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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Mar 15. 2024

이퀄, 너란 놈

-프리다이빙 로그북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로만 알았다.

2023년 11월 11일 레벨 2 테스트가 있던 그날, 12미터에 아름답게 드리워진 캔디볼을 잡고 올라왔던 그때까지만 해도.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레스큐 테스트에서 나의 익수자가 10미터 밑으로 종횡무진 하강하는 동안, 조급해진 나는 너를 잊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너를 잊고 하강하는 나에게 너는 호된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 이름하여 '급 코피 터짐'이었다.

한 순간 너를 잊었다는 그 죄 때문에, 너는 그 이후로 나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5미터 수심에서조차 너는 네 존재를 각인시켰다. 너 없이는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갈 수 없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대로 너를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너에게 매달렸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너를 찾았다. 운전하는 동안 수도 없이 너를 불렀다. 급기야 코로 풍선을 불어가면서까지 네 마음을 돌리려 했다. 자기 직전 목구멍을 서른 번 여닫으면서 그 누구도 아닌 너를 오매불망했다.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다. 목구멍의 공기를 위로 끌어올리는 느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콧방울을 지나 귀와 수평을 이루는 곳 어딘가가 볼록 올라오는 느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들이 있어야 너를 만날 수 있었다. 너는 그들 너머 그 어딘가에 있는 게 분명했다. 너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너는 코를 비틀어 댄다고 만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코를 쥐어짠다고 만날 수 있는 놈도 아니었다. 코를 세게 불어댄다고 나타나는 놈도 아니었다.

기막히게도 너는 내가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들 때 나타났다. 가만히 생각하면 그 순간 나는 몸에 힘을 빼고 있었다. FRC인지 UFC인지(나, 3 렙 교육생이지만 아직 이론교육 못 받았다. 그래서 모른다) 그런 걸 하고 들어가면 확률적으로 너를 만날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하지만 짧은 순간이나마 프리폴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마음이 편해지고 몸도 이완된다. 캔디볼과 흡착판을 잡고 너를 기다리는 동안 어깨와 목을 풀어줘야 한다. 왜냐하면 긴장한 몸과 마음에 너는 결코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 나는 캔디볼과 흡착판을 잡고 너를 만나러 풀장에 갔다. FRC로 내려가다가 마우스필을 하고 물에서 숨을 뱉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너를 만나기는 점점 어려운 조건이다.

그래서 자꾸 의심하게 된다. 누군가 너와 나의 만남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숨을 너무 많이 뱉어 캔디볼과 흡착판을 잡고 있는 동안 너를 만나기는커녕 목구멍에서 끌어올릴 숨이 한 방울도 없는 것 같은 멘붕의 순간도 경험했다. 누군가 너와 나의 만남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건 정말 누굴까. 그 누구도 아닌 조급한 나의 마음과 긴장된 나의 몸은 아닐까. 오늘도 코로 풍선을 불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너와의 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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