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법 04. 정독
여전히 독서법을 고민합니다. 정답이 없다는 것은 알아요. 다만 어떤 방법이 더 효율적인지, 어떻게 읽어야 더 오랜 기간 동안 기억에 남을지,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독서법은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고민 끝에 내리는 결론은 때때로 변하기도 해요.
오늘은 정독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묵직하고 바른 독서법. 뭔가 가부좌를 틀고 바른 자세로 앉아 올곧은 정신으로 집중해서 책을 읽어야 할 듯한 느낌의 단어죠. 정독하면 조선시대 선비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트렌드와 맞을지 의문입니다.
햄릿의 위대한 문구처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정도는 아니겠지만. 다독이냐 정독이냐는 독서가들의 오랜 질문이기도 합니다. 논쟁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죠. 만약 정독파와 다독파의 토론이 벌어진다면 저는 다독파쪽에 서겠습니다. 그럼에도 다독의 결연한 독서 자세는 매번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정독을 말하는 많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딱 한 분만 골라야 한다면 저는 박웅현 작가님을 고르겠습니다.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처럼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을 듯한 분입니다.
책을 읽기로 마음먹고, 한참 1년에 100권씩 읽어가던 중에 <책은 도끼다>를 만났습니다. 여전히 좋아하는 책이고, 최근에도 반복해서 읽은 책입니다. 예전보다 지금 더 좋아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책에서 박웅현 작가님이 너무나 저한테 말씀하는 것처럼 이렇게 단호하게 이야기하셨죠.
1차 도끼 문장.
“저는 책 읽기에 있어서 다독 콤플렉스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에는 100권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 정신없이 읽고 있던 시기라서 이 문장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반발심이 들었어요.
‘아니, 일단은 많이 읽어야 하지 않나?’
질보다 양. 돌이켜보면 항상 그런 성장을 추구한 삶이었습니다. 똑똑하게 공부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시간을 대량으로 투하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공부를 했습니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을 때는 항상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어요. 일단 많이 해보기.
그런 이유에서 어릴 때부터 책을 즐겨 읽지 않았던 저에게는 그 당시 <책은 도끼다>는 많이 읽겠다는 나의 독서의 의지를 끊어내려는 문장처럼 느껴졌습니다. 부족한 생각이었죠.
이어서 2차 도끼 문장
“올해 몇 권을 읽었느냐, 자랑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이어서 바로 묵직한 문장이 들어옵니다. 이 문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저에게 하는 이야기 같아서 놀랐습니다. 백권이라는 명확한 목표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표였으니까요.
그래서 정독을 했냐고요?
아주 잠시동안은 박웅현 작가님을 생각하며 정독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껏 다독을 했습니다. 그렇게 15년 동안 1,500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여전히 누군가 저에게 정독파인지 다독파인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다독파라고 대답하겠죠.
다독과 마음껏 자랑하는 책읽기의 결과,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독서가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독이냐 정독이냐가 아닌, 얼마나 책을 좋아하느냐. 어떠한 고난의 순간에도 책을 붙잡을 수 있느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독서법에도 정답은 없으니까요.
에필로그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내년에는 박웅현 작가님의 말씀대로 정독을 해볼까 합니다. 매달 딱 한 권의 책을 선정해서 일주일 동안 오독오독 씹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나머지 3주는 마음껏 읽고요. 결과는 내년에 공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