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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Mar 17. 2019

다들 잘 지내나요?

제주살이 작은 근황

오랜만에 브런치를 찾았다.

하루 밥 먹을 돈이며 비행기 끊어 제주를 들락거릴 돈을 버느라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 탓이다. (그래 봤자 탓이지만..)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파고드는 성향인지라 밸런스를 가지고 적절히, 적당히 하는 게 제일 어렵다.

퇴근 시간도 따로 없으니 이건 뭐. 어떤 날은 눈떠서 일만 하다가 일 끝나면 바로 잠들기도 했다.

게다가 겨울 동안 제주도 날씨(바람+미세먼지)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느낌이었다.

한두어 달은 무기력한 남탓쟁이로만 산 것 같다.


계절이라는 게 참 위대하다.

봄 내음이 코 끝에 찰랑이니 언제 그랬냐는 듯 텐션이 올라간다.

여유는 누가 만들어주나, 내가 만들어가는 거지. 시간이 누구는 남아도나, 쪼개서 쓰는 거지.

싶어 짬 내서 산책 다니기를 재개했다. 남자친구와 손 꼭 잡고 요기조기 다니고 있다 :)  

날씨가 정말 와아아안연한 봄 날씨인 것도 좋고,

새로 발견한 산책로가 마음에 쏙 드는 것도 좋고,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좋고,

차 타고 3분이면 바닷가 산책을 하러 갈 수 있는 제주에 있는 것도 좋다.

이런 곳에 살아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한 책을 딱 이틀이면 문 앞으로 갖다 주는 한국의 서비스도 좋고.

BlAH BLAH-. 이럴 때면 그냥 숨 쉬는 게 좋고, 태어난 게 좋고 그런다.

이런 감정의 흐름이 좀 더 길어지면 좋을 텐데.


어쨌든 살짝 제주살이의 소소한 근황은 이렇다.

봄이 거의 도착한 듯한 제주의 3월 14일. 낮.

1. 서울+제주

지금까지 브런치에 제주살이라는 꼭지로 올린 글의 대부분은 서울 VS 제주 식의 내용이었는데,

앞으로는 서울+제주 식의 내용이 될 것 같다.

일을 하면서 수반되는 일정들이 모두 육지에서 이루어지는지라, 수도권에 다시 베이스캠프를 잡게 됐다.

한 달에 보름 정도는 서울에 나머지 보름 정도는 제주에 있는 생활을 시작해보려 한다.


혼자만의 시공간이 필요한 것과 마냥 혼자인 게 좋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 나는 전자이되 후자는 아니라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코리빙하우스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요즘 가격부터 서비스까지 천차만별 다양한 코리빙하우스가 전 세계적으로 생겨나고 있더라. 보다 보면 집에 대한 모든 로망이 채워질 것만 같은 하우스도 많다. 단, 가격은 로망이 아니었다. 월세가 120만 원에 육박하는 곳이 허다했다.


애초에 코-가 붙은 것은 공유경제로 효율성과 합리성을 실현하는 것일 텐데, 나의 예산 범위 내에서 쉬이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을 찾긴 힘들었다.

온 동네를 인터넷으로 헤집고 다니다가, 그냥 내가 서울 하우스메이트를 찾아 꾸려 가보기로 했다.

어떤 하우스메이트와 함께하게 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으면.



2. 금에쎄네쓰

SNS를 끊었다. 물론 카톡은 빼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정도를 지웠다. 별 일은 없다.

나의 하루가 올릴만한 것과 찍을만한 일을 중심으로 정렬되는 것에 질렸고,

사실은 그렇게 큰 일도 아닌 것을 대단한 일처럼 포장하게 만드는 일이 성가셔졌다.

그래서 더 이상은 즐겁지 않은 습관으로 전락한 엄지의 스크롤링을 멈추기로 한 것뿐이다.

계정을 지운 지 세 달이 넘어가도 별 일은 없다.

사람들을 만날 때 '어디 간 거 인스타에서 봤어'라는 인사가 '요즘 업로드 안 하더라'로 바뀐 정도다.

제주도의 상당히 많은 가게들이 인스타로 휴무일을 공지하는 관계로 그때는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 '이걸 하고 싶다', '이걸 먹고 싶다', '저길 가고 싶다'하는 욕망이 내 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올린 사진에서 시작된 건지, 혹은 화사한 누군가의 사진에서부터 날아온 먼지 같은 것인지 구분가지 않는 일이 사라졌다. 그리고 상대방과의 실질적인 거리감에 대한 왜곡이 줄었다. 실제론 만나지 않은 지 한참이 되었는데 에쓰엔에스에서 올린 근황을 보고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요를 자주 누르는 사이 대신 정말 좋아하는 사이의 사람들과 오프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에 조금 더 정성을 쏟기로 했다. 촌스럽고 시대 역행적인 발상인 건가. 만약 그렇다면 퇴행이라 불려도 좋다. 아무래도 인정해야겠다. 내가 핫함과 힙합과는 그리 친하지 않다는 걸.



3. 요즘에 느끼는 것은 이렇다.

웅크리고 앉아 지나온 상처와 해결하기 힘든 감정들만 붙잡고 있기에는 세상은 정말 넓고, 할 일이 참 많고, 그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상당히 많으며, 우리는 내일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조차 알지 못한다. 무슨 일은 좋은 일일 수도 싫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그렇다. 원래 좋은 일도 있고 싫은 일도 있는 것이다.


오늘 이렇게 멋진 산책로를 발견할 줄 어제는 몰랐던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있지만 당연하지는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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