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자의 사는 이야기 4.
내 인생의 드라마는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다. 로맨스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신과 저승세계는 내 오래된 관심 분야이기 때문에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도깨비’가 내 인생 드라마가 된 결정적 이유는 주옥같은 대사들 때문이다. 특히,
'인간에겐 네 번의 생이 있대요. 씨 뿌리는 생, 뿌린 씨에 물 주는 생, 물 준 씨를 수확하는 생,
수확한 것들을 쓰는 생'
'난 뭔 놈의 인생이 1-1, 1-2야. 2로 안 넘어가'
이 두 가지 대사 덕분에 정말 많이 울었고 치유받았으며 이 생을 잘 살아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고교 비평준화 시대를 살며 고등학교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아 엄마 피를 말렸고, 교장 선생님 추천까지 받아 대학 수시 원서를 있는 대로 집어넣었는데 수능을 봐야 합격할 수 있는 학교만 붙었다. 결국 자기소개서 작성, 논술, 면접, 수능까지 다 보고 대학에 들어갔다.
취업도 그랬다. 마음만 먹으면 취업할 수 있다던 화학공학을 전공해놓고 동기들 모두 대기업에 취업할 때 자발적 취준생 기간을 피눈물로 보냈으며 겨우 찾은 내 일을 열심히 해보자 했을 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졸지에 반 가장이 되어야 했다. 건강검진을 해도 꼭 혹이 있든 뭔가 의심된다며 재검사 진단이 나왔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몇 광년 같은 시간을 오롯이 견뎠다.
미래에 대한 기대, 삶에 대한 의지가 사라질 때쯤 ‘도깨비’를 만났다. 정말 무엇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던 내 인생은 다른 사람보다 긴 목차로 쓰이는 중이구나 생각하니 설움이 복받쳤다.
살면서 감사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쁘고 즐길 수 있는 순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느낀 감정은 신이 나의 목덜미를 잡고 저 깊은 물속에 담갔다가 죽기 직전에 겨우 숨만 쉴 수 있도록 꺼내 주는 것 같았다. 조금 살 것 같아서 주변을 돌아볼라 치면 그대로 다시 깊은 물속에 처박혔고 그렇게 언제 다시 숨 쉴 수 있을까 기다리며 사는 나날이 늘 불안했다. 결혼 전까지 1년에 서너 번 원인 모를 불안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안정적일 때였다.
마음치유, 자기 계발, 종교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과정을 통해 많이 내려놓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했으며 끊임없는 기도 끝에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웠다. 무엇보다 이번 생은 '씨 뿌리는 생'이려니 생각하면 현실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다음 생이 어딨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생이 있다면 나는 이번 생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만으로도 대부분의 일 들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잘 지내왔다.
그런데 오늘, 어딘지 낯익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평소 저장하지 않은 전화는 받지 않는데 왠지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산부인과였다. 왜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을까, 간호사 선생님의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무척이나 낯설었다. 지난 검진 때 만난 선생님은 너무 따뜻하고 친절했는데...
2차 기형아 검사 결과 고위험군으로 나왔으니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담당 교수님이 이번 주 휴진임에도 불구하고 나 때문에 내일 나오기로 하셨다며 당장 병원에 오란다. 무슨 말인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그러면 그렇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였다.
인공수정 횟수를 다 채우고 시험관 끝에 가진 아기였다. 지금도 난임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예비 엄마가 얼마나 마음 졸이고 있을지 알기 때문에 나는 감히 난임센터에서 보낸 그 시간이 힘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이가 그냥 생기는 줄 알았던 무지의 대가로 매달 피눈물을 쏟아야 했기 때문에 ‘아, 이번 챕터도 세부 항목이 많은가 보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버텨야 했다. 긴 기다림이었지만 결국 소중한 생명이 나에게 찾아왔고 살면서 때로 억울했던 모든 순간이 보상받는 것 같은 감사함을 느꼈다.
기도로 찾아온 생명이니 지켜주실 거라 믿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태평한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편해야 아기도 편하다는 그 말을 실천하기 위해 고민은 생기면 버리고 행복한 생각만 채웠다. 잘 해왔고 그 평화가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야말로 지옥이 찾아왔다. '아, 다시 물속으로 처박히는 때가 왔구나' 싶으니 아찔했다. 이번엔 물 위에서 너무 오래 숨을 쉬었나 보다. 이 고통이 부디 나로 끝나야 할 텐데, 뱃속의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살면서 내가 저지른 모든 잘못과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몇 년을 노력해서 다듬은 나의 멘탈은 1분가량의 전화 한 통으로 산산조각 났다.
남편을 보자마자 터진 둑을 빠져나오는 강물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며칠 후면 오늘의 내가 미칠 듯이 부끄러울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역시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삶을 다시금 깨닫고 나니 조금은 피곤하고 아프다.
그래도 나는 신을 탓하고 싶지 않다. 힘든 삶의 방식도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르게 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여도 '괜찮아, 나와 아이를 믿어!'라며 추가 검사를 택하지 않는 엄마가 많다고 들었다. 그분들의 강한 정신력과 의지, 신뢰, 긍정적 마인드가 너무나 존경스럽다. 하지만 나는 게임을 할 때도 일일 퀘스트를 모두 처리하고 맵(map)의 별을 전부 없애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그거 다 안 해도 괜찮아, 스킵(skip)해!’라며 놀리지만 퀘스트를 모두 끝내지 않았을 때의 불편감이 싫어서 힘들어도 끝까지 모든 맵을 도는 사람이 나다.
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퀘스트를 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꾸역꾸역 모두 처리하는 사람 있고 건너뛰는 사람도 있다. 결국 내 삶의 모든 퀘스트를 열어보는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지난날 그래 왔듯이 지금의 크고 작은 시련도 나는 하나하나 처리해나갈 것이다. 사람은 역시 쉽게 바뀔 수 없는 것 같다.
나와 같이 지금도 매 순간 퀘스트를 깨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온 힘을 다해 응원하고 싶다. 같이 힘내서 끝까지 이 생을 살아가자고. 결국에 인생의 모든 맵(map)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같이 일일 퀘스트를 모두 달성한 사람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