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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Dec 31. 2018

8이 9가 되려 할 때

정든 2018년 보내기


나는 1년간 열심히 삽질을 했고, 삽질을 해야 해서 삽질을 했으며,
덕분에 방출해야 할 에너지를 제대로 방출했다.

 - <빅이슈> 2018년 마지막 호, ‘어느 시인의 일기’ 중 -



달의 숫자가 12월로 접어든 순간부터 '벌써 한 해가 다 갔네'라는 말이 오가기 시작해서 이즈음 되면 '정말 갔네' '2018년 다 갔어'하는 말들이 차고 넘친다. 아직 한 달이, 보름이, 일주일이, 하루가 남았는데도 12월은 매일 당장이라도 다 가버린 것처럼, 지나온 1년을 펼쳐놓고 싶게 한다.


나에게 2018년은 대이동의 한 해였다. 여러 부문에서 움직임이 많았다. 사는 곳을 서울에서 제주로 옮겼다. 새로운 사람과의 연애를 시작했다. 일하는 곳은 회사에서 개인 공간으로, 일상의 생각을 정리하는 곳은 종이 노트에서 브런치로 변했다. (몸속에 있던 맹장은 몸 밖으로 나갔고.)

참 좋았던 지난 여름이 아른아른.


얼마 전 한 친구가 묻더라. "후회할 때 없어?"하고. 친구가 궁금해하던 후회에는 대상이 생략되어 있었는데, 나는 뭐가?라고 묻는 대신 없다고 대답했다. 생략되어 있던 대상이 내가 변화시킨 그 무엇이라 할 지라도 대답은 같았을 거다. 속속들이 살펴보면 모든 변화의 순간순간마다 상당한 양의 고민과 망설임이 있었으나, 지나와보니 후회하는 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적어도 모두 나에게 필요한 시간과 선택이었다. 누군가 혹은 더 시간이 지난 뒤 미래의 내가 삽질이라고 판단할 지라도, 문보영 시인의 말마따나 삽질을 해야 해서 삽질을 했다. 삽질에도 절대량의 법칙이 있겠지.




일 년짜리 회상과 더불어 12월은 아직 오지 않은 뒤의 시간을 눈 앞에 끌어다 놓는다. 그러면서 ‘내년에는’으로 시작하는 다양한 문장이 만들어진다. 살 빼기나 꾸준히 운동하기 같은 단골손님들은 구태여 되새기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이니, 나는 한 해 동안 가지고 다닐 태도 같은 걸 만드는 편이다. 지키기 어려운 점에서는 단골손님들과 비등한 수준이지만.


이번의 ‘내년에는’은 걍 고로 해볼까 싶다. 김하나 작가님의 <힘 빼기의 기술>과 장기하 씨 노래 <그건 니 생각이고>의 영향이 크다. 남들을 자주 흘긋거리는 비교의식과 잘하고 싶다는 욕심 탓에 가볍게 시작해야 할 때를 자주 놓치는데, 내년부터는 그럴 때마다 걍 고 정신을 키워볼까 한다. 치열함과 무게감은 조금 덜어내도 좋으니, 일단 하고 또 하고 계속하고 볼 일이다.


상징적인 의미로다가 하루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던 SNS도 끊었다. 페이스북은 계정을 삭제했고, 인스타그램은 어플을 지웠다. 괜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게 맞나 아닌가 몇 번씩 스스로를 잣대질 할 시간에 '그냥 니 갈 길 가-'를 한 번 더 듣고 내 길 가야지. 나 같은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말이다.

「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인생을 못 보게끔 너무 많은 것들이 내 눈앞에 들이밀어진다. 골프 7세대가 나왔다, 이 톰포드 선글라스를 써봐라, 지금이 아파트 장만엔 최적기다.. 등등. 누가 그런 짓을 하는가? 바로 내가 한다!.. 그러니 나는 조심해야 한다. 나 같은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인생은 언제나 기회비용과 선택의 문제. '가만있자, 그 돈이면..?'으로 어떤 선택을 하는가, 다시 말해 얼마나 휘둘리고 또 휘둘리지 않는가, 그로 인해 인생은 조금씩 만들어지는 듯하다. 」

- 김하나, <힘 빼기의 기술> 중에서 -




어디선가 보았는데, 삶에 필요한 낙관은 미래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낙관이라고 한다. ‘나는 앞으로 무조건 잘 될 거야’가 아니라 ‘일어난 일은 다 잘되었다’하는 것. 일어날 일들이 무조건 잘 될 거라는 기대가 기본값이면 버틸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일 테다.


그래도 새해를 맞는 날만큼은 오고 있는 날들에 대한 낙관이 가득해도 좋지 않을까. 우리의 지난 1년은 다 잘 되었으니, 내년은 더 좋은 날들이 가득하길 바라면서.

2018년 안녕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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