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스터에그의 발단은 선재와 솔이가 같이 들은 영화과 전공 수업으로 돌아간다. 솔이와 선재가 꽁냥 거릴 동안 교수님은 이야기한다. "무성영화에 소리가 입혀지면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바뀌게 된 영화사의 대목이다. 선재는 한때 세계 최고 수영 선수를 꿈꿨으나 어깨부상으로 대신 가수를 시작한다. 차갑고 고요한 물속에서 수영을 하다가 뜨거운 조명 아래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노래를 하는 선재. 선재는 어느새 소리가 입혀졌다. 그 반짝반짝한 아이돌의 선명함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선재는 김영수의 타살에 가까운 자살을 택한다. 과연 그 단편적 화려함과 함성이 선재가 원하던 소리였던 건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과연 이때의 선재는 유성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의 과도기, 배우의 이미지에 대역 목소리를 썼던 것 마냥 이미지만 소비된 건 아니었을까?
놀랍게도 '소리'로 발음되는 주인공 솔의 꿈은 영화감독이다. 사고가 난 뒤 우울에 빠져있던 솔이를 구해준 건 다름 아닌 선재의 목소리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소리매체인 라디오로 선재는 솔이에게 전화를 걸어 살아보라고 한다. 처음엔 거부하지만, 점차 느껴지는 선재의 진정성에 솔이는 자신의 명랑함을 차츰 되찾는다. 실물이 보이지 않는 콘서트장 밖에서도 노래를 따라 부를 만큼 선재의 목소리에 하루하루 위로받고, 좋아한다. 하지만 선재는 자살을 택하고, 솔이는 타임머신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선재 업고 튀어, tvN
2. 타임머신으로 풀린 화자 선재의 목소리
타임머신으로 솔이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온다. 그러고는 선재를 무서울 정도로 쫓아다닌다. 솔이라는 자극에,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던 선재가 여태까지 숨겨온 모습들이 비춰진다. 선재는 누군가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기쁘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좋다. 나쁘다. 의 평가를 떠나, 선재의 목소리는 비로소 하나하나 진솔하게 담아진다. 화자로서 목소리를 점차 드러내며 중요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다. 선재의 오랜 첫사랑이 솔이였다는 사실.
타임머신을 타기 전엔 팬인 솔이가 아이돌 선재를 좋아하는 이야기였지만 선재의 목소리가 덧입혀지면서 사람들은 입체적인 쌍방 서사에 열광했다. 선재 업고 튀어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시점이다. 우리는 소리를 매우 객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감각의 수용과 인식은 거의 동시에 이뤄지기에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말투, 소리의 높낮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되며, 각자의 상황과 서사에 따라 다른 소리로 들린다. 이는 선재 업고 튀어에서 우산 씌워주는 같은 장면을 각각 솔이와 선재의 관점으로 교차해서 보여주는 것과 결을 같이한다. 최애가 우산을 씌워준 성덕 솔이의 서사와 오랜 첫사랑이 길 한복판에서 고장 난 휠체어와 함께 눈을 맞고 있어 우산을 씌워준 선재의 서사는 분명 다르다.
선재 업고 튀어, tvN
3.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간극, 김영수, 임솔, 그리고 경복궁 선재
이 아름다운 유성영화는 장애물을 만난다. 바로 현실의 김영수다. 영화감독이 꿈인 임솔은 타임머신으로 현실 속에서의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꿈같은 영상미와 교차된 목소리 속 쌍방서사에 열광하지만, 타임머신으로 죽은 사람을 단번에 구해낸다면 또 그 지극한 판타지스러움에 이입하지 못한다. 무성영화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개연성의 일정 부분을 맡길 수 있지만, 유성영화는 한 번 말을 하는 순간 그 모든 대사들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선재에 소리가 입혀지기 시작한 이상, 솔이는 모든 개연성을 직접 만들어 선재를 구해내야 한다. 김영수는 판타지도 그렇게 쉽게 성취되어선 안된다는, 어느새 어른이 된 우리들의 찝찝한 현실이다. 그렇게 김영수는 솔이가 선재를 구하려 시간을 이동할 때마다 매번 선재를 죽인다. 방울뱀 마냥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솔이에게 따라붙는다. 결국 현실과 판타지의 결말은 일치하게 된다.
이때, 시간을 거스르는 김에 미래에 알게 된 사실을 적극 이용하여서 김영수를 죽이고, 선재와 사랑을 연결하면 되지 않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먼저 방영된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는 서사를 이전에 적어둔 수첩에 기록하면서 여주인공의 기억상실을 극복하고, 서사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선재 업고 튀어에서는 미래를 스포 할 수 없다는 판타지의 현실적 제약을 걸어두었기에 조금 더 어렵다.
그래서 마지막 방책으로 솔이가 택한 건 선재의 목소리로 쌓아온 과거 서사, 즉 선재의 목소리를 몽땅 버리는 것이다. 솔이는 선재와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피하고 도망친다. 이 방책은 성공하였는가? 가만히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아우성이 들려온다.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솔이가 쓴 <기억을 걷는 시간> 대본을 보고 갑자기 눈물짓는 선재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는데 실패했다. 인터넷 밈 중 하나인 "경복궁에 갔더니 갑자기 눈물이 나요. 제가 전생에 공주였던 걸까요?"라는 글을 사람들이 비웃었듯, 선재의 서사가 갑작스레 사라지며 솔이의 타임머신 이용은 소리가 아닌 소음에 불과하게 된다. 선재와 솔이는 동일하게 예쁘지만 말이다. 이미 화자의 목소리가 풀린 유성영화는 다시 소리가 입혀지지 않은 무성영화로 돌아가기 어려우며, 오히려 그전보다 못할 수 있다. "유성영화란 바보들을 위한 장난거리에 불과하다." - 알프레도 히치콕
선재 업고 튀어, tvN
4. 시청자들의 서사로 완성된 유성영화
사람들은 거듭해서 나오는 불사 김영수에 이제야 피로감을 느낀다. 어차피 드라마의 본질은 픽션이니 이제는 솔이가 선재를, 선재가 솔이를 모두 구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솔이를 사랑한다는 선재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 걸까? 우리의 엠피쓰리 속에 담겨있던 김형중의 노래 그랬나봐가 재생되면서 사람들은 어느새 자신의 첫사랑을, 또는 소년미 넘치는 선재로 조작된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몰입한다. 이제 더 이상 솔이와 선재의 영화는 감독만의 것이 아니다.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진심이었던 우리들의 서사, 이제는 이리저리 재고 따지느라 다시는 못 찾을 마음이기에, 이제 사람들은 개연성을 찾기보다 자신의 평행우주로서의 판타지를 지켜주길 바란다.
우리는 완벽한 이미지에 경탄하면서도 그 자체로 감동받지는 않는다. 선재 업고 튀어는 고요한 물속에서 시작하여 타임머신으로 솔이가 선재의 목소리를 풀어내기까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를 오간다. 그때 그 시절 우리의 목소리까지 덧입혔을 때 우리는 모두 선재를 업고 있다. 선재라는 예쁜 무성영화, 혹은 불완전한 유성영화가 소리를 만나 완전한 유성영화가 될 때 모두 선재 업고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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