현우야. 삶의 순간 순간마다 네가 많이 떠오를 거야. 옆자리에 앉아 업무시간에 몰래몰래 카톡으로 같이 회사욕을 하고, 7판 고쳐야해서 칼퇴 못한다고 신세한탄했던 많은 날들, 네 앞에서 흑역사를 만들었던 몇 번의 술자리, 총선 때 다같이 부스에서 새벽까지 일했던 기억, 일요일 출근 날에는 새파란 나이키 신발을 신고 오던 너, 기자실을 나와 점심 저녁을 먹으러 가던 일상적인 시간들...이런 기억의 조각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어딘가 저편에서 날아와 가슴을 콕콕 찌르겠지.
행복해라. 보고싶을 거야. 아내와 부모님 생각에 네가 너무 슬퍼할까봐 걱정이다. 슬프겠지. 맘껏 울고 슬퍼하렴. 그러다 하느님 곁에서 결국 안식을 찾길 간절히 기도할게.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있어. 나도 여기서 잘 지내다 갈게. 그때는 욕도 안하고, 시덥잖은 장난도 덜 치고, 철 좀 들어서 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