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차]5. 저는 마케팅이 하고 싶습니다.
오늘 내린 나의 선택이 후회가 되지 않기를
영업부 생활 적응은 해가고 있지만, 나는 회사에 입사할 때부터 마케팅부에서 일하고 싶었다.
언제 내가 부서 이동을 할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영업부에 있으면서도 꾸준히
이런저런 사이트에서 제약 마케팅과 관련 있는 온라인 강의를 듣고 강의 수료에 대한 내용을 회사 직원 정보에 업데이트해 두었다. 내가 마케팅에 관심이 있고 기회가 된다면, 준비된 사람이라는 부분을 최소한 인사팀은 확인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기약은 없고, 입사한 지 1년 만에 서울대 약대 출신 동기 오빠가 마케팅부로 발령이 나고, 나는 대학원에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기대감은 불안감으로 바뀌고 자존감을 바닥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팀 팀장님이 밥을 먹자고 했다.
'인사팀 팀장님이 무슨 일이지..?'
인턴 기간 동안 교육은 인사팀에서 총괄했기 때문에 팀장님과는 어색하지 않은 사이긴 하지만, 조금은 생뚱맞았다.
'인사팀에 올 생각 있어?'
그 제안은 사실 솔깃했다. 그 자리에서는 뭐라고 말을 드리기가 어려워 조금 고민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솔직히 흔들렸다.
언제까지 영업부에 있어야 할지도 모르고, 마케팅부는 마케팅부 전무가 끌어당겨줘야 이동하는 거 같은데,
전무는 서울대 약대 출신이었고, 본인 후배들은 통상적으로 1년 정도만 영업을 하고 바로 마케팅부로 옮겨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뭐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내부에서 배치가 되는지 알 길이 없으니 그냥 운이려니 했다.
인사팀이라.. 엄밀히 말하면 경영학 전공을 하며 당연히 인사와 관련된 부분도 공부했고 아주 관심이 없던 영역은 아니었고, 본사와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는데 그 부분도 맞는 것 같고
생각할수록 가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매우 신중해야 했다. 한 번 인사팀으로 가게 되면, 계속 인사 직무만 해야 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이직할 때도 인사 직무로만 거의 이동이 가능할 것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너 진짜 그게 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지금 있는 곳이 힘들어서, 지쳐서 피하고 싶은 거야?'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지치고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아 사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 마음이라면 내가 지금 인사팀을 간다면 내 선택에 정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마음으로 과연 나는 그 직무를 잘할 수 있을까?
제대로 해 내지 못 할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 정말 운이 맞지 않아 영업부에 더 있어야 한다고 해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이 질문이 정말 끝까지 나를 괴롭혔다. 후회할 것 같았다.
어떻게 후회를 안 하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선택을 해야 했고 정말 고민을 거듭하여 장문의 문자를 인사팀 팀장님께 남겼다.
이런 기회를 주시고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그렇지만 나는 입사할 때부터 마케팅 직무가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 더 그 기회를 모색해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내 결정과 고민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답장이 왔고 다행히 인사팀 팀장님과 이 일로 어색해지지는 않았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리고 인사팀으로 발령 난 동기 언니를 보며 혹시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때 정말 굳은 마음으로 아직 오지도 않았고 언제 올지도 모르지만, 내가 잡고 싶은 기회를 잡기 위해 달콤해 보였던 선택지를 포기했던 내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 이후 한 6개월 뒤에 마케팅 자리에 내가 가게 되었다.
그 자리에 가게 된 자세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열심히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사내 자기계발 계획서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업데이트했던 것,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인사팀 팀장에게 얘기할 수 있었던 그 순간 그 모든 것들이 돌이켜보면 나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