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이 아닌갑여?
시칠리아는 영화의 고장이다. <대부>, <시네마 천국>, <말레나>, <그랑 블루> 따위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시칠리아를 꼽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때때로 고향에서 더는 희망을 찾지 못하고 떠나기도 한다. 여러 차례 이탈리아 방문 끝에 시칠리아에 도착한 나는 괴테를 맹신하지는 않았다. 그는 피렌체를 반나절 만에 스치듯 지나갔기 때문이다. 단지 로마를 빨리 보려는 열망 때문이라나! 더욱이 영화에서 본 명소라 해봐야 주로 황량한 풍경이고, 극심한 무더위와 불편한 교통, 마피아의 본산이라는 선입견으로 시칠리아행을 망설이기만 했다. 아는 게 병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바사니오는 벨몬트(Belmont)에 사는 포셔라는 여인에게 구혼하기 위해 친구에게 큰돈을 빌린다. 뒷이야기는 각자의 몫으로 남기고 여기서는 벨몬트가 어디인지에 주목해 보자. 뜻은 ‘아름다운 산’인데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많은 학자가 추론했는데, 대부분 베네치아 인근 빌라를 꼽았다. 그중 해리스 제이 그리스턴(Harris Jay Griston)이라는 학자는 특이하게 먼 시칠리아를 벨몬트가 있는 곳으로 지목했다. 바사니오에게 필요했던 많은 여비와 왕복 기일, 경쟁 구혼자의 면면으로 볼 때 베네치아 근처가 아닌 시칠리아가 부합한다는 것이다. 시칠리아의 벨몬트 후보지는 어디일까? 괴테는 팔레르모 해안의 몬테 펠레그리노(Monte Pellegrino)를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도 언급했듯이 온통 바위투성이에, 관목과 이끼조차 보이지 않는 곳이다. 만일 로잘리아 성녀의 유골이 발견되어 팔레르모가 기리고 있지 않다면 거들떠보지 않았을 곳이다.
대신 팔레르모에서 내륙으로 10㎞쯤 들어가면 몬레알레(Monreale, ‘왕의 산’이란 뜻이다)라는 곳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 12세기 노르만의 굴리엘모 2세는 시칠리아에서 이슬람을 몰아냈다. 어느 날 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성당을 지으라고 명한 자리가 몬레알레이다. 대성당은 이슬람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재한다. 화려한 내부의 금색 모자이크 벽화는 비잔틴 양식을 따른 베네치아 남쪽 라벤나의 성당들과 유사하다.
굴리엘모가 성모에게 성당을 봉헌하는 조각과 그림이 성당 곳곳에 둘려 있다. 내게는 마치 바사니오가 안토니오의 돈으로 정성껏 마련한 선물로 포셔에게 구혼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물론 포셔가 다른 구혼자를 물리고 바사니오를 선택한 까닭은 돈 때문이 아니라 그의 소박하지만 지혜로운 마음 때문이다.
몬레알레를 벨몬트의 후보로 유보해 두고 에리체(Erice)로 가보자. 시칠리아 서쪽 끝 아름다운 해안 절벽에 일찍이 그리스 사람들이 성곽을 짓고 베누스 신을 모셨다. 이곳을 ‘키클롭스(Cyclops)의 고장’이라고 일컫는다.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을 동굴에 가두고 잡아먹으려 했던 폴리페무스가 외눈박이 거인족 키클롭스이다. 실제로 키클롭스의 동굴은 그리스에 있지만(호메로스와 달리 에우리피데스는 이곳 시칠리아로 썼다), 이곳에 거대한 성곽을 지으려면 그의 힘을 빌렸으리라는 설이 전한다. 아무래도 벨몬트와 연관 짓기엔 너무 높고 오래된 곳이다.
앞서 대중에게 알려진 여러 영화를 언급했지만,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영화는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감독의 <표범 Il Gattopardo, 1963>이다. 이는 1958년에 나온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Giuseppe Tomasi di Lampedusa)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비스콘티의 영화는 니노 로타(Nino Rota)의 베르디풍 음악과 더불어 시칠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용광로처럼 녹여낸다. 배경은 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가 붉은 셔츠의 천인대(Mille)를 이끌고, 시칠리아의 부르봉 왕가를 전복할 무렵이다. 이탈리아 통일의 도도한 물결과 더불어 귀족의 특권이 서서히 몰락해 감을 직감한 파브리치오 살리나 대공(버트 랭커스터 분)은 가문의 문장(紋章)인 표범을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표범’이고 ‘사자’였다. 자칼이나 하이에나가 우리를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무릇 ‘표범’은 자칼과 양에 아랑곳없이 스스로 ‘다른 소금’임을 믿어야 한다.”
