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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오소리 Oct 01. 2023

이 바닥에서 날 키운 건 팔할이 싸움이었다

커리어 에세이 (2) 나를 성장시켰던 일

대학교를 다니면서 숱한 과목들을 수강하고 시험을 보았지만, 그나마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기억할 수 있는 건 징그럽게 과제가 많아서 욕하면서 해치웠다든지, 팀플을 하면서 리서치와 발표를 준비하느라 지지고 볶았다든지 했던 경험이 남긴 흔적 뿐이었다. 회사 생활에서의 성장 경험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 직장 생활을 하며 겪어 온 크고작은 투쟁과 전투가 남긴 흔적들이 결국 나를 성장시켜 왔기 때문이다. 계단식 성장을 통해 일잘러의 길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었던 나의 '3대 전투 경험'은 다음과 같다.


1. 앞으로도 이걸 나 혼자 다 하라고 하시면 그만두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가 창궐했던 2020년 11월, 전 회사의 상사가 퇴사하면서 타 부서에서 업어온 말도 안 되는 업무를 나에게 떠넘기고 사라졌다. 그것은 바로 해외입국자에 대한 '격리면제 신청서'. 코로나가 한창이던 당시, 해외입국자에게는 2주간의 자가격리가 의무적으로 실시되었으나, 비즈니스 목적으로 입국하는 해외출장자에 한하여 여러 가지 비용 감면 차원에서 이를 면제시켜 주기 위한 제도를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실시했던 것. 해외 엔지니어가 국내 고객사에 방문하여 최종 확인을 해야 거래가 완료되는 형태의 비즈니스를 하던 회사 입장에서는 격리면제 신청이 필수적이었고, 이전에는 이 일을 각 부서별 담당자가 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이 뭔지도 모르던 전 상사가 이 업무를 전사적으로 통합해서 내가 담당하게 될 거라는 공지를 하곤 정작 본인은 퇴사해 버렸고, 마찬가지로 이 업무에 대한 이해가 1도 없던 나는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고 말았다.

이 업무를 담당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시시각각 변하는 K-방역 정책의 쓴맛을 몸소 체험하면서 허우적대야 했던 괴로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하며 이미 10년 전부터 '조용한 퇴사'를 적극적으로 실천해 오던 나조차도, 자려고 누우면 일이 테트리스처럼 쏟아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 본래의 내 업무도 모자라 야근에 야근을 거듭하며 이런 무의미하고 책임과 절차만 많은 일에 시달리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지긋지긋한 서류들과 싸우고 반려, 반려, 반려를 먹으며 머리를 쥐어뜯던 몇 주를 보낸 후,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책을 마련했다.

 1명의 격리면제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이 드는지를 직접 계산하고, 이 업무의 과중함에 대하여 정리하여, 상사의 동의 하에 아래 첨부파일을 가지고 대표에게 보고했다. 인원 안 뽑아주면 때려칠 거야 

꿩 대신 닭이라고, 요청했던 2년 이상 경력의 계약직 인원 대신 6개월짜리 대학생 인턴을 매번 채용하는 것으로 나의 요청은 일단락되었다. 어쨌든 그 덕에 지겨운 서류 업무에서 해방되었고, 30대가 되어서까지 만년 막내이던 나도 사수가 되어 업무를 지도할 수 있게 되면서 리더십 트레이닝을 경험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재 쓰고 있는 소설의 소재가 나왔다!) 또한 채용의 일부 과정(이력서 스크리닝 및 면접)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 미리 이를 겪어 본 덕분에 지금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잘 뽑을 수 있었다.

이 업무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정해진 기한 안에 서류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닥달요청하고 해외지사의 인원들과 소통하면서 해외입국자 80명 이상의 격리면제서를 발급했던 경험은… 인턴 채용 이후엔 내가 직접 모든 서류작업을 하진 않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직접 담당해야 했었는데, 다행히도 이 고생스러운 경험은 결국 다자간 커뮤니케이션 역량 강화 및 이직/전직의 밑거름이 되었다.

 

2. 고갱님 이건 얘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2022년 6월도 나에겐 지난한 투쟁의 시기였다. 새로운 업무를 맡아 팀 전체를 빌드업하는 포지션으로 이직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세부사항을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문제는 업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실무자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비즈니스를 설계해 둔 것이었다. 더 나쁜 것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이 업무 프로세스를 기획한 사람들(중에는 역시나 퇴사예정자 포함 하여튼 나가는 마당에 왜들 그러는지)이 고객사의 실무자들에게 '이제 협력사에서 이 업무를 다 알아서 할 테니 당신들은 이 일에서 해방이다'라는 식의 사실이 아닌 기대를 심어준 것이다. 업무 특성상 100명 가까운 이해관계자가 있으며, 갑-을-병(-정)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물리적인 시간이 엄청나게 투입되어야 비로소 진행이 가능한 복잡한 업무임에도 이러한 정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고객사가 요청하는 일이라고 해도, 입사 2개월 차에 이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 정면돌파 및 설득에 들어갔다. 당시 함께 일하던 동료(aka 전우)와 함께 상황을 정리했고, 고객사 팀장급 및 실무자와 미팅을 해서 그들의 기대와 현재 상황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에 대하여 보고했다. 결국 몇 번의 우당탕탕을 거치고 나서야 고객사 실무자들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어 요청사항 대부분이 반영되었고, 이 때를 기점으로 고객사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분명 내 매니저가 있지만 없는 것이나 매한가지인 현 회사의 특성상, 이 모든 것은 결국 각개전투의 일환이었다.


