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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Mar 05. 2024

두 번째 입주자

-뭉치네에 함께 사는 사람들

십 년 전, 지금 살고 있는 덩치가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지역으로 내려와 네 번 이사를 했는데, 첫 집은 툇마루를 마루로 달아 낸 시골집이었고, 두 번째는 마당 뒷간에 앉으면 뱀사골 자락이 보이는 집이었으며 세 번째 집 역시 지은 지 50년이 넘은 단순한 시골집이었다. 그 집을 손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십 년을 살았다. 될 수 있으면, 할 수 있으면 작은 집에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삼십 년을 살았던 도시를 뒤로 하고 이곳으로 내려온 이유였다. 조금씩 건강을 잃기 시작하는 부모님과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싶었다. 그땐 내가 좋은 딸이라서 그런 줄 알았지만 돌아보면 모두들 내가 좋은 딸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거였다. 내 고집을 내버려 둬 준 거였다. 결국 내 수중의 돈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집에 부모님 능력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렇게 3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동거는 여름 한 철, 초가을 한 철 그렇게 두어 번으로 끝났다. 인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보낸 사람들, 특히 노인들이 병원은 멀고 화장실도 불편하며 낯선 공간에서 마음 편히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다를 떨 친구들은 멀리 도시에 있었고 내 집처럼 드나들던 마트는 자식의 도움을 빌어야 나갈 수 있었다. 스스로 힘을 내어 할 수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의탁해야 하는 상황은 입밖에 낼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자식이 자신을 봉양하고 있다는 위치성 자체가 입을 막았을 것이다. 암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신 시아버님과 함께 살았던 6개월이나 엄마 아빠와 더불어 지냈던 그 여름과 가을은 내가 그들을 돌본 시절이 아니었다. 그들이 내 꼴을 감당해 준 시절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여름에 우리 집에 온다. 추위를 많이 타는 엄마로선 여름이 우리 집에서 지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름, 고작해야 2주에서 한 달 정도 머무르다 가는 엄마와의 동거만으론 (내 기준으로) 크고 넓은 이 집의 쓰임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입주자를 들이기로. 가족에 대한 질문을 늘 해 왔다. 특히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질문은 더 확장됐다. 가족은 그저 경제 공동체라는 냉소적 태도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가족의 의미 자체를 혈연에 붙잡아두고 싶지 않았다. 다른 시도와 실험이 가능할 것 같았다. 어쩌면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을 이 실험에 기꺼이 동참해 준 첫 번째 입주자가 있었다. 벌써 재작년의 일이다.  첫 번째 입주자 '려강'. 려강이라는 이름을 입에 오물거리다 보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파란 수면 바지를 입은 채 삐친 머리를 하고 계단을 내려오던,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굿모닝'을 외치던, 뭉치와 나란히 산책을 나서던, 마라샹궈를 좋아하던, 기존 입주자들의 먹성에 크게 놀라던, 차를 홀짝이던, 마당의 것들을 캔버스로 들여오던, 크게 웃다가 이내 글썽이던 려강의 모습.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그렇게 '식구'가 되었다. 함께 먹은 밥이 8개월 치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려강 덕분에 피와 경제력에 의존하지 않는 가족, 더 '난잡한' 돌봄을 상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부족했고 미숙했다. 그래도 좋았다. 우리가 목표로 한 것은 완벽함과 완전함이 아니었으니까. 서로 기대고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고 싶었으니까. 려강과 함께 산 덕분에 다른 존재를 환대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또 새로운 입주자와 함께 살아갈 힘을 얻었으니까. 두 번째 입주자는, 려강과 첫째가 졸업했고, 둘째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재학생이다. 학교 주변에 살면서 조심스레 꿈꾸곤 했다. 우리 집도 작은 가정(학교의 기숙사라고 할 수 있지만,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다. 말 그대로 하나의 가정이다)의 일부가 되면 어떨까 하고. 나 혼자 할 수 없는 결정이었는데 아이들이 학교와 인연을 맺으며 현실이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가장 큰 공헌자는 려강이다. 려강이 우리에게 와 준 덕분에 가족은 더 확장되고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일본판이 더 래디컬 한 게 분명하지만 이 장면은 한국판이 좋다) 주인공이 도시 생활에 지쳐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눈이 쌓인 밭에 배추와 파가 숨 쉬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는 싸늘한 집 안에 불을 때서 온기를 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배추와 파를 손질하고 찬장에 남아 있던 밀가루를 치대 김치 수제비를 끓여 먹는다. 제 손으로 불 피운 난로가에 앉아서.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뭉치네를 드나드는 이들이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온기를 만들어 내고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고. 그렇다면 나는 당분간은 이 크고 넓은 집의 가장으로 버텨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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