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지난 4월 2일 오른쪽 귀에 중이염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4월 27일, 왼쪽 귀에 급성 중이염과 미세한 천공 진단을 받았다. 3월 31일 딥스, 16미터 밑으로 내려가면 이퀄이 안 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뭔가 물리적으로 이상이 있다는 느낌적 느낌이 있었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오른쪽 귀가 엄청 부어있네. 뭔가 먹먹하지 않았어요?" 의사가 말했고 이런 귀로는 평형을 맞추기가 불가하다고 덧붙였다. 당분간 풀장 출입 금지. 사는 게 부질 없어졌다. 하지만 나는 전환이 빠른 사람이라 바닥이 닳고 닳아 빗물에 쫄딱 미끄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간 러닝화를 호기롭게 버리고 새삥 러닝화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수심 트레이닝이 불가하다면 드라이 트레이닝을 하자, 체력을 다지자' 나에 대한 위로와 격려였다. 몰차노브 트레이닝팀 방에 4월 트레이닝이 어렵겠다, 작별을 고한다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많은 강사들의 위로와 격려가 오가는 순간, L강사의 문자가 등장했다. "중이염이라고 해도 인도어 트레이닝은 가능합니다." 아니, 이 사람, 다이버가 아프다는데,라는 짜증 섞인 생각은 잠깐, '오잉? 중이염인데 훈련을 계속할 수가 있다고?' 반가움과 환희가 몸과 마음 안팎으로 요동쳤다. 재빨리 수심반에서 인도어반으로 갈아타고 강습비도 입금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한 템포 쉬어갈 시간을 놓친 셈이었다.
2.
4월 8일. 수심 트레이닝이 아닌 인도어 트레이닝에 오랜만에 참석했다. 물론 중이염을 앓고 있는 상태였다. 트레이닝이 너무 빡셌다. 인도어 트레이닝은 늘 그렇지만 숨을 쉬는 시간보다 안 쉬는 시간이 더 길었다. 체력이 받쳐주질 못하는 느낌이었고 결국 열이 나기 시작했다. 중간에 출수했다. 4월 중순, 고사리가 올라오는 계절. 나의 주력 분야가 농사가 되어야 하는 시절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고사리를 끊고 불을 때서 삶아 말리면 얼추 열 시가 된다. 인도어 트레이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10시 반. 긴장 상태로 운전을 하고 집에 도착하면 너무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는다. 그러면 일찍 일어날 수 없고 고사리는 게으른 농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두 번의 트레이닝이 남은 상태였지만 모두 결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사리는 핑계고, 슬럼프였다. (슬럼프라니, 내가 말하고도 웃기다) 잘해야 재미를 느끼는 나로선 이퀄이 막히고 중이염이 오고 인도어 트레이닝은 너무 빡세고 등등 잘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재미가 없어졌다. 게다가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나보다 더 수심을 잘 타는 걸 지켜보자니 배알이 꼬이기 시작했다. 프리다이빙은 상대방과 경쟁하는 스포츠가 아닌데도 말이다.
3.
그래도 풀장에 못 가는 동안 열심히 이퀄 연습을 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코를 잡고 혀뿌리를 잡아 올렸다. 삼천번의 법칙을 믿어 보기로 했고, 과연 어느 날 아침, 이게 이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완전히 잘못된 방식으로 이퀄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대체 레벨 2 테스트에서 거침없이 12m를 다녀왔을 때 나는 어떤 방식의 이퀄라이징을 한 거였을까) 그 사이 2주가 지났고 중이염도 다 나았다. 풀장으로 달려가 드라이 상태에서 연습했던 이퀄을 실행해 보았다. 과연 느낌이 달랐다. 하루도 빼먹지 않은 렁 스트레칭 덕분에 호흡량도 충분했다. L강사에게 한 시간 정도 이퀄라이징 교육을 받았다.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압력 정도면 25미터도 충분히 갈 수 있다며, L은 주말 딥스 행을 독려했다. 마침 2월, 딥스에서 만난 M에게 연락이 왔고 금요일에 M과 동행하는 고성풀 일정이 잡혀 있는 상태였다. 금요일 오후에 확답을 하겠노라 L강사에게 말했다. 고성풀에서 이퀄 테스트를 하고 딥스행을 결정할 생각이었다.
4.
고성풀은 여전히 추웠다. 11미터 풀에서 이퀄이 제대로 되어야 딥스행을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긴장이 됐다. 이퀄 체크를 하는데 수월하게 뚫리지 않는다. 초조했다. 두세 번 반복하고 나니 조금씩 편안해졌고 긴장도 풀렸다. CWT도 편안했다. FRC로 내려가도 이퀄이 막히지 않았다. 출수를 위해 부이 압착판을 떼러 들어갔을 때 11미터 밑으로 더 내려가고 싶었다. 출수 후 핸드폰을 확인하니 L강사의 문자가 와 있었다. "내일 딥스 가시나요?" 바로 답했다. "네!" 그때만 해도 나는 20미터를 지나 25미터에서 부드럽게 턴 하는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5.
