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자의 사는 이야기 3.
나는 눈이나 비를 맞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하늘이 뻥 뚫린 것처럼 무언가 쏟아지는 날 출근하는 것이 가장 우울하다. 이런 날, 따뜻한 집에서 커피 한 잔을 내린 뒤 꽃송이처럼 떨어지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커피는 고사하고 집에만 있어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자동차가 길가에 쌓인 까만 눈 뭉태기를 내 옷에 뿌리고 가는 일은 없을 테니!!!!
눈 오는 날 까만 눈덩이까지 뒤집어쓰고 나니 출근 길이 더 지옥 같았다. 지하철 역까지 한참을, 세월아 네월아 걸어가는데 웬일인지 '버럭이'와 '슬픔이'가 지배하던 머릿속에 '조이'가 자리 잡았다.
'코로나로 강의란 강의는 다 취소되고 들어오는 일도 없는 와중에 그나마 빚을 많이 늘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왕복 4시간이 걸려서라도 일 하러 갈 곳이 있어서지 뭐. 눈 좀 맞으면 어때, 옷이야 빨면 그만이지.'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방금 전까지 '로또 로또, 스피또 스피또, 제발 제발!'을 주문처럼 외치던 내 안의 절규가 잠시 멈췄다. 하지만 지하철 문이 열리고 옥수수알처럼 박혀있는 사람들을 보니 다시 악에 받친 절규가 시작됐다. '제발! 로또! 5억 스피또라도 쫌!'
그 날 유난히 속이 시끄러웠던 이유는 며칠 전 부동산에 다녀온 탓이 크다. 애써 피해온 나의 현실을 마주하고 왔기 때문이다.
1년 전,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에 무리해서 집을 옮겼다. 한 푼 한 푼 모아서 언젠가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꿈이 사라진 후 '에라 모르겠다' 저주에 걸려 대출이란 대출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아파트 전세로 옮겼다. 매매도 아니고.
이사 첫날, 이게 도대체 내 집인지 레지던스에 며칠 놀러 온 건지 실감이 안 났다. 주어진 환경이 낯설었고 내 주제에 이런 걸 누리고 살아도 되는 건지 겁도 났다. 그래도 살아보고 싶었다. 나와 남편 둘 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그 성과로 연봉도 조금씩 올렸으니 이 정도는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주문을 걸었다. 쌓여가는 빚은 은행 애플리케이션 화면 맨 윗부분만 가리면 보이지 않았고 미래는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이라며 무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모 도움으로 여유 있게 시작한 친구들은 우리보다 작고 낡은 집에 살지언정 현실에 대한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점점 밝아지는데 나는 숨 막힘과 두려움으로 점점 어두워졌다. 더욱이 퇴사와 임신 준비로 불안정한 내 삶에 재난상황까지 겹치니 이 좋은 집도 지옥 같이 변해갔고 매일 같이 업데이트되는 부동산 정책까지 나를 더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러다 집주인이 살겠다고 나가라고 하거나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2년 이후에 또 이사해야 할 텐데... 더 이상 대출도 안되고 어쩌나' 불안감이 엄습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도 어디서부터 제대로 고쳐 잡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허황된 꿈에 부풀어 수준에 안 맞는 집에 들어온 것이 문제인지, 밥 한 끼쯤은 건너뛰고 여행 한번 안 가고 돈을 모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문제인지 답답함만 가득했다. 그래서 두어 달 점심은 두유나 반찬 없이 즉석밥 하나로 버티고 일주일에 천 원 살기에 도전했다. 그렇게 아낀 돈은 느닷없이 날아온 세금고지서와 함께 날아갔다. 허무했다. 아끼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생각에 다른 방법을 찾았다. 돈은 벌고 싶지만 돈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돈 버는 방법'에 관한 책을 찾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적게 쓰고 투자해라, 고정 수익을 만들어라, 주식에 투자해라 그리고 부동산 해라.' 다 아는 얘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역시 허무했다.
그러다 하루는 부동산 투어를 결심했다. 지난날의 실수를 번복하지 않으려면 대책이 필요했다. 보증금까지 대출받은 형편에 비싼 월세로 겨우 살아낸 첫 번째 집, 싼 가격에 혹해 햇빛이 드는지 비 오는 날 천장에서 물이 새는지도 모른 채 덜컥 계약한 두 번째 집, 매매를 못하면 전세라도 좋은 곳에 살겠다며 내 인생을 상대로 오기를 부린 세 번째 집 모두 급하게 결정한 과욕의 결과였다.
뉴스와 문자로 외출 자제 경고가 빗발치던 날, 그 눈을 뚫고 부동산에 찾아올 만큼 절실해 보였나 보다.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공인중개사분들 모두 친절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나의 현실을 자각시켜 주셨다. 문득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해서 여쭤보니 집 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고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이 부동산 정책 영향이건 아니건 사장님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리는 것을 보니 집을 구매하기 위한 사람들의 문의가 많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 같았다. 집 값이 계속 오르는데 왜 사려는 사람이 많을까? 얼마 전 30, 40대 대상으로 부동산 패닉 바잉 현상이 퍼진다는 뉴스를 보며 '에이, 서울 사람이나 그렇겠지'했는데 내가 우리나라의 30, 40대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었나 보다.
나는 정부가 진심으로 집 값을 잡아주길 원하는 무주택자다. 공인중개사들은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며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사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님께 부탁하라고, 대출을 더 받아보라고 종용했다.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어요. 이미 대출이 full인데 사채를 쓸까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그 말을 꾹꾹 밀어 넣은 채 대외용 미소만 입이 아프게 지어 보였다.
나는 어딜 가든 내 장점으로 주제 파악을 꼽았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겸손하다 했지만 진실로 내가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칭찬과 인정에 몸서리치며 거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주제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은 은행의 도움 없이 반지하도, 전세도 들어갈 수 없는데 아파트라니.
누군가는 은행 대출도 능력이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빚쟁이 신분이 언제부터 능력자로 둔갑한 건지 이 사회의 정의와 개념이 낯설고 무섭다.
내 집을 갖겠다는 꿈은 2년에 한 번씩 내다 버리는데도 자꾸 스멀스멀 생겨난다. 침대와 맞닿은 벽에 피는 곰팡이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퍼진다. 왜 이렇게 내 집에 집착하는지 나조차 궁금할 때가 있다. 삶의 안정은 내면의 평화에서 오는 것이지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는 사람들의 말과 글을 수 없이 듣고 보았다. 그런데 의문도 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매달 대출이자에 허덕이거나 부양해야 할 부모가 있거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지.
집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몸이 쉴 수 있는 공간, 누군가에는 따뜻한 마음의 안식처, 누군가에게는 재산을 불리기 위한 투자 아이템 등 각자가 생각하는 집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배웠던 의, 식, 주의 '주'가 오늘날의 '주'가 아니게 된 것은 분명하다. 나조차 어린 시절 배운 인간이 살기 위한 필수요소 중 하나인 '주'가 아닌 '꿈', '환상'으로 선택한 '주'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보고 있으면 이런 나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는 것 같다. 이제 그만 꿈에서 깨고 현실에 살라고, 원래 니 자리를 찾아가라고, 괜히 빚만 더 지지 말고 어린 시절에 배운 대로 필수요소를 충족할 수 있는 곳에 살라고 말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수준에 맞게 살면서 건강한 가계 경제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려는 나라. 정말 좋은 나라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