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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 Aug 01. 2015

요즘 철이

철이는 오늘도 머리가 복잡하다. 스스로 의자에 앉은 것인지 아니면 의자가 엉덩이를 붙잡아 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언제부터 앞에 있는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쉬는 시간까지는 12분이 남았다.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 다투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시던 어머니의 매일 반복되는 신신당부도 언제부터였는지 잘 잊었다. 어머니와 선생님의 문득 떠오른 공통점은 내가 정말로 궁금해하는 것에는 정확히 대답해 주지 못 한다는 것이다. 철이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정말 궁금하다. 삶은 무엇인지도 정말 궁금하고 어디부터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땅인지도 궁금해 미칠 노릇이지만 한번도 시원스러운 대답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금 한숨만 내쉰다. 이상하게 한숨이 나오면 어깨가 처지는 것도 고개가 바닥으로 떨궈지는 것도 궁금하다. 어릴 적 부모님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셨으나 철이의 궁금증은 제대로 해결된 적이 없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자 학교 선생님께 여쭤보라고 하셨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라고 하신 적도 있다. 결과는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선생님들은 삶은 무어냐는 질문에 그건 일단 대학부터 가자고 하셨고 이런 궁금증에 대한 인터넷의 검색 결과는 역시나 참담했을 뿐이었다.  

오늘따라 무뚝뚝하시고 대화가 많지 않은 아버지께선 아들에게 사춘기가 왔나 하며 어쭙잖은 성교육을 시도하며 대화를 걸어왔지만 그런 것들은 오히려 인터넷이 확실하고 분명하며 정확하게 철이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고민 끝에 찾아낸 대화 주제가 소용없어지자 결국 아버지는 철이와 손가락 두 마디 밖에 안 들어가는 유리잔에 어른되어야 마실 수 있다던 그것을 채워주었다. 


철이는 어떨결에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야 마실 수 있다시던 그 것, 지나치게 친절한 인터넷은 철이를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철이는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된다던 것들 중에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답을 찾은 것이 없었고 그저 혼란스럽다. 철이는 어른이라는 말의 사용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이젠 이런 것을 마셔도 몸이 견딜 수 있을만한 나이가 됐을 뿐이지 아직도 내 머리는 어른이 되면 알 수 있는 것을 알지 못해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 철이가 아버지와 대작을 하던 날 철이의 아버지는 철이를 대견해했다. 철이의 아버지는 어느새 이렇게 컸다며 못내 감격해한다. 병 속의 술이 줄어들수록 철이 아버지의 감격은 커져만 갔고 말은 횡설수설이었다. 철이는 사춘기라는 어른들이 그렇다고 하는 지금의 시기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금 이 상태로라면 죽을 때까지 사춘기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할 것 같아한다. 붉어진 눈은 이리저리 대굴대굴 굴러다닌다. 신기하게도 눈알들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으나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어지럽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빙글빙글 돌고 있고 땅은 한순간도 가만있지 않아 이리저리 튀어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한쪽 벽에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포스터의 모델의 손짓이 매력적이다. 예쁘고 화려한 맵시의 모델의 손에는 역시나 손가락 두 마디 깊이의 유리잔이 들려있다. 저 잔을 목 뒤로 꺾은 횟수 만큼 어른으로서 알아야 하는 것들을 더 많이 알고 있을 것 같다. 철이가 궁금해 하는 바로 그 것들이리라. 철이는 주저하지 않고 따라 잔을 들며 건배를 외친다.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보겠노라 하며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킨다. 


 내 짝 진원이는 친구가 많다. 공부에는 영관심이 없고 대학에 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수많은 친구들과 운동도 하고 재밌는 것도 하러 다니고 항상 즐거워 보인다. 딱히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유쾌한 성격과 세련되어 보이는 사교성에 늘 친구들에 둘러싸여있다. 야간 자율학습시간 진원이는 복도로 불려나갔다. 담임선생님의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담임선생님의 호출에도 생긋 웃으며 내 책상을 톡치며 일어났다. 다녀올게란 말이 참으로 가볍다. 녀석 특유의 경쾌한 행동들이다. 슬슴슬금 다가오는 대학 진학을 앞둔 나와 동갑내기 친구들은 이런 면담 시간이 늘 긴장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늘 저렇다. 괜히 옆자리 앉은 내가 녀석 몫의 걱정까지 지고 가는 건가 하는 피해의식이 들 정도로 녀석의 모습은 팔랑거리는 나비 같다. 책상이 복도 창문과 가까운 탓인지 이내 선생님과 진원이의 말소리가 들린다. 내 이야기도 아닌데 왜 이리 궁금할까. 친구끼리의 대화에서나 나올법한 장난스러운 웃음도 들린다. 진원이 녀석에겐 도대체 친구의 법위가 어디까지일까. 실제로 선생님들은 진원이를 무척 좋아한다. 선생님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녀석의 능구렁이 같은 표정과 말에 적당한 잘못은 그냥 넘어가며, 꿀밤이나 한대 먹이곤 하셨다. 책장을 넘기는데 왜 넘기는지 모를 만큼 전혀 집중이 안 됐다. 소설 지문 속 주인공들은 날 비웃는  듯하고 참고서 삽화의 아이는 심지어 나에게 주먹감자를 날리고 있다. 얼 빠진 얼굴을 하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진원이가 면담을 끝냈는지 들어와선 내 어깨를 퍽 친다. 얼 빠진 표정을 보고선 "야, 매점 가자. 본다고 답이 나오냐?ㅋㅋㅋ?" 아직 쉬는 시간 까진 3분이나 남았다.


