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았습니다.
<무모한 나비야, 날아라 무한히> 외전 1
친정으로 쫓겨오듯 돌아온 그때의 나는 정말 가진 돈이 없었다. 연재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내 모든 재산이 전세보증금으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남편의 직장을 따라서 이사를 한 후, 나는 그나마 일하면서 모아뒀던 돈을 내 사업을 위한 계약금으로도 쓰고 생활비로도 썼다. 전남편은 이사를 간 후, 내가 친정으로 올 때까지(외도의 기간) 몇 개월간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돌아온 탕자가 되어버린 막내딸년은 차마 부모님께 그때 그 상황을 알릴 수 없었다. 통장 잔고가 거의 바닥을 찍고 있었는데도 쓸 돈은 있냐는 엄마의 질문에 눈을 피하고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딸들은 엄마한테 거짓말할 때 눈을 마주치면 죽는다. 바로 들통난다. 엄마 몸속에 있었던 건 자식들인데, 어찌 엄마들은 자식 속을 훤히 아는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마음이 너무 슬프고 힘든데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가평에 있는 ‘필그림하우스’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지구촌교회에서 운영하는 기도원 같은 공간인데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 템플스테이 아니고 처치스테이 정도?
내 속도 모르고 파랗고 높기만 한 하늘의 청량한 가을날, 나는 없는 돈을 모아서 그곳에서 3일을 머물렀다.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그냥 울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tmi지만 이곳 밥이 정말 맛있다. 거식증 환자처럼 밥을 거부했던 나는 그곳에서 푸드파이터에 빙의해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러다 저녁이 되면 나는 엄청 작고 깜깜한 기도실에 들어갔다. 그 안은 너무 어두운데, 앞에 십자가 하나가 되게 밝게 빛나고 있다. 십자가를 보자마자 서러움 대폭발.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울어도 꼭 그렇게 주님 보란 듯이, 굳이 굳이 안 보일세라 십자가 앞에서 울어재끼는 나. 사람이 너무 울면 넋이 나간다. 십자가를 노려보다가 울다가 가만히 있다가 바닥에 늘어져 앉아있었다.
필그림하우스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는데 라테 한잔이 3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돈이 너무 아까워서 하루에 딱 한잔을 마셨다.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 나는 그걸로는 부족하지만 가진 돈이 더 부족했기에 저녁에는 집에서 챙겨간 카누 스틱을 종이컵에 타서 마셨다. 내가 커피 한 잔을 사는데 이렇게 내 주머니 사정을 신경 쓰게 될 줄이야… 너무 비참해서 헛웃음이 났다.
그때 내 입에서 나오는 다른 기도는 없었다. 그저 ‘내일 아침에 눈 안 뜨게 해 주세요.’만 반복했다. 남편 없이는 살 수 있는데 사람을, 사랑을 사랑하는 내가 이제 누구를 믿지 못하고 살 거라는 그 사실이 나를 깊은 절망에 빠뜨렸다.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잠식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내가 강사시절부터 좋아했던 특정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있었다. 과목은 묻지 마시길. 전남편을 따라 이사 간 곳에서 그 지역을 담당하시는 대표 원장님을 만나 가맹을 했고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열정이 정말 가득한 너무 멋있는 분이었다. 나는 일을 잘하는 여성들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 그런데 그 원장님도 나를 보고 본인보다 더 열정이 있는 걸 느끼셨다고 했다. 그렇게 의기투합해서 원생을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하고 한 달 만에 재원생 다섯 명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정확히 내가 일을 시작하고 2주 후, 나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지만 내가 맡은 아이들을 어떻게든 책임지고 싶어서 일주일을 더 수업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친정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모든 학부모님께 그동안의 수업료를 받지 않고 전액을 환불해 드렸다. 내 인생의 첫 사업이었다. 늘 꿈꿨던 그 행복은 나에게 단 한 달도 지속되지 못했다. 환불이 다 끝나고 나서 나는 거실 바닥에 누워서 숨이 넘어가게 울었다. 너무 서러웠다. 그리고 나를 믿고 맡겨주신 학부모님들과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다시 필그림하우스의 내 집. 나는 어느 나라에 여행을 가도 호텔이라는 말보다 집이라는 표현을 쓴다. 성보라가 도른자 같다고 했는데, 그곳이 어디든 내가 머무는 곳이 나에게는 집이다. 울다 지쳐 돌아온 그 집에서 나는 드디어 결심을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대표원장님에게 더이상 가맹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니까.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어떻게 말하지, 뭐라고 말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데 들려온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원장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