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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오소리 Mar 25. 2022

오퍼 레터를 받았습니다

드드디디어어 이직한다 그런데 GA 탈출을 곁들인!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삶은 그야말로 타협과 투쟁이 뒤섞인 채 한시도 안주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남들보다 늦은 졸업을 하고 1년 가까이 백수취준생으로 지내는 것에 지친 나머지, 물경력의 왕중왕이자 커리어의 무덤으로 악명높은 외국계 계약직 Admin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탓이었다. 이후에도 Office Manager, General Administrator 등 이름만 다르지 남들이 하기 싫은 일만 모아놓은 온갖 잡무에 시달리며 고통받던 눈물의 시간 내내, 이놈의 총무 나부랭이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열망 그리고 뒤처짐에 대한 불안은, 천하태평의 게으른 놀자왕이었던 나를 어떻게든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고생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새 회사에서 UX Product Function Owner를 담당하게 되어 최종 오퍼를 받고, 지금 회사에서의 퇴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졸업 후의  회사는 작은 오피스텔에 있는 2 체제의 회사였다. 구멍가게st 콧구멍만한 회사조차 (사회생활이며 조직생활 따위는 죽어라 싫어하는) 나에게 딱이다 싶었던 , 적당히  앞가림만   있는 급여마저도 그러려니 했을 만큼 대책도 없었고 시야가 좁았기 때문이다.  와중에 어디서 주워 들은  많아가지고, 성실하게 일하고 능력을 보여주면 나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오리라는 대책없는 낙관론, 그리고 2년만 적당히 다니고 해외 대학원을 가겠다는 포부까지, 당시의  모습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4  동안  회사에서 얻은 나름의 결실이 있다면, 망한 연애와 인생의 모든 억울함을 긁어모아 200장짜리 장편 소설을  덕에 기대하지 않았던 셀프 테라피 효과와 글쓰기 능력을 얻게  , 여유있는 시간 동안 UX기초와 프론트엔드 기초  온갖 공부를 했던 , 닥치는 대로 처리했던 실무와 벼락치기 아이엘츠 공부를 통해 쌓은 영어 실력 정도였다. 하지만 해외 대학원의  그리고  EU 학생에게 주어지는 유럽 학생과 동일한 학비 혜택은, 대학원 최종면접에서 장렬히 광탈함과 동시에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지나친 낙심에 빠진 가운데, 사정을  리가 없는 회사에서 내민 소소한 연봉 인상과 정규직 오퍼를 냉큼 받아 버렸다. 여기까지는 타협의 역사다.


이후 신기하게도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 나름의 기회를 얻게 되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맡고 본사에 1주일간의 연수도 다녀오게 되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새로운 비즈니스'는 본사에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망해 가는 비즈니스였다. 본사에서 해당 부서의 헤드를 비롯한 모든 직원이 1명만 남고 다 퇴사한 데다, APAC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두가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겠다고 바다로 뛰어들었고,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던 어느 날, 혼자 점심을 먹으러 간 파스타 집에서, 내 처지가 이 레스토랑의 알바생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했다. A4 4장에 인수인계서를 만들어 던지고는, UI/UX 디자인을 공부하겠다는 핑계로, 4년 반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났다. (정작 당시에 가려고 했던 UI/UX 디자인 학원에는 등록하지도 않았다)


#2. 그리고 광야가 시작되었다. 제 발로 회사를 뛰쳐나온 자에겐 냉혹한 현실의 모래바람이 휘몰아쳤고, 퇴직금을 다 끌어다 쓰도록 재취업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했던 일을 스스로도 명확하게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었고, 퇴사 사유를 그럴듯하게 지어내지도 못한데다, 직무를 명확히 정한 것도 아니었으며, 경력은 있지만 그 일은 하기 싫고, 그저 확실한 게 없다는 것만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프리랜서로 통번역이며 객원 마케터, 상세페이지 디자인 등 온갖 일을 닥치는 대로 했고 온갖 직무에 지원하면서 별별 사람을 다 만났다. 총무를 하기엔 아까운 인재라고 하면서 어떻게든 커리어를 세일즈로 바꿔서 40대까지 연봉 1억을 목표로 달려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그 자리에서 면접에 떨어진 적도 있었고, 6개월짜리 마케팅 어시스턴트 계약직을 하라고 6개월을 기다리라던 싱가폴 여자의 황당한 제안을 받는가 하면, 내 아이디어만 쏙 빼먹고 브랜드를 런칭한 못된 사람에게 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은 또다시 나를 같은 직무에 데려다놓고 말았다. 그것도 10개월짜리 산휴대체 계약직으로.