함박눈이 내리는 운동장엔 이미 폭신하게 솜이불이 깔렸다. 역시 우리 친구들은 미친 듯이 눈밭을 헤집고 있다. 몇몇 애들은 몇 분 안 남은 시간이지만 벌써 눈덩이를 굴리고 있다. 저건 크든 작든 종이 치면 눈사람이 되겠지. 


"선생님이 뭐라시냐?" 


"뭘 뭐라그래, 넌 뭐 될래? 이러시더라ㅋㅋㅋ 그래서 "될 놈은 어떻게든 돼요~"이랬지!ㅋㅋㅋ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녀석 다운 대답이다. 이 녀석은 미친 게 분명하다.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수업시간 자습시간 안 가리고 잠이나 자는 게 자기보다 훨씬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보다 성적이 좋아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걸까. 내가 이 녀석보다 성적도 안 좋았으면 진짜 살맛 안 났을 거다. 이런 미친놈들이 이 커다란 학교에서 한 2천 명 가까이 있으니 난 당연히 제정신일 수가 없다. 넌 뭐 될래. 그래 되긴 뭐가 되나. 대학생이 되고 싶고 어른이 되고 싶다. 지난번에 아버지랑 술 마신 다음날 죽는 게 이런 건가 싶었을 만큼 괴로웠다. 언제 될지 요원하기 만한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이 되면 그깟 술 물처럼 벌컥벌컥 마시고선 지들이 잘난 줄 아는, 어린 놈의 새끼들한테 훈계를 늘어놓을 테다. 아 되긴 뭘 되나. 죽도 밥도 안 되게 생겼다. 공부고 뭐고 다 때려 치울까 보다.  


오늘은 대충 선생님께 둘러대고 일찍 집에 왔다. 동생 녀석이 시험기간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을 본다. 뭐가 되려고 저러나... 너 시험공부 안 하냐고 물어보니까 이거 보고 보고서 쓰는 게 숙제란다. 대학만 아니라면 내가 대신해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숙제다. 텔레비전을 봐야 하는 숙제라니. 중학생 녀석 숙제가 그렇지 뭐.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그래, 국사교육은 이렇게 자연스럽고 거부감이 자연스러워야 하지 하며 교육부의 훌륭한 교육적 숙제에 대해 놀랄 만큼 만족감이 생긴다. 왜 나때는 이런 숙제가 없었을까. 도공들이 열심히 흙을 빚는다. 발로는 물레를 돌리며 손으로는 과감하면서도 지나치지 않는 곡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맨 아래에서부터 모양을 잡아가며 저마다의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다. 비슷한 것들도 있지만 결코 똑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재밌는 숙제를 하는 동생이 부러울 지경이다. 얼른 내 방으로 도망치지 않으면 어머니 특유의 조근조근 한 잔소리를 들어야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차분한 열정을 빚어내는 장인의 모습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근데 이거보고 무슨 보고서를 쓰냐?"


"몰라 진짜! 이걸보고 어떻게 인격도야랑 어떤 사람이 될 건지 생각을 써오래. 그것도 A4 한 장이상!" 


'넌 뭐 될래?'


방으로 들어온 내 머릿속에서 계속 메아리친다. 뭐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간다. 내가 무어가 된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나는 나다. 근데 내가 뭐가 되다니. 나는 나 이후로 무엇이 되는 그런 존재였나. 나는 포유류의 한 종류이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생물이다. 아니 내가 또 뭔가가 될 수 있나? 포켓몬스터는 진화하여 최종단계가 '된다'. 인간은 눈도 못 뜬 채로 태어나 손가락만 빠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포켓몬스터도 아니고 왜 세상은 나에게 자꾸 뭐가 되라고 하는 걸까. 나는 그냥 나다. 어른이 되면 결혼도 할 테고 그럼 남편이 될 거고 아이를 낳으면 아빠가 될 거다. 근데 왜 내가 뭐가 될 거냐는 질문에 어른이요, 아빠가 될 거라고 하면 비웃기만 하나. 그럼 난 뭐가 되어야 하나. 영화 속에서처럼 영웅적인 행동으로 영웅이 되어야 하나. 난 그냥 내가 좋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싫은가. 지금 이런 나 말고 어떤 무엇이 되어 있는 그런 나를 바라는 걸까. 내가 무엇이면 그게 무슨 상관일까. 


"형! 나 보고서 다 썼어. 좀 봐줘. 이 선생님 예전 형 담임선생님이니까 형이 잘 알 거 아냐. 빨리 한 번 읽어봐 줘."


"...... 너 나중에  영화감독되고 싶냐?"


"응"


"영화감독은 하는 거지 되는 게 아니지."


"그거나 그거 아냐? 암튼 이 정도면 되겠어?" 


아... 지금까지 세상은 뭐가 되고 싶은 걸 물어본 게 아니라 뭐가 하고 싶었는지 물어본 거였나...? 근데 왜 그냥 대학 가라고 했을까... 아 또 머리가 복잡하다.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영화배우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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