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outlook on the world
2011년 개봉한 영화 <인타임>에서는 위의 표지와 같이 모든 사람의 왼쪽 팔목에 디지털시계가 심겨있어 실시간으로 자신의 남은 수명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거래는 그 수명으로만 가능하며 심지어 도둑 맞거나 강도를 당할 수도 있다. 이미 흥행 전부터 주인공들의 유명세와 캐미로도 입소문을 탔지만 소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영화 내에서도 당연히 빈부의 격차가 있기 마련인데 주인공인 저스틴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그야말로 하루만 일을 쉬어도 목숨이 끊어지는 빈촌에 살고 반대로 아만다는 그 수명이 거의 불멸에 이를 만큼의 부유한 집의 딸로 출현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현실적인 반영이 참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팔목에 나타난 수의 양으로 수명을 측정하니 정작 액면으로는 누가 엄마고 딸인지 알 수가 없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우리가 만 20세가 될 때 성인이라는 책임을 부여하듯 영화 안에서도 어느 시점이 되면 팔목 위에 디지털시계가 새겨지고 그때부터는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에 수명이 아무리 많아도 물리적인 피해를 입으면 죽음에 이른다. 그래서 극 중 아만다의 부모는 저스틴으로부터 아만다의 목숨을 담보로 협박을 받았다. 병으로 죽는 경우는 영화 내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총에 맞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있었다. 죽음을 맞이할 경우에도 팔목에 수는 한동안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이 죽어가는 방식은 같은데 거기에 디지털시계에 시간을 소진하면 죽음에 이르는 요소를 추가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개봉한 지 12년이 지났다. 그 당시 신박하다 느꼈던 그 소재가 지금은 이미 도래해 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미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개인들의 시간으로 돈을 벌고 있는 이른바, '시간을 녹여 가치를 얻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통해서 검색을 하면 웬만한 정보들은 먼저 경험한 이들로부터 넘치도록 공급받을 수 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금전을 지불하지 않고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그래서 청자들은 영상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감사의 표시로 '구독'이나 '좋아요'를 누르는 등의 방식으로 보답한다. 하지만 우린 이미 시간이라는 재화를 그들에게 지불했다. 플랫폼은 우리의 시간을 금전으로 교환해주는 창구의 역할을 한다. 물론 영화와는 다르다. 각 자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를 모른다는 것과 시간을 얼마나 가졌냐 보다는 시간 대비 급여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부의 수준을 가른다는 차이가 있다. 중요한 건 각 자의 시간을 지불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국민이 1인 1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생은 물론 유아들까지도 태블릿으로 영상을 시청한다. 그리고 이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가 될 것이다. 누군가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누군가는 소비만 한다. 늘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주제들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제일 처음 만든 사람뿐 아니라 비슷하게 따라만 해도 준하는 인기를 얻는다. "뭐 이런 걸 보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마저도 제작자에게는 이득이 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반품이 되지 않는 재화다. 그러니 내 시간을 들여서 남의 것을 보면서 소비만 할 생각이라면 이제 그만 알고리즘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인생은 남은 모래를 알 수 없는 모래시계다. 떨어진 모래는 주워담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남은 모래의 양도 알 수가 없다. 지금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모래를 어떻게 사용할지만 선택할 수 있다.
당신도 생각하지 못한 사이에 당신의 인생은 그렇게 소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