3. 패딩턴 씨의 PIP: 둘 중 하나만 골라라, 안 되면 될 때까지

2번의 상황에서 함께 맞서 싸우던 나의 전우는 수습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대기업의 막차를 타고 떠나갔다. 유능하고 성격도 좋았던 그녀의 행복을 빌며 그녀를 보낸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우리 회사와 나의 상사가 뽑아 놓은 그녀의 후임자는 이 업무를 결코 해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하 그 사람을 패딩턴 씨라고 부르겠다.) 패딩턴 씨에 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지만 지면상 생략하고, 내가 대처한 방식에 대해서만 후술하겠다.

패딩턴 씨를 알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패딩턴 씨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고, 곧바로 매니저에게 보고했지만 그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패딩턴 씨가 내 부하 직원도 아니고, 나와 동등하게 일을 나누어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 인수인계를 포기한 채, 실제 업무가 아닌 알바생 수준의 단순업무를 종종 부탁했을 뿐임에도 매일매일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구두 보고로는 방법이 없겠다 싶어, 미국 블라인드에서 많이 보았던 PIP를 실제로 써먹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았다.


PIP stands for: Performance Improvement Plan


PIP의 의미만 보면 '성과 개선안'인 것 같지만, 업무 역량이나 성과가 미흡한 사람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개선을 요청하고,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를 근거로 해고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PIP를 받았는데 어떡하지? 하면서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의 글을 많이 봤었다. 패딩턴 씨가 이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개선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절차상 필요할 것 같아 구글에서 PIP 템플릿을 검색 후 작성하여 매니저에게 보고했다. 1달 동안 구두 보고 1번, 서면 보고 2번을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내 매니저는 패딩턴 씨의 업무역량과 무관하게 고객사에게 밉보이지 않고 모든 상황이 조용하게 흘러가기를 원했다. 심지어 그는 나더러 패딩턴 씨를 데리고 조용히 일해주면 안되겠니? 하며 나를 설득하려는 식사 자리를 만들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패딩턴 씨와의 대화 녹취록이 담긴 분노의 프레젠테이션을 가져갔다. 입사 3주차가 되도록 함께 일하는 동료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패딩턴 씨의 녹취록 내용을 보고 어이가 없었던 동료들이 다같이 설득해 준 덕에, 그제야 내 매니저는 자신이 채용을 잘못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를 내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패딩턴 씨는 퇴사 전 1개월간 이직 준비를 하면서 한 달을 더 일하기 원했는데, 매니저가 이 사실을 고객사에게 알리지 않고 이 기간 동안에도 동일하게 패딩턴 씨가 고객사에 출근하도록 한 것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딕션 터지는 프리스타일 랩으로 HR에 이 모든 것을 털어놓자, 이 모든 상황의 급박함과 비정상성을 인지한 HR이 가까스로 내 매니저를 설득해서 패딩턴 씨를 고객사 사무실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모든 과정이 매끄러웠을 리 없고, 매니저는 결국 고객사의 엄청난 컴플레인을 받았다. 패딩턴 씨의 이슈에 대해서 몇 번을 보고해도 허공에 외치는 식이었던 나의 입장에선 이 모든 것이 강 건너 불구경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고객사에서 나 포함 2명이던 담당자를 3명으로 충원하기 원했고, 나는 나머지 2명의 채용을 담당했다. JD도 새로 썼고, 인재풀 검색부터 이력서 스크리닝, 인터뷰까지 다 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좋은 동료들과 즐겁게 일하며 상호보완적 선순환을 경험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회사도 결국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조직이라는 것을 많이 깨달았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로 징징거리는 건 소용이 없고, 메타인지를 바탕으로 나의 현 상황에서 필요한 것, 억울한 것을 전부 데이터로 만들어서 설득해야 한다. 성실하게 우직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으며, 적절히 생색도 내고 나의 역량과 실적을 계속 드러내면서, 내가 이 조직에 꼭 필요한 인재이니 니들이 알아서 나한테 잘 하고 맞춰 줘야 한다는 것을 계속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조직 생활을 통해 향상시켜야 하는 역량도 '잘 싸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아닐까 한다. 전투종족이 되는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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