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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Nov 21. 2018

아는 사이지만, 모르는 사람입니다.

판단을 덜어내는 법에 관한 단상.

꽤나 다정한 사람들을 곁에 둔 덕분에, 혼잣말 같은 글을 주기적으로 찾아와 읽어주는 지인 겸 독자들이 있다. 오늘은 그중 한 명이 전화를 걸어와 얼마간 내 글을 읽어온 평을 전해왔다.


“넌 맨날 바보같이 실실 웃는 애라고만 생각했는데, 네가 쓴 글 읽다 보니 정말 모르는 사람 같더라. ‘000(실명)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쓴다고?’ 싶더라니까.”
한참을 웃었다. 맞다. 나는 평소에 잘 웃는 편이다. 시시껄렁한 드립에도 호탕하게 웃고, 웬만해선 웃으면서 사람들을 대한다.(어디까지나 웬만해선이다.)


내가 형성한 사회적 자아는 ‘맑음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되면 사회적 ‘맑음이’의 자리를 ‘신경질쟁이’가 빼앗기도 하고, ‘우울이’가 튀어나와도 그대로 두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면대면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는 생각의 조각이나 감정의 선들이 나타나는 곳. 나에겐 그 공간 중 하나가 글이다. 글을 쓸 때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조금 더 내밀한 나가 된다.

모두 ‘나’다. 하지만 사회적 맑음이 버전의 나에 익숙한 친구가 글을 쓰는 나를 볼 때, 마치 ‘맥도날드’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미슐랭 3 스타’였던 것만 같은 간극을 느낀단다. 마냥 가볍고 편한 줄 알았는데 무겁다나.




아는 사람에게서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 나 또한 느낀 적이 있다. 오빠의 춤을 처음 보았을 때다.

나에겐 한 살 차이 나는 오빠가 있는데, 오빤 우리 집에서 언제나 착하고 순한 첫 째 아들이었다. 내가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며 집에서 중2병 환자로 살아갈 때도, 오빠는 집에서 성질 한 번 제대로 낸 적이 없었다. 친구랑 싸워서 다치고 온 적이나 욕 한 번 하는 걸 본 적이 없는 초긍정맨이자, 특유의 애교로 엄마 사랑을 독차지하는 얄미운 애교쟁이. 내가 아는 오빠는 그랬다.

그런데 대학에 간 오빠가 동아리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며 보여준 동영상에는 정말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 춤을 추고 있었다. 오빠가 추는 춤은 ‘크럼프(Krump)’라는 스트릿댄스인데, 잔뜩 화나 있는 듯한 동작들이 가득했다.
https://youtu.be/LJ7Srjx6Fjk

(참고용으로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오빠의 춤 영상 중 하나 링크 첨부. 올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세상 순둥순둥 했던 오빠 안에 타는 듯한 에너지가 숨어 있었다니. 놀랍고, 낯설었다. 그때 나는 오빠를 20년째 알고 있었지만, 분명 모르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었다.




우리는 상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상대를 알기에 충분한 시간은 얼마일까?
오랜 기간 알아온 것으로 그 사람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식으로 따지고 보면, 우리는 어떤 이도 완전히 안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아는 너무나 다양한 면모가 있고, 자아 너머 무의식의 영역은 표면으로 드러나 있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 사람을 다 안다’는 생각이 얼마나 상대를 아는 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지를 되짚어보게 된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알아가기를 멈추고, 그래서 사실 더욱 모르게 되는 것 아닐까.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다른 면이 얼마나 많은 지도, 앞으로 다르게 변화할 가능성이 얼마나 큰 지도.


며칠 전 애정 하는 이로부터 '상대를 판단하지 않는 방법이 뭘까?'라는 질문을 받았더랬다. 그에 대한 답이 될까 싶어 짧은 생각을 이렇게 전해 본다. 판단하지 않는 법은 여전히 아직 잘 모르겠지만, 판단을 살짝 덜 하는 법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아는 자리보다는 모르는 자리로 가는 것. 마침표보다는 더 많은 물음표를 끝에 두는 것. 그렇게 덜어낸 판단의 자리에 이해가 깃들기를 바라면서.



사람이란 원래 여러 가지, 이런저런 모습이 있잖아. 원래 그런 성격이었는지도 몰라.
다만 표현하지 않았을 뿐.
주사위 몇 번 던져보고
6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정말 주사위에 6이 없는 건 아니잖아?

- 쥬드 프라이데이, <진눈깨비 소년>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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