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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오소리 Dec 12. 2023

New Rules: 존버를 위하여

커리어 글쓰기 (7) 버티는 삶에 관하여

때는 회사생활을 하며 겪던 최악의 슬럼프 시기였다. 이직 3개월차부터 나의 모든 세포들이 RUN을 외치고 있었건만, 어느새 입사 1년을 넘긴 이후부터의 나는 기약 없는 불확실함 속에 지쳐 가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 언제까지 이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정말이지 내 인생의 아까움을 알면서도 때려치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나는 죽도록 미워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 가시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에도 입사 지원서를 쓰고 있었을 만큼 절박했고 간절했지만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시에 하고 있던 단편작가 출간 작업물의 퀄리티마저 포기하며, 어느 스타트업의 UX Writer 포지션 준비에 올인했던 적이 있었다. 잘 풀린 소개팅마냥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2차 면접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불현듯 날아온 한 통의 메시지에 실낱같은 모든 희망이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내부 추천으로 해당 포지션에 경력직 인원을 채용하게 되어, 부득이 2차 면접이 취소되었습니다."   


원하지 않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며 급여에 맞바꾼 나의 젊음을 생각할 때마다 통탄과 절망이 쏟아지던 당시, 설상가상으로 나는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당시 무능함의 극치를 달리던 팀장이 남의 부서 등쌀에 밀려 떠넘겨진 업무를 나에게 강요하자, 내 업무도 있는데 남의 부서 일까지 해야 하냐며 하지 않겠다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온갖 자질구레한 것으로 갈구고 괴롭히는 비열한 팀장 밑에서 일한 탓에 갖은 인격적 모독과 갖은 고초를 겪었다. 그렇다고 내 담당 업무는 멀쩡했는가? 애초에 그랬다면 그토록 처절하게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재미/보람/의미가 없는 3무의 삶, 급여도 인간관계도 업무도 모두 최악이었으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자려고 누우면 업무가 테트리스처럼 쏟아지는 게 느껴졌고, 어차피 내일 또 가야 할 회사인데 퇴근해서 무엇하나 싶으니 퇴근길도 즐겁지 않고, 월요병은 토요일 아침부터 시작될 지경이었다. 


이 당시의 나에게 몇 가지 행동강령을 내렸다.


1. 회사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곳이다.

당시 점심식사를 회사 근처 구내식당에서 팀장 및 다른 팀원들과 했었다. 오후 일과를 위한 영양 섭취라는 목적 외에는 아무런 즐거움을 추구할 수 없었기에, 밥 먹을 때라도 팀장을 피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이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매일 저녁 나를 위한 화려한 도시락을 만들어서는, 도시락을 싸 오는 다른 팀원들과 나누어 먹었다. 시금치 갈아 만든 팔락파니르 커리에 홈메이드 리코타 치즈를 넣어 간 어느 날, 회사에 이걸 점심 도시락으로 싸 오는 게 실화나며, 정말 모두가 한 입씩 다 먹어 본 날도 있었다. 다른 팀원들과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다 보니, 이들은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지만 나와는 다른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타 부서로 가려는 것마저 사사건건 방해하는 팀장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퇴사 뿐이었기에, 이직 준비 이외의 사사로운 정에 마음을 쓸 수는 없었다.


2. 지정된 업무시간 외에는 절대로 일 생각을 하지 말 것. 회사 가기 싫다는 말을 죽었다 깨나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 일을 그리도 좋아했다고, 업무시간도 아닌데 일 생각을 사서 하는가? 그런다고 연봉이 늘어날 거면 10년 전에 억대연봉을 찍었을 테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미리미리 회사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가? 이런 비생산적인 행동을 당장 그만둔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사무실 문이 열리는 그 순간까지, 회사가기 싫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워낙에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였는지 다행히 이 방법이 아주 유용해서, 이걸 그만두니 퇴근도 주말도 모두 즐거워졌고 정상 궤도를 되찾았다.  


3. 퇴사 파티원을 모집한다.

애초부터 '어차피 나갈 회사'라고 생각하며 친한 동료를 만들지 않았기에, 비밀리에 진행 가능한 작전이었다. 아무에게도 접근하지 않았고, 대신 새로운 멤버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만을 골랐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다같이 모인 적이 없었기에, 회사에서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모여서 쓸데없이 회사 욕을 하는 대신, 헤드헌터 정보와 면접 후기를 공유하고 지원해볼 포지션과 회사를 추천하는 등 각자의 자리에서 최소 에너지, 최대한의 생산성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이 회사를 벗어났다. 


긴긴 터널과 같은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파악하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스스로의 시선과 관점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상황 자체를 바꿀 힘이 생긴다. 이건 결코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가 아니다. 번아웃 상태에서 나는 피곤하다 나는 지쳤다를 500번 외친다고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면 애초에 번아웃이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철저하게 소진되어 버렸다면, 지친 나를 일으켜세워 줄 수 있을 일상의 작은 무언가를 찾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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