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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Apr 11. 2024

풀치넬라

스트라빈스키의 개입

(계속) 


스위스에 피신했던 발레단 전속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전쟁이 끝난 뒤 복귀한 것이 이 무렵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스위스에서 <병사 이야기>로 자신감을 얻었고, 야심작 <결혼>의 초연을 벼르던 중이었다. 그러나 댜길레프는 전위적인 음악 대신 흥행이 보장된 편곡 발레에 더 관심을 보였고, 이탈리아 바로크 작곡가들의 숨은 걸작을 코메디아 델라르테 양식으로 편집한 <풀치넬라>의 편곡을 스트라빈스키에게 주문했다. 선곡은 골도니나 작곡가들의 의도와 무관했다. 

베네치아의 카를로 골도니상

이렇게 1920년 파리에서 초연된 <풀치넬라>는 신고전주의의 시작을 세상을 알렸고, 선례에 따랐을 뿐인 스트라빈스키는 일약 신고전주의의 대부가 되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안데르센의 동화에 붙일 발레를 위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소품과 가곡을 편곡했다. <풀치넬라>나 <요정의 입맞춤>에 동원된 옛 음악의 샘솟는 선율은 무조음악이 지배하던 20세기 청중의 귀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먼저 <풀치넬라>는 18세기 ‘코메디아 델 라르테’의 인기극이던 <네 명의 풀치넬라>를 줄거리로 삼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풀치넬라네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핌피넬라는 풀치넬라의 여자친구이다. 카비엘로와 플로린도가 마을 처녀 로세타와 프루덴차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두 처녀가 청년들의 구애를 받는 사이 풀치넬라가 등장한다. 그는 온 마을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두 처녀도 풀치넬라에게 호감을 보인다. 질투심에 토라진 카비엘로와 플로린도. 핌피넬라도 남자친구의 인기가 달갑지만은 않다. 급기야 풀치넬라는 질투심에 눈먼 사내들에게 쫓겨 흠씬 두드려 맞는다. 풀치넬라는 맞다가 그냥 죽은 척한다. 홀로 남은 그는 친구 풀비오와 옷을 바꿔 입고 풀비오가 죽은 체한다. 모여든 사람들이 풀치넬라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때 마법사(사실은 풀치넬라)가 등장해 풀치넬라(죽은 척하는 푸르보)를 살린다. 죽었던 풀치넬라가 살아나고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갑자기 둘이 된 풀치넬라. 카비엘로와 플로린도도 풀치넬라처럼 변장하기로 한다. 로세타와 프루덴차는 그들이 풀치넬라인 줄 알고 쫓아간다. 네 명이 된 풀치넬라를 본 핌피넬라는 혼란스럽다. 진짜 풀치넬라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핌피넬라는 슬퍼한다. 마침내 처음 옷을 바꿔 입었던 푸르보가 상황을 정리한다. 각자의 짝이 가려지고 세 쌍은 행복을 다시 찾는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줄거리를 발레로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바로크 시대 음악을 골라 편곡했다.

이것이 첫 곡의 원곡이다

1. 서곡: 도메니코 갈로, 트리오 소나타 1번 G장조 – 1악장 모데라토

2. 세레나타: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플라미니오, 1막 – 폴리도로의 목가

3. 스케르치노: 도메니코 갈로, 트리오 소나타 2번 B플랫장조 – 1악장 프레스토

4. 더욱 생기 있게: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플라미니오, 3막 – 케카의 칸초나

5. 빠르게: 도메니코 갈로, 트리오 소나타 2번 B플랫장조 - 3악장 프레스토

6. 조금 느리게: 도메니코 갈로, 트리오 소나타 8번 E플랫장조 - 1악장 빠르게 과하지 않게

7. 빠르게: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사랑에 빠진 수사, 1막 – 바넬라의 아리아

8. ‘만족하며 살겠습니다’: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칸타타 <내 눈의 빛> - ‘만족하며 살겠습니다’

9. 매우 빠르게: 도메니코 갈로, 트리오 소나타 3번 C단조 – 3악장 빠르게

10. ‘이 짧은 말들’: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플라미니노, 1막 – 바스티아노의 아리아

11. ‘평화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사랑에 빠진 수사, 3막 – 아스카니오의 아리오소

12. 알레그로 – 알라 브레베: 도메니코 갈로, 트리오 소나타 7번 G단조 - 3악장 알레그로

13. 타란텔라: 바세나르, 콘체르티노 2번 B플랫장조 – 4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14. ‘나를 사랑한다면’: 알레산드로 파리소티, 옛 노래집 - ‘나를 사랑한다면’

15. 알레그로: 카를로 이그나치오 몬차. 하프시코드 모음곡 1번 E장조 - 론도

16. 가보트와 두 개의 변주: 카를로 이그나치오 몬차, 하프시코드 모음곡 3번 D장조 - 가보타

17. 생기 있게: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첼로와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소나타 F장조 – 4악장 프레스토

18. ‘달콤한 두 눈, 사랑으로 불타네요’: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사랑에 빠진 수사 1막 – 돈 피에트로의 칸초나

19. 알레그로 아사이: 도메니코 갈로, 트리오 소나타 12번 E장조 – 3악장 프레스토

Stravinsky : Pulcinella (Barbara Hannigan, Julia Dawson, Ziad Nehme...)

스트라빈스키는 이 가운데 14번 ‘나를 사랑한다면 Se tu m’ami’을 페르골레시의 노래로 알았다. 파리소티가 자작곡을 페르골레시의 곡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원곡 못지않은 감각적인 편곡으로 귀를 사로잡은 스트라빈스키의 업적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톰마시니와 레스피기의 전작 또한 간과해선 안 될 주춧돌이었다. 

Parisotti: Se tu m'ami (formerly attributed to Pergolesi)

Se tu mami, se tu sospiri    나를 사랑한다면, 한숨 쉬는 게

solper me, gentil pastor,    나 때문만이라면, 목동이여

ho dolor de' tuoi martiri,    당신의 아픔을 슬퍼할게요

ho diletto del tuo amor,    당신의 사랑 달게 받겠어요

ma ce pensi che soletto    그러나 나도 당신만을

io ti debba riamar,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pastorello, sei soggetto    사랑하는 목동님, 당신은

facilmente a t'ingannar.    헛짚은 걸 알게 될 거예요

Bella rose porporina    오늘 실비아는

oggi Silvia sceglierà,    아름다운 빨간 장미를 골랐지만

con la scusa della spina    내일은 버릴 겁니다

doman poi la sprezzerà.    가시를 핑계로요

Ma degli uomini il consiglio    남자의 충고 따윈 

io per me non seguirò.    따르지 않을래요

Non perchè mi piace il giglio    백합을 좋아한다고

gli altri fiori sprezzerò.    다른 꽃을 홀대하진 않으니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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