6시 50분, 익산 보석박물관을 향해 출발했다. 광주에서 출발한 팀과 조인하기 위해서였다. 차량용 충전기가 당연히 작동할 줄 알고 핸드폰을 따로 충전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내비게이션 화면을 띄우느라 핸드폰 배터리는 급속도로 화력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보석박물관은 처음이라 근처에서 내비게이션 화면이 사라질까 봐 식은땀이 났다. 게다가 도착 후 광주 팀과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배터리가 남아있을지 의문이었다. 다행히 배터리가 바닥이 나기 전에 연락이 닿았다. 광주팀의 차량으로 갈아타고 딥스를 향해 출발했다. 단체출발은 처음이라 부담이 없지 않았지만 용인 입구에서 두세 건의 사고와 막히는 도로를 목도하고 보니 개별출발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분 늦게 도착한 탓에 스트레칭은 가볍게, 별도의 렁스트레칭 없이 입수 준비를 했다. 차량 안에서 작성한 나의 사전 로그북은,
1. FIM 이퀄 체크
2. FIM 15m 10초 행
3. CWT 15m
목표
4. FIM 20m (요거 되믄)
5. CWT 20m
요렇게 소박했는데, S강사가 2번과 3번 사이에 FRC를 추천했다. 이퀄은 FIM 두세 번 만에 캔디볼을 잡는 것으로 뚫렸다. CWT도 할 때마다 편안해졌다. 중성부력을 맞추지 않았고 FRC 시행을 건너뛰었다. 다른 버디가 중성부력을 맞출 때만 해도 이퀄이 뚫리지 않아서 중성부력을 맞추는 건 내일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FIM과 CWT가 15m에서 어느 정도 되었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중성부력을 맞췄어야 했다. 4월 27일 딥스, 물속에서 '뽁' 소리가 나며 고막이 찢어진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다. 홀통으로 가서 이퀄이 수월치 않자, 다시 15미터 부이로 후퇴했고 오늘은 여기서 놀다 가자고 마음먹었다. 한데 마지막 CWT가 너무 편안하다 보니 또 욕심이 났다. 출수 15분이 남은 상황에서 마지막 다이빙을 시도했다. L강사는 이퀄을 길게 뽑아내며 풀 피닝을 하라고 했고, S트레이너는 10미터가 지나면 피닝 속도를 낮추라고 했다. 나는 덕다이빙으로 수심을 타기 시작하자마자 미친 듯이 피닝을 했고 이퀄 타이밍은 나의 피닝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와인병이 열리는 그 경쾌한 소리 "뽁"과 함께 나의 고막은 찢어졌다.
6.
L강사의 말대로 이퀄은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타이밍이 문제다. 그리고 혀뿌리를 올려서 공기를 밀어 올렸다면 공기가 다시 채워질 시간을 기다리는 게 관건이다. P강사가 찍어 준 영상을 보면 입수 후 피닝 속도가 너무 빠르다. 10미터가 지나면 프리폴 구간, 여기서 피닝을 죽도록 하고 있으니 이퀄 타이밍을 맞추기는 더욱 요원해진다. 덕다이빙 입수 후 물구나무서서 핀이 충분히 잠긴 후 스트록 그리고 피닝과 이퀄 시작. 그러니까 덕다이빙 후 피닝까지 서두르지 말고 몸이 곧게 서는 것을 좀 더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피닝은 부드럽게. 부드럽게 해도 피닝 폭은 넓힐 수 있으니. 이제는 디브리핑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다이빙을 보면서 고칠 것을 연구하는 시간. 또한 15미터가 5미터처럼 편안해질 때까지 연습이 필요하다.
7.
귀에서 피를 흘리고 딥스에서 내려오던 날, 차량 충전기를 다른 다이버의 차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낯선 길을 내비게이션 없이 헤맸다. 하지만 톨게이트에서 만난 요금 수납원이 어찌나 다정하고 따뜻하게 길을 알려주시는지 어두워져 가는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쓸쓸하고 낙담하던 몸과 마음이 위로를 받았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약을 먹기 위해 밥도 열심히 먹고 있다. 취소, 연기가 가능한 모든 일정들을 그렇게 하고 있다. 먹고 자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이틀을 살았다. 나아지고 있고 나아질 것이고 나는 프리다이빙을 계속할 것이다. (더 구체적인 계획은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