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 갱신하다
대회라니. 프리다이빙 대회라니. 그렇다. 나는 어제 프리다이빙 대회에 '선수'로 참가했다. 2주 전, 몰차노브 트레이닝 팀장으로부터 메시지가 도달했다. 2주 후에 인도어 프리다이빙 대회가 있으니 팀원들의 전원 참가를 바란다는 메시지가. 대회를 주관하는 관련 기관에 공식 회원 등록을 할 때만 해도, 이것은 그저 회원 가입 절차일 뿐이고 대회니 선수니 하는 단어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참가' 버튼을 클릭하고 있었고, 개인적인 일정으로 2월 마지막 몰차노브 트레이닝 수업에 결석할 상황인데도 STA(정적인 숨 참기)와 DYNB(bi핀으로 하는 동적인 숨 참기) 두 종목에 출전 신청을 하는 호기를 부리고 말았다.
청심환을 먹고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신청을 회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며칠 전 폭설이 왔으니 그 눈이 안 녹아서 못 간다고 하는 건 어떨까. 아니, 아무 말 없이 그냥 쓱 빠져 버릴까. 다시 안 할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게임하러 오신다고 생각하세요.', '안전하게 구해 드릴게요. 걱정 말고 오세요.', '청심환은 먹지 마시고요' 등등 몰차트레이닝 단톡방에 강사님들의 문자가 속속 올라왔다. 일명 '에라 모르겠다' 카드를 쓸 차례였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할까' 쪽으로 움직이기로 한 약속을 지킬 순간이었다.
6개월을 드나든 풀장이었다. 하지만 뭐랄까, 오늘은 공기가 달랐다. 평가관이며 트레이너 그리고 강사들이 슈트가 아닌 AIDA로고가 박힌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풀장 주변을 체크하고 있었다.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입수 준비 중인 강사들도 있었다. 노란색은 져지었고, 빨간색은 세이프티였다. 웜업 존과 컴피티션 존이 구분되어 있었고 다이내믹 컴피티션 존 바깥엔 노란색 줄자 같은 것이 테이핑 되어 있었다. 대회 운영 팀장인 S강사가 선수 명단을 보며 출전 순서를 확인했다. 원래 나는 두 번째로 STA에 출전하게 되어 있었는데 내 앞의 선수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출전을 취소했고 내가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Y강사의 지도 하에 간단하게 렁 스트레칭을 하고 (S강사가 너무 길게 스트레칭을 하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그것 또한 스트레스가 된다고) STA 웜업 존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STA 웜업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O강사를 붙잡고 STA 웜업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다. 최종호흡 후 컨트랙션을 느끼면 출수, 회복호흡 후 오케이 사인을 낼 때까지 15초 시간 준수. 컨트랙션이 와서 천천히 출수했고 오케이 사인을 했는데 웜업 존 세이프티였던 C강사는 회복호흡에서 오케이 사인까지 시간을 좀 더 당겨보길 권했다. C강사가 웜업을 한번 더 해보겠냐고 묻기에 괜찮다고, 쉬겠다고 이야기하고 O강사가 알려준 대로 컴피티션 존 가까이 가서 대자로 누워 휴식을 취했다.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상체를 일으키니 출전 4분 전, 컴피티션 존의 져지가 내 이름을 부르며 입수를 명했다. 입수 전에 마스크를 끼려고 했는데 마스크 끈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마스크의 아래위를 바꿔 쓴 것이었다. 입수 후 마스크를 고쳐 썼다. 세이프티인 O강사가 말했다. "저는 옆에서 몸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잡아드릴 거니까 원래 하시던 대로 손 올리고 다리 모으시고 그렇게 하세요." 내가 긴장한 것을 알아차린 O강사는 더 느릿느릿하게 말을 건넸고 나 역시 그 템포에 몸과 마음을 실을 수 있었다. 2분 카운트가 시작됐다. 살짝 무릎을 굽히고 기마 자세를 취한 다음, 호흡에 집중했다. 1분 카운트가 시작됐다. 무릎을 좀 더 굽히고 어깨까지 물에 잠기도록 자세를 취했다. 30초 카운트부터 호흡을 조금씩 길게 가져갔다. 20초 카운트에서 크게 숨을 마시고 뱉어냈다. 10초 카운트에서 서서히 최종호흡을 준비했다. 오피셜 탑이 시작됐다. 플러스 2가 카운트되는 소리를 듣고 입수했다.