#3. 링크드인에서 해외 리크루터에게 연락을 받았고, 한국 오피스에서 1년 계약직 후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한 CS coordinator 포지션의 면접을 보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같은 회사에서 Office manager 일을 해 보라는 제안을 받고, 생각보다 연봉이 많이 올라서 좋다고 수락하고 나니 이게 웬걸, 계약서 쓰는 날에 이놈의 리크루터가 이 포지션은 계약연장 따위 없는 10개월 계약직이라는 게 아닌가.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었지만, 3n살 무직 미혼에서 하나라도 벗어나기 위해 울면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새 회사에서의 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몇몇 계기를 통해 인정을 받고 나니 이보다 편할 순 없었고, 감사하게도 이곳에서도 정규직 입사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이 회사에도 실적의 압박으로 인한 전사적 폭풍우가 한 차례 몰아친 끝에, 계약직 이후의 내 자리는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나는 또 어디를 가야 하나- 하는 시점에서, 헤드헌터를 통해 현재 재직중인 회사의 입사 제안을 받았다. 남은 휴가를 몰아 쓰면서 코로나 시국에 수술을 받기로 했었던 일정을 후다닥 해치우고, 1박 입원 후 퇴원과 동시에 정장을 갈아입고 면접장으로 날아가 면접에 합격하고 말았다.


#4. 지금껏 직장생활을 7년이나 했음에도, 무늬만 외국계인 이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야 내가 조직생활과는 정말 맞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입사할 때 재무제표를 흐린 눈으로 보았던 것 또한 이후의 회사생활에 큰 괴로움을 안겨 주었다. 30명의 정리해고를 거치는 내내, 한 순간도 퇴사자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 있기를 바라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이곳에서 2년 1개월을 버텼다. (이 회사에서 업무상, 정신적으로 겪었던 온갖 고초에 대해서는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퇴사가 간절했던 나머지 퇴사 판타지라는 장르를 개척해서 단편소설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회사에 입사한 이래로 취준생 시절보다도 더 많은 입사지원을 했고, 코로나와 맞물려 비대면 면접이 보편화된 덕에 눈치볼 것도 없이 숱한 면접을 치렀다. 우리의 친구 피플앤잡과 링크드인은 물론, 외국계 아니면 어떠냐며 사람인과 원티드를 통해 AI처럼 숱한 회사에 이력서를 뿌리기도 했다.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회사 탈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더이상 총무만은 안 하겠다는 나의 일념은, 아버지의 병환으로 온 가족이 모여 있던 중에도 이력서를 쓰고 있었을 만큼 지독했다고 한다. 로컬라이제이션, UX 라이터, 컨텐츠 마케터, B2B 마케터, 심지어 EA까지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업무에 포지션별로 이력서를 만들고, 헤드헌터란 헤드헌터는 다 통화하고, 미국 블라인드에서 Top tier 회사의 무명씨에게 컨택해 레퍼럴 써 달라고 징징대고, 어쩌다 하나씩 얻어 걸리고... 그러다 보니 별별 면접을 다 겪었다. 15년 전에 내가 다니는 회사를 3개월 다니고 퇴사한 분이 회사의 근황을 궁금해하며 면접에 부르지를 않나, 최종 면접에서 '반일감정이 심각한 현 상황에서의 한일관계 관련 외교이슈'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영어로 답하라는 말에 머리가 하얘져서 광탈하는가 하면, 3차 면접까지 봤던 회사에서 2주 넘게 피드백을 주지 않아 내가 먼저 그 회사에는 안 가겠다고 해 버린 적도 있었다. 심지어 인터뷰 중 본인의 단점을 묻기에 배가 고프면 예민해진다고 했다가, 예민한 사람과는 일할 수 없다며 면접에서 탈락시킨 경우도 있었는데, 차라리 그런 융통성 없는 사람과는 같이 일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기도 했다.

