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자의 사는 이야기 2.
몇 년 만에 라디오를 생방송으로 들었다. 요즘 가장 즐겨 듣는 '허지웅쇼'를 제 때 듣기 위해 SBS 고릴라 어플을 깔고 11시가 되기만 기다렸다. 늘 유튜브로 지난 방송을 들어야 했는데 생방송을 편집 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설렜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들뜬 마음으로 사연을 보냈다. 음악이 나오는 동안 심장이 조금은 콩닥콩닥했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사연이 읽히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웅디가 내 이름을 말하고 내 사연을 읽어준 것이다. 너무 흥분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맞아 이게 라디오의 묘미지! 콩닥 대던 심장이 쿵쾅 대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 업무는 이걸로 끝이다. 일이 될 리가 있나 이렇게 손 끝이 떨리는 걸!
10년이 넘게 끊었던 라디오를 본격적으로 다시 듣기 시작한 것은 2020년 여름쯤이다. 평소 좋아하던 허지웅 작가가 라디오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근무 시간과 겹쳐서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없이 걷고 싶던 퇴근길에 유튜브로 '허지웅쇼'를 검색했고 다시 듣기가 가능한 것을 알았다. 그렇게 갑자기 11년을 멀리했던 라디오와 다시 만났다.
처음 라디오를 접한 건 아빠 덕분이었다. 나의 아빠는 하지 말라는 것보다 해보라는 것이 많았고 나를 교육할 때도 '안돼' 보다 '이런 쪽으로 해보면 어때?'라고 제안하는 쪽이었다. 아빠가 라디오를 사 온 그날도 그랬다. 매일 TV만 본다고 혼내는 엄마를 피해 방에 들어가 억지로 문제집을 풀며 씩씩대고 있는데 언제나처럼 아빠가 노크를 하고 방에 들어왔다. 그리곤 라디오 하나를 책상 옆에 놔주셨고 라디오의 장점을 한참 이야기해주셨다.
'TV는 보면서 생각하기 어렵지만 라디오는 들으면서 엄청난 상상을 할 수 있어. 이 사람들이 지금 어떤 표정일까, 무슨 옷을 입었을까, 나라면 그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거야. 우리 딸이 혼자 있을 때도 외롭지 않게 언제나 옆에서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가 될 거야. 그리고 방송이 끝나면 생각한 것을 글로 써봐. 재밌는 소설이 될지도 모르잖아.'
그 날부터 나는 라디오를 주구장창 들었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이적의 별밤이 되었고 옥주현의 별로 빛날 때까지 함께했다. 남궁연의 고릴라디오와 신해철의 고스티네이션을 듣다가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이고 좀비처럼 학교에 간 날도 많았다. 그래도 좋았다. 아빠 말씀처럼 늘 친구가 옆에 있는 느낌이었고 어쩌다 내가 보낸 사연이 방송에 나오면 나 혼자 몰래 좋아하던 친구가 말을 걸어준 것처럼 떨리고 기뻤다. 자연스럽게 글도 많이 썼고 다른 사람의 글도 많이 읽었다. 글쓰기가 좋아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방송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중,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방송반 시험에 응시했는데 매번 떨어졌다. 내 목소리가 별로인가 얼굴이 별로인가 아니면 둘 다 인가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한 수업이 끝나고 다른 건물로 이동하면서 교내 방송국 수습 국원 모집 포스터를 발견했고 나는 또 방송국 면접을 봤다. 그리고 며칠 뒤 학교 방송국에서 합격 전화가 왔다. 오랜 짝사랑이 끝났다.
나의 대학 생활은 방송국이 전부였다. 방송이 좋아질수록 내 목표도 명확해졌다. 나는 라디오 PD, 방송국 입사만을 목표로 6년을 보냈다.
3년 내내 아침 7시 30분까지 학교에 가서 아침 방송을 준비했다. 공강 시간도 반납하고 방송국을 지켰고 새벽 지하철에서 방송 원고를 작성했다. 영화 방송을 제작할 때는 모 대학 교수님 인터뷰를 따느라 중간고사도 패스했다. 주말에는 케이블 방송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방학 기간에는 방송사에서 인턴도 했다. 방송제 기간에는 한 달 가까이 집에도 안 가고 방송국에 살았다. 오죽했으면 본 전공 교수님께서 ’PD 안되면 학교 올 생각도 하지 마!‘라고 협박을 가장한 응원을 해주셨을까.
20대 초반이 그렇게 지나갔다. 다른 길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까지 좋아한 일이 없었고 그렇게 까지 열심히 한 일도 없었으니 죽어도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네가 그 힘든 일을 어떻게 할 거냐며 다른 곳에 취업할 것을 강요했지만 반드시 PD가 되고 말겠다며 악을 쓰고 버텼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힘든 일을 하지 못하고 졸업 후 2년 만에 오랜 꿈을 접었다. 동기들은 우선 어디든 취업하고 다시 도전하라고 격려해줬지만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열정이 거기까지 였는지, 실력의 한계를 느꼈는지 이유야 어쨌든 나는 포기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라디오를 듣지 않았다. 가장 소중했던 친구를 잃어버렸다.
한동안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나이만 먹고 취업도 못한 채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는 상황이 답답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낯설고 무서웠던 것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하고 싶은 일이 없는 현실이었다. 나의 모든 경험과 이력이 방송국에만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일을 생각하거나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의 뼈 아픈 구박도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 엄마 말이 다 사실인 것 같았기 때문에 받아칠 기운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내일 아침에 해가 안 떴으면 좋겠다. 그냥 내가 눈을 안 떠도 좋고.'라며 혼잣말을 내뱉었는데 뒤에 있던 엄마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그 뒤로 나에게 어떤 험한 말도 하지 않으셨다.
어린 날 나의 꿈은 새로운 꿈과 목표에 밀려 잊혀갔다. 어렵게 찾은 새로운 꿈에 몰입했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다. 이따금 친구들이 '너 진짜 라디오 PD 될 줄 알았는데!'라고 말할 때마다 그 시절이 생각나서 마음이 쓰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보다 안타까움, 슬픈 감정이 커져서 더 묻어두려고 애썼다. 그런데 2020년 여름, 갑자기 라디오가 듣고 싶어 진 이유가 뭐였을까? 라디오와 함께 한 시간 반이 넘도록 걸어오며 답을 찾아보려 애썼다. 내가 요즘 많이 외로웠나 아니면 열정 넘치던 시절이 그리웠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의 원인을 복잡스럽게 찾던 나는 집 앞에 도달해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라디오가 재밌긴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