대공은 실상 작가의 할아버지가 모델이었으며, 비스콘티 가문도 밀라노의 유서 깊은 귀족이었다. 대공은 조카 탄크레디(알랭 들롱 분)를 딸과 맺어주려 하지만 약삭빠른 탄크레디는 벼락부자이자 속물인 시장의 딸(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분)과 결혼하며 바뀐 세태에 부응한다. 상원의원직을 마다한 대공이 조카의 약혼식 무도회에서 아름다운 약혼녀와 왈츠에 맞춰 춤을 추고 먼저 집으로 향하며 영화는 끝맺는다. 람페두사는 역사를 짊어진 한 사람의 신념을 묵직한 말투로 묘사한다. 지배 세력이 수없이 바뀌었지만 “모든 것을 유지하고 싶다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라는 정신은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과 영화 속 돈나푸가타(Donnafugata)는 대공의 영지 팔마 디 몬테키아로(Palma di Montechiaro)의 가칭이며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와이너리 이름도 여기에서 따왔다. 뜨거운 태양과 에트나 화산재가 퇴적된 비옥한 토양은 돈나푸가타 와인을 시칠리아 밖까지 널리 알린 일등 공신이다. 돌체 앤 가바나와 협업한 라벨도 눈길을 끌고, 영화주인공 카르디날레가 와이너리를 방문해 가족과 찍은 사진도 자랑스레 붙어 있다. 진득한 초콜릿 풍미가 혀를 누르는 와인이 마치 표범의 정기를 품은 듯하다.
고전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팔레르모의 랜드마크는 오페라 하우스이다. 마리오 푸조 원작,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대부>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이곳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돈 코를레오네(알 파치노 분)는 자기 뜻을 거스르고 오페라 가수가 된 아들의 데뷔 무대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성공리에 막을 내리고 극장 밖으로 나오던 대부는 암살자가 자신을 겨누고 쏜 총탄에 딸을 잃는다. 앞선 오페라의 ‘간주곡’이 흐르며 삼대에 걸친 가문의 파란만장한 여정이 막을 내린다.
많은 관객이 기억하는 이 장면은 좀 더 파고들 여지가 있다. ‘간주곡’이 흐를 때 대부의 뇌리에 가장 소중했던 세 여인과 춘 왈츠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먼저 첫 신부였던 아폴로니아이다. 그녀의 이름은 시칠리아가 그리스 식민지였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두 번째는 임신한 아내 케이와 춘 왈츠이며, 마지막 상대는 먼저 간 딸이다. 감독은 세 편에서 가져온 회상에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을 덧입혔다. <표범>의 격언에 빗대자면 사랑도 음악도 모두 바뀌었지만, 운명이라는 보이지 않는 줄에 매인 꼭두각시의 삶은 그대로인 것이다. <표범>의 베르디 왈츠에 상응하는 장면 아닌가!
젊은 날 마이클 코를레오네는 아버지의 저격과 맏형의 암살 탓에 진로가 꼬인다. 그가 시칠리아로 피신 왔다가 엉겁결에 결혼식까지 올린 마을은 구불구불 산간의 사보카(Savoca)이다. 이곳이야말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어울릴 법한 풍경이다. 마을 어귀에는 코폴라 감독의 실루엣이 카메라로 골짜기를 내려다본다. 결혼식이 열린 교회는 최근 들어 관람료까지 받을 정도로 찾는 사람이 늘었다. 관광객을 태우고 언덕을 오르내리는 삼륜차의 이름은 ‘달콤한 인생’이다. 관리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잠깐 교회 안을 돌아본다. 영화에서 주례 사제가 입었던 예복까지 전시해 놓았다. 소나기가 흩뿌리나 싶더니 금방 햇살이 무지개를 앞세워 다시 나타난다. 아름답긴 하지만 여기도 벨몬트라기엔 까마득한 오지이다.
타오르미나의 로마 극장은 천혜의 입지이다. 두 산봉우리 사이의 분지를 무대로 자연적인 관람석이 펼쳐지고, 눈앞엔 바다가, 오른쪽으로는 에트나 화산 아래 시가지가 보인다. 이곳에서 괴테는 <오디세이아> 가운데 ‘나우시카의 이야기’를 극화할 구상을 했다. 파이아키아의 공주 나우시카는 난파선에서 떠밀려온 오디세이아를 구해주고 사랑에 빠지나 그가 고향행을 택하자 단념한다. 일설에 나우시카는 뒷날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와 결혼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괴테는 이 이야기를 나우시카가 상심 끝에 자결하는 비극으로 쓰려고 했다.
결국 미완에 그친 대신 그는 시칠리아에 가져온 희곡 <토르콰토 타소 Torquato Tasso>의 원고를 마무리하는 데 더 박차를 가한다. 괴테는 16세기 문예부흥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던 페라라의 궁정 시인 타소의 삶을 조명한 이 작품을 통해 바이마르의 궁정 시인이자 고관이던 자신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 자문자답한다. 실제로 타소는 만년에 정신이상으로 투옥과 떠돌이 신세를 겪다가 쓸쓸히 죽는다. 그러나 신분 제약을 넘어선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와 그 창작의 고뇌에 대한 괴테의 결말은 열린 것이다.
그는 시칠리아에서 현지 안내인이 한니발의 격전지를 소개하며 뿌듯해하자 과거와 현실을 함부로 뒤섞지 말라며 나무란다. 자신은 작품 안에서 호메로스와 타소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면서 안내인의 최소한의 상상력은 제한한다. 역사의 평가는 범인의 몫이 아니라는 태도는 어쩐지 권위적이다. 괴테의 성품은 그의 작품의 위대함에 미치지 못한다. 나 또한 <표범>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가이드가 맘에 들지 않지만, 괴테를 반면교사로 널리 이해하려 했다. 내가 너무 멀리 간 탓이다. 아그리젠토와 시라쿠사에 벨몬트 비슷한 곳이 있기를 혼자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