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송년을 기억하며
점차 교회와 멀어지는 유럽인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크리스마스 사랑이 줄지는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주변에는 그리스도교 신자이면서 크리스마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교회에 가지 않는 나는 이 무렵만 되면 기분이 들뜬다.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영화 중의 하나는 <성모 마리아 학교의 종소리>이다. 빙 크로스비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한 고전 영화에서 특별한 캐럴을 만난다. 성탄 연극에서 유아반 친구들이 마련한 노래는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생일 축하합니다 (...) 사랑하는 예수님, 생일 축하합니다!”
나는 2018년 크리스마스를 파리에서 보냈다. 온화한 날씨에 청명한 하늘이었다. 직전에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장터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 테러가 난 뒤라 뒤숭숭했지만, 노트르담의 자랑거리인 크리스마스 장터는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로 북적였다.
노트르담 성당 안의 크리스마스 미니어처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베들레헴의 마구간과 양치기의 언덕은 프로방스의 농촌으로 거듭난다. 방앗간, 빵집, 푸줏간 등 시장 풍경이 아기자기하게 묘사되었다. 금방이라도 헛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듯하다. 성당 밖 우뚝 선 샤를마뉴 대제 동상은 테러나 전쟁 따위로부터 착한 사람들을 보호해 줄 수호신처럼 보인다.
파리에서 돌아온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19년 4월, TV 뉴스에서 기막힌 장면을 보았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 남대문 화재 따위의 인재에 익숙했던 나이지만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 뻔히 지켜보는 사람들 앞에서 타들어 가는 모습에 아연실색했다. 13세기에 완공되어 파리의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로 사랑받던 노트르담은 몇 시간 만에 폐허로 변했다.
그 화가 미친 것일까? 채 1년이 되지 않아 지구촌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2020년 12월 24일 밤, 복구 작업이 한창인 노트르담 안에서 작은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열렸다. 여덟 명의 성가대 단원과 소프라노 줄리 푹스,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이 캐럴과 성가를 연주하고 부른 25분짜리 공연을 프랑스 TV가 중계방송했다.
여기저기 비계가 늘어서고 비닐로 가린 성당 한구석에 마련된 무대에, 공사장 작업복(노트르담 성가대 정복과 같은 파란색이었다)을 입고 흰색 안전모까지 쓴 연주자들의 모습은 벼랑 끝에 선 우리의 사투를 상징하는 듯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아베마리아’, ‘라우다테 도미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따위의 익숙한 음악은 화마와 질병으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모두의 마음에 불어넣었다. 나는 프랑스 TV 사이트에서 갈무리한 영상을 이후로도 가끔 다시 돌려본다. <성모 마리아 학교 종소리> 캐럴의 새로운 대안이다.
코로나 시절이 차츰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그 새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폭발 직전이다.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러시아 혁명 뒤 공산당에게 쫓겨날 유대인들이 랍비를 찾아가 호소한다. “그분이 오신다면 지금이 적절한 때 아닙니까?” 랍비는 늘 정답을 내야만 한다. “다른 곳에 가서도 그분을 기다릴 수 있네.”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우리가 가진 전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