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짝 Dec 07. 2018

바다가 보이는 병원에서.

제주에서의 수술. 그리고 입원 썰 풀기.

지금까지 올린 글들은 참 다양한 장소에서 썼다.

책상 앞에서,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제주로 부산으로 서울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등등.


이 글로 인해, 하나 더 추가. ‘제주 병원의 오션뷰 병실에 누워서’다.


새벽 응급실과 아침 수술을 거쳐 오늘로 이틀 째 입원 중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큰일 같지만, 간단하디 간단한 맹장수술을 한 게 다다. 그래도 맹장염 진단(정확히는 충수염)을 받고 나서는, 궁금과 걱정이 뒤섞인 마음으로 맹장수술 경험 썰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대로 다 읽은 것 같다. 말로는 많이 들어봤을 지라도, 말로만 들어 본 미지의 세계였기에.


그래서 나 또한 직접 경험하며 느낀 것들을 남겨놓고자,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어딘가에서 복통을 느끼거나 수술을 기다리며 검색하고 있을 또 다른 나에게 닿길 바라며.

제주는 병실에서도 바다가 보인다 :-)





‘에이 설마’와 ‘혹시 진짜’가 싸우고 있다면, ‘혹시 진짜’의 손을 들어주자.


병원에 가기 직전, 나는 제주에 온 친구와 만나 서귀포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참이었다. 휴게실에서 책 한 권을 빌려와 재밌게 보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복통이 찾아왔다.


처음엔 배 전체가 쿡쿡 쑤셨다. 평소에도 위장이 약해 잘 체하는 지라 또 체했나 싶었다. 와중에 오른쪽 아랫배가 다른 때보다 심하게 아팠다. 누르면 느껴지는 압통과 손을 뗄 때의 반사통이 있고 미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폰으로 열심히 검색해보니 맹장염 증상과 흡사했다. 그런데 맹장염을 의심해볼 수 있는 거지, 아닐 수도 있단다.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4시간 동안 응급실에 가야 돼 말아야돼를 놓고 고민했다. 제주는 서울이 아니라 병원까지 거리도 먼데, 갔더니 아니라 그러면 좀 그렇잖아- 싶었다. 게다가 Tv에서 본 것처럼 바닥을 뒹굴대며 복통을 호소할 정도도 아니었고.


응급의료상담(지역번호+119)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고, 상담도 받아봤다. 당시엔 경악스러웠던 상담 내용을 그대로 텍스트로 옮겨보자면... “맹장은 왼쪽 아니에요? 왼쪽인데 오른쪽 아랫배가 아파서 맹장염 같다고요... 뭐 본인이 병원 가고 싶음 가시는 거고 아님 마는 거죠. 제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나요.”


앞은 명확히 틀렸지만 뒤는 뭐..맞는 말이다. 결국 가라앉지 않는 복통을 안고 새벽 2시에 택시를 불러 응급실로 갔다. 맹장은 오른쪽 아랫배가 맞다.(왼쪽..ㅎ..드물게 왼쪽에 있는 사람도 있다곤 하지만 대부분 오른쪽!) 오른쪽 아랫배 부근의 복통이 지속된다면, 부디 쉬이 넘기지 않길. 별 거 아니다 싶어 참다가 터지면 큰 일 되니까.

그날 낮. 강아지에게 재롱떨 때만 해도 맹장이 있었지.




아무리 간단하대도, 수술은 수술이다.


감사하게도 지금껏 수술을 경험해볼 일이 없어서 잘 몰랐다. CT를 찍은 것도, 전신 마취도, 수술대에 누워본 것도 난생처음이었다. 순간순간 겁먹기는 했지만..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CT 찍기 전 장기를 투명하게 한다는 주사를 맞으니 온 몸이 불타는 느낌이 신기했고, 수술대에 누워 인공호흡기를 끼고 후.. 하... 후 하고 기절한 마취도 신기했다.


신기함과 동시에.... 아프다. “개복 수술도 아닌 간단한 복강경 수술입니다”라는 말은 마치 “아프지도 않아요!”인 것 같지만, 세상에나. 아프다. 큰 수술 이겨내시는 분들 정말 존경스럽다. 무통주사를 신청해서 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부위는 물론이고 갈비뼈가 당기고 목이 아픈 탓에 침 삼키기도 어렵다. (목은 마취 때문이라고 했던 듯)


비교적 쌩쌩한 편의 환자였는지, 수시로 체크하러 오는 간호사분들이 “수술하신 분 같지가 않네요” 하셨다. 그런데도 화장실 한 번 다녀오다가 지옥을 경험했다. 온몸이 울렁울렁거리면서 장기가 전부 바닥으로 쏟아질 것 같은 심한 멀미 감과 어지러움에 휩싸였다.


절대 금식인 데다가 평소 혈압이 낮은 편이라 어지러움증이 심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 무통주사를 맞으면 그렇기도 하다고 알려주셔서, 무통주사 투여를 멈췄더니 정말로 괜찮아졌다. 아아. 다시 선택할 수 있으면 무통주사 신청 안 할 거다. 무진장 비싼데 나한텐 오히려 역효과. 여기까지 쓰고 보니 입원담이 꽤 길다. 이 글만은 정보 전달의 기능을 조금이라도 담고 싶어서 말이 많아졌나 보다. 병원에서 있는 게 무료하기도 하고.


너무 큰 사랑은 평소에 잘 감각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건강이 그렇고 부모님의 사랑이 그렇고 공기 같은 것이 그렇다. 내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제주로 날아온 엄마를 보니 아픈 건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나를 건강할 때 아껴주어야겠다는 새삼스러운 다짐도. 그러니, 우리 모두 아프지 맙서게.


신체 각부가 적절한 형태로 제자리에 달려 세상에 나온다는 것, 잔인하지 않은 깊은 애정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다는 것, 혹은 지리적으로나 사회적인 우연으로 전쟁이나 빈곤을 모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연한 행운이었다. 그리하여 선한 사람이 되기가 훨씬 쉽다는 것도.

- Ian McEwan, <The Children Act> 중 -




매거진의 이전글 아는 사이지만, 모르는 사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