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에세이 (5) 이토록 다른 아와 어
어느 조직이건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조직, 행정 절차가 잘 진행되는 조직이 좋은 조직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협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이 바닥IT업계에서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일하다 보면 얼마나 그 결과물이 산으로 가는지를 실감하게 되는 것이 일상이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 서로 되묻고 되묻고 되묻다가 지쳐서 '고객사에 문의하라'는 결론이 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은 당연지사. 물론 애초부터 상대방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작성하는 것이 기본이거늘, 항상 시작점부터 영 좋지 않은 에러가 발생하는데 이 상황만큼은 영영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나마 이런 경우는 양호한 편이다. 더 큰 문제는 아래 그림처럼 서로 책임회피를 하거나 상대의 업무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잡음이다. 각자 자기 일만 잘 하면 되지 않냐고? 자기 일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남의 일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다가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현재 해외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이 필요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팀내 어느 디자이너의 업무태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일이 있었는데, 그 결과는 상상초월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업무 특성상 해외 디자이너의 필요 역량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다못해 어떤 내용이 어느 페이지에 있는지 찾을 수라도 있어야 할 만큼) 막대한 분량의 UX 시나리오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팀내 인원이 변경되면 신규인원의 학습시간으로 인한 불가피한 버퍼가 발생하는 등 조직 운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현지 PM은 해당 디자이너를 냉큼 빼다 다른 프로젝트로 보내버리고는 우리에게 인원 변경이 있을 거라며, UX는 잘 몰라도 한국말 잘 하는 친구가 대신 들어올 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는 것이었다......
뚜껑이 열린 우리 팀 멤버들은 PM과 팀 리더를 미팅에 소환했다. 우리가 빡친 포인트는 크게 3가지였다.
1. 우리가 언제 태도 문제가 있는 친구를 내보내라고 했는가? 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지! 왜 팀 멤버 교체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멋대로 하면 너희랑은 일 못 한다.
2. PM으로서 이 프로젝트의 성격을 알기는 아는가? UX 경력자가 와도 업무 방식과 문서 공부에 시간이 한참 걸릴 판인데, 아무리 업무에 외국어(한글)가 많이 쓰인다고 해도 UX를 모르는 사람을 UX디자이너라고 뽑아 놓으면 우리가 다 가르치라는 것인가?
3. 이런 사고는 니네가 치고, 고객사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하라고? 너는 대체 하는 일이 뭐냐?
미팅에서 우리가 위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자, 듣고 있던 PM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Interesting..."
본인이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는 이 상황이 재밌다고? 유체이탈 화법으로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는 그 한 마디에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다시는 미팅 하다가 interesting 같은 소리를 하지 못 하도록 이 놈은 내가 반드시 조진다- 는 전투종족의 분노가 몰려오면서 회사생활 10년만에 샤우팅 랩을 시전하고 말았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마어마하게 팩폭을 날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날 분노가 터진 나를 바라보던 동료들의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수습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그나마 이 대참사를 수습했던 것은, PM이 모든 상황을 정리한 다음 고객사에 인원변경 보고를 한 메일에 해당 건에 관한 쟁점을 정리해서 본인+고객사+우리의 매니저까지 모두가 이 상황을 인지하도록 전달한 것이었다. 결국 이런 식의 강력한 컴플레인을 몇 차례 호되게 받은 이후부터, PM은 더이상 일방 통보하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일하지 않게 되었고, 우리는 고객사로부터 책임감 있게 팀 관리를 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가 만약 Interesting이라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호되게 두드려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가장 중요한 생존 소프트 스킬이다. 아와 어는 결코 같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