계속된 면접 광탈과 번아웃을 유발하는 업무,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인해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작년 말, 새해에는 출근과 동시에 사표를 던지기로 결단했다. 하지만 하필 그 날, 어느 헤드헌터가 EA 포지션을 3개나 주면서 "절대 퇴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바람에, 조금만 기다려 보자며 참다 보니 어느새 2월도 지나가고 있었다.


#5. 그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했던 EA 포지션은 3곳 모두 서류에서 전부 광탈했다. 심지어 이 회사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가겠다고 경기도 산골짜기에 있는 다른 회사의 EA에도 지원했건만, 헤드헌터 스크리닝을 잘 마치고도 서류에서 또 광탈했던 어느 날이었다. 브랜드 마케터 팀장, UX디자인 팀장 등등 매력적인 업무지만 내 경력상으로는 서류를 통과할 리가 없을 '신 포도' 같은 입사 제안 메일이 또 왔다. UX 디자인 PO라니, 어떤 업무인지 대충은 알지만 경력도 없는 나에게 제안할 이유가 없는 일, 그리고 생소한 업무와 회사 이름. 이런 포지션 제안이 날아올 땐 늘 그렇듯, 틀림없이 내 이력서를 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보낸 메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망설일 것도 없이 이 메일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중, 정말로 더는 이곳에서의 회사 생활을 못 해 먹겠다는 사건이 터졌다. 한동안 잠잠한가 싶더니, 되도 않는 일을 가지고 사유서를 써서 책상에 두라는 상사의 이메일에 심박수가 130까지 치솟으면서 분노의 화산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만둘 회사, 짤리나 내 발로 나가나 무슨 차이인가! 눈이 뒤집힌 나는 키보드 워리어의 본분을 다하여 그동안 있었던 모든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반박하는 분노의 답장을 보냈다. 다음 날에는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해서 상사가 보낸 메일을 보여 주었고, 그에게 지금껏 당한 것들을 모조리 털어 놓으면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부서나 직무를 바꿔주지 않으면 퇴사하겠다며 30분 가까이 랩을 하고 왔다.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피드백을 받지 못했고, 다시 쳐들어갈 채비를 하던 중 낯선 번호로 생각지도 못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ㅇㅇㅇ 코리아입니다. 취업제의 이메일 보내드렸는데 확인하셨는지요?"

"그러잖아도 연락을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제가 왜 이 포지션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리고 시작된 긴긴 디스커션 끝에, 면접 날짜까지 잡게 되었다. 그 다음 주에 퇴근 후 온라인으로 면접이 진행되었고, 살면서 처음으로 면접관이 면접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면접을 보았다. 면접 자체가 업무를 배우는 연속선상에 있었고, "의미 있는 프로덕트"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면접관의 말이 나의 심금을 울렸다. 지금껏 재미, 의미, 보람이 없는 3무 직종에서 겪은 설움이 한방에 씻겨 내려갔기에.

그리고 다음 날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고, 냉큼 오퍼를 받아 연봉 협상과 입사 날짜까지 조율했다.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길게 느껴졌던 이 회사에서의 2년 1개월간의 직장생활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상사와 전쟁 중이었기에, 나의 사표 수리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음에도 피해자가 알아서 퇴사를 해 주니, 회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맙겠는가.

오래 전부터 퇴사를 꿈꾸며 인수인계서를 정리해 두었던지라 큰 어려움 없이 퇴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 주면 진짜 이 모든 것이 끝이다. 제대를 앞둔 병장의 마음이 필경 이런 것이겠지.


#6. 이후 나에게 3개의 EA 포지션을 주었던 헤드헌터에게서, 지원했던 3곳 중 2개 회사에서 면접 제안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새 회사에 새로운 포지션으로 입사를 앞두고 있어, 면접 진행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전달하고도 많은 축하를 받았다. 나 또한, 그 분 덕분에 퇴사하지 않고 버텨서 지금까지 왔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3n세, 미혼, 해본 적 없는 새 직무로 직종 전환, 그런데 팀장 역할을 곁들인....

기대할 수 없으리라고만 여겼던 새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당탕탕 직장생활의 다음 시리즈에는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나의 앞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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