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에 솔직하게 써보자면,
나는 한 해에 두 번 대학원에 지원했다.
처음에는 서울대학교 보건정책학 전공으로, 같은 해 2학기 신입생 모집에는 서울대학교 보건학을 전공으로 지원했다.
내가 지원에 탈락한 이유를 분석해 보았고, 그 당시는 정말 좋은 인연을 기회로 내가 부딪힌 장벽을 넘을 수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좀 더 편한 길로 대학원 입시 상담을 아는 사람을 통해 받아본다거나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제약회사에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 진학해 학교를 다니고 있던 주변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에 나는 스스로 부딪혀 가며 3번의 도전 끝에 입학할 수 있었다.
술 한잔을 못 마시던 나에게 팩 소주를 마시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 병원에서 있었던 일에 더해
대학원 입학 두 번의 고배를 마시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였다.
나를 눈물짓게 한 과는 아니었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인간적인 교수님들 (고객보다는 존경을 담아)이 계시는 과 앞, 외래가 다 끝난 시간에 텅 빈 의자에 멍 때리며 앉아 있었다.
'나는 언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마케팅부로 갈 수 있을까? 나는 배우고 싶다. 발전하고 싶다. 학교가 가장 쉬운 길인데 두 번이나 떨어졌고... 너무나 막막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뭘 더 준비해 가야 할까?' 한참을 슬픈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외래 진료실 문이 열리며, 담당했던 한 교수님이 나오다가 세상 모든 근심을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나와 마주쳤다.
"OO 씨, 무슨 일 있어요?"
화들짝 놀란 나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마치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봐 주기를 바랐던 사람처럼.
"아, 교수님, 사실은요, 제가 공부가 하고 싶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
평소에도 내가 어떤 이유로 제약회사에 입사를 하고 내가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하셨던 교수님은 그렇게 내 얘기를 정말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요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데 서류상 부족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계속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였다.
"OO 씨, 대학원은 교수님 컨택이 중요한 걸로 알고 있어요. 각 교실마다 TO도 다를 거고"
아!
대학원 준비를 하는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미련스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냥 입시처럼 준비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원인을 알게 되어 기쁘지만 동시에 막막한 감정이 뱃속부터 목구멍 위로 차오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OO 씨, 내가 직접 협업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병원 교수님 중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님과 협업하고 있는 교수님이 있어요. 어쩌면 내가 그 보건대학원 교수님 하고, 연락을 해볼 수 있어요."
목구멍 위로 차올랐던 막막한 감정은 어느새 따뜻한 마음으로 먹먹함이 되어 눈물로 맺혔다.
"교수님, 정말 염치 불고하지만, 알아봐 주시면 정말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제가 진짜 너무 막막했거든요.."
"아니에요, 무언가를 배우려고 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고 응원할 일이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돕고 싶어요"
그리고 몇 주 토요일, 나는 나의 지도교수님이 된 교수님 연구실의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입학 원서를 내기 전 아무것도 모르고, 입학이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주 세미나에 참석했다. 두어 번은 발표도 준비해 갔다. 발표 수준은 지금 생각해 보면 들어주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열정만큼은 모두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영업부에 있으면서, 상대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 나는 한 가지는 지켰다.
상대가 상식을 넘지 않는 한, 상대에게 나의 진심을 보인다는 생각으로 대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대하면, 10중에 1,2번은 나의 진심이 닿는다. 그리고 내 진심이 닿은 그 한 두 번은 종종 나에게 벅찬 감동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