눈을 감았다. 컨트랙션이 오기 전까지는 눈을 감고 있는 편이 낫겠다는 순간적인 판단이었다. 몸이 살짝 왼쪽으로 도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버려 두었다. 평소 트레이닝에서는 강사들이 몸에 힘을 빼기 위한 디렉션을 해주는데 아무런 소리가 없으니 막막하면서도 그 고요가 나쁘지 않았다. 온전히 내 몸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천천히 컨트랙션이 느껴졌다. 입수 전, 목표는 컨트랙션 열 개를 한 묶음으로 해서, 컨트랙션 열 번에 왼손을 내놓고, 다시 컨트랙션 열 번에 오른손 내놓고, 세 번째 컨트랙션 열 번에 다리를 모으고, 네 번째 컨트랙션 열 번에 마스크를 내놓고, 마지막 컨트랙션 열 번을 느끼고 출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했다. 그 어떤 스태틱 보다 고통스럽지 않았지만 목표대로 루틴을 밟았으니 출수해도 좋을 것 같았다. 출수하고 회복호흡 후 오케이 사인을 냈다. 두 명의 져지가 서로의 스톱워치를 확인했다. 크로스체크를 하는 것 같았다. 일상호흡으로 천천히 돌아오고 있는데 져지 중 한 명이 말했다. "자, 정상순. 판정하겠습니다." 실은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있던 시간보다 회복호흡 후 판정하는 시간까지가 더 길게 느껴졌다. "화이트 카드입니다. 기록은 3분 29초!" 합격이었고 PB도 16초나 늘렸다. 편안함을 느끼긴 했지만 16초까지 종전 기록을 늘렸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세이프티들이 축하의 물세례를 안겨주었다. 기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뭔가 가득 찬 느낌에 가깝다. 출수하고 나니 경기를 지켜본 S강사가 환한 얼굴로 웃으며 다가와 하이파이브를 청한다. "정말 잘하셨어요. 스태틱 하셨으니 다이내믹할 때 더 도움이 될 거예요." 정말 고마운 분. '덕분입니다"
DYNB는 경기까지는 3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웜업 존에서 중성부력을 체크했다. 늘 유쾌한 K강사가 세이프티를 해주었다. K강사의 랍스터로 3.5kg를 맞추고 입수하는데 자꾸 풀장 바닥으로 내려갔다. 웨이트를 줄여야 했다. 2.95kg 정도가 되니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다이내믹 웜업은 목표 거리의 절반을 다녀오면 된다고 K강사가 알려주었다. 내 목표는 75이니까 그럼 38미터 정도만 다녀오면 되겠네. 마음속을 K강사가 들여다본 걸까. "50미터 다녀오세요." 다녀왔다. 스태틱 다음이기도 했고 숨이 더 터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대회 코치인 Y강사가 다가와 경기 시작 8분 전임을 알려주었다. 내 앞 경기가 끝났다. 컴피티션 존 가까이 가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지금까지 STA져지를 보고 있던 L평가관이 다가왔다. "75미터 찍고 올라올 거야? 그냥 올라오지 말고 턴 해서 사이드로 나와." 이보세요. 저 PB가 70이라고요. 하지만 평가관의 말은 실은 내 2차 목표이기는 했다. 75미터를 목표로 하면 아무래도 75미터 근방에서 미리 멈출 준비를 할 것 같았다. 75목표를 1차 목표로 삼되 멈추지 않고 턴을 하면서 출수. 이것이 내가 한 이미지 트레이닝이었다.
Y강사가 경기 시작을 알렸다. 천천히 핀을 신고 마스크를 썼다. 입수 후 다시 2분 카운트가 시작됐다. STA과 같이 루틴을 가져갔다. 20초 카운트에서 깊게 마시고 충분히 뱉어낸 다음, 10초 카운트 소리와 함께 최종호흡을 준비했다. 오피셜 탑 플러스 2 카운드와 함께 입수. CO2테이블을 돌릴 때 다이내믹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었다. 하나, 둘, 셋, 넷.... 차고 미는 피닝 동작을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일단 입수를 서둘러하지 않고 수평 뜨기를 하는 것까지는 성공. 그러나 웨이브 후 줄과 몸이 너무 가까워져 릴랙스가 깨졌다. 산책하듯 피닝 하기는 물 건너갔고 줄에 몸이 닿아 물속에서 찌잉 하는 마찰음이 느껴졌다. 25미터 턴을 하는 순간, 내 몸이 줄에서 오른쪽으로 완전히 벗어나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턴과 함께 다시 몸을 줄 가운데에 맞췄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 둘 셋 넷, 산책하듯 천천히' 주문은 외우지 못했다. 50미터 턴, 생각만큼 컨트랙션이 밀려오지 않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미터 턴 하기 전에 컨트랙션이 올 수도 있고 턴 하면 올 수도 있어. 그러면 더 힘 빼고 천천히 가는 거야. 스태틱 할 때처럼 그렇게 컨트랙션 받는 거야." 사실 마지막 25미터를 어떻게 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피닝을 할 뿐이었고 종전 기록인 70미터는 넘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75미터 턴과 동시에 출수. 마스크를 벗고 회복호흡을 했다. 스태틱을 할 때보다 조금 호흡을 짧게 가져갔다. 오케이 사인 후, 역시 판정의 시간. "정상순. 화이트 카드입니다! 78미터!" 다시 세이프티들의 물세례가 시작됐다. 다이빙 전에 세웠던 계획을 그대로 실행한 것이 뿌듯했다. 판정 후, 평가관이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우리 모두 정말이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출전한 두 종목 모두 PB를 깨는 것으로 대회는 끝났다. 다들 자신의 개인 기록을 깨기 위해 모였지만 모두가 함께 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나저나 힘들어 죽겠는데 왜 이렇게 재밌나. 대회가 끝나고 나는 또 몰차노브 트레이닝을 신청했다. 물에 약을 탄 것임에 틀림없다.
#다음 다이빙 계획
- STA : 종전대로 루틴을 가져가되, 왼손을 올리기까지 컨트랙션을 열다섯 번 참아본다. 오른손을 올리기까지 그렇게 한다. 다리를 모은 후에 상체를 더 둥글게 말고 낮은 문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몸을 웅크린다. 이 상태로 컨트랙션을 5개씩 4세트 참아본다. 마스크만 내밀었을 때 컨트랙션을 5개씩 3세트 참아본다.
-DYNB : 입수-수평 뜨기-줄 맞추기 후 서둘러 피닝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글라이딩을 좀 더 타고 시동을 천천히 거는 느낌으로 피닝을 시작한다. 1초에 한 번씩 차고 미는 동작을 왕복. 엉덩이에 집중. STA 할 때처럼 과정을 하나하나 낱낱이 지켜본다. 반복된 연습으로 동작은 무의식적으로 하되, 매 순간 의식한다. 깨어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