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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Jun 16. 2021

Day 2|일단 잘 살고 그때 생각하자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 야마구치 슈]

출근한 지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재택근무 전환 지침이 떨어졌다. 

같은 층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료의 가족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까닭이었다.

도로와 지하철이 한산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니 한 움큼 덜 지치는 느낌이었다.


요 며칠간 하루치 업무가 끝나고 나면 방전된 솜 인형처럼 소파에 축 늘어져있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배터리 잔량이 파란 불인 채로 나만을 위한 저녁을 차렸다.

냉동실에 소분하여 얼려두었던 소고기 솥밥을 데우고 계란말이를 가지런히 말았다.

단호박과 방울토마토, 당근, 아스파라거스를 먹기 좋게 잘라 올리브유를 두르고 구워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것이 즐거움의 영역에 있다면,

나 혼자 먹을 음식을 스스로 정성스럽게 차리는 것은 보살핌의 영역에 있을 것이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세포가 보호받고 힘을 얻는 게 느껴진다. 고 하면 과장이 심하다고 하려나....

하지만 정말이다. 

배달음식이나 외식 음식으로만 끼니를 때우다가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렇게 먹고 나면 기운이 난다.

내일도 재택근무 일정이니 청소기도 돌리고, 냉장고 정리도 하고, 내일 요리 해먹을 재료들을 사 왔다.

이런 날에는 할 만하다는 마음도 찾아온다.

할 만하다. 일도, 회사도, 잘먹고 잘살기도. 


순식간에 읽어버린 책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는 당장 천직을 찾을 수 있는 명확한 스킬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겸비해야 좋을 삶의 태도를 환기시켜주었다. 좋은 책이 언제나 그렇듯. 

정확히 이렇게 하면 다 된다고 콕콕 집어주는 책이야말로 사이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ㅎ


책 자체가 깔끔하고 전달력 높은 짜임새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고, 

비록 경력을 비교할 수 없는 쪼렙이긴 하지만.. 나 역시 저자처럼 현재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지라 기억해놓고 싶은 포인트가 참 많았다.


몇 밤 자고 금세 까먹지 않기 위해 이곳에 간략하게 옮겨놓아 보겠다.

1. 정말로 해낼 수 있는지 아닌지는 사실 어느 정도 경험해봐야 알 수 있다. 해낼 수도 있고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해봐야 알 수 있다.

2.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물음은 완전히 별개의 사고방식이다.

3. 오히려 젊을 때 자유롭지 못하고 자신답지 않은 일에도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 

4. 반면교사로서 니체에게 배울 수 있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이상적인 모습에 지나치게 강한 상념을 갖는' 일이다. (...)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그곳이 사랑스러운 사람과 물건으로 가득 차 있는 풍경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한 발을 내디딜지는 그때그때 생각하면 된다는 사고방식 또한 긍정되어야 한다.

5. 지금,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하루하루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매일 무심코 반복하는 업무와 일상생활 속에서 주위 사람들과 얼마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느냐가 좋은 우연을 만드는 토양의 질을 결정한다.

6.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는 인내도 훌륭한 선택지이다.

7.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얻으려면 심한 부자유를 한 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인생의 한 시기에 오히려 일에 매여 지배당함으로써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힘을 길러둘 필요가 있다. 20~30대 전반이 바로 이 시기다. 이 시기에 얼마나 밀도 있는 직업 인생을 보내느냐에 따라 그 후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 야마구치 슈]


나의 머리와 몸이 허락한다면 각각 한 문장씩을 만트라로 담아놓고 싶다.

머리에는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얻으려면 심한 부자유를 한 번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문장을,

몸에는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하루하루 열심히 하자'라는 문장을 골라주련다.

회사를 때려치고 싶다는 충동이 일 때면 가장 먼저 까먹는 명제를 머리로 오래 기억하고 싶고,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내 몸의 깊은 곳까지 체화시키고 싶어서다. 

 

그래. 일단 잘 살고, 살아보고,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찾아오면 그때그때 고민해주자. 

어쨌든 좋은 날은 넘실거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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