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outlook on the world
어릴 적부터 진지하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어왔다. 지금도 오랜 친구들 사이에서 나라는 사람을 수식하는 단어는 '진지함'이다.
"왜 이렇게 진지해?"
"이걸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한다고?"
10~20대 때, 또래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심지어 사귀던 여자친구들에게도 자주 듣던 말이다. 나의 리액션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외골수 기질이 타고난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 나를 변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물론 함께 지내야 하기에 노력한 세월은 있었다. 하지만 결국 태생이 다른 내가 선택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늘 심판대에 서는 기분으로 피로감이 쌓인 채로 그들을 대해야 했기에 무력감도 많이 느꼈다. 소위 말하는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지곤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30대가 되서는 이런 진중함을 가진 사람들이 나 외에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생계를 위하여 일선에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인생 만만치 않다는 걸 몸소 겪으면서 가지고 있던 장난기마저도 점점 사라진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가끔 회식자리에 가면 '대체 저런 모습을 어떻게 숨기면서 살았을까?' 의문이 드는 사람들도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진지함을 좋아한다기보다 기능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라는 생각에 가끔은 그들이 무력해 보이거나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느 때는 나보다 더 진지한 사람도 보았다. 때와 장소 대화의 성격 등을 따지지 않고 매사 모든 영역에 진지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과 대화할 때는 도리어 내가 더 피로감을 느꼈다. 일상적인 대화조차가 불가능했다.
"XX님은 평소 생각도 많으시고 깊이 하시는 편인가봐요?"
".. 생각이라... 생각은 뭘까요?"
진중함을 칭찬해주고 싶은 의도였지만, 매사 모든 단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친구에 대해 묻는다면 "친구란 뭘까요?" 라면서 단어에 의미를 되짚느라 대화의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았다. 참으로 답답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누구나 진지할 수 있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사냐의 문제는 성향의 차이이고 진지함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나누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라는 것.
40대가 되었다. 학창시절을 함께 하던 친구들 중 자주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는 손에 꼽는다. 도리어 사회에서 만났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또래들이나 선후배들이 더 연락을 많이 한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데면데면하고 결국은 혼자 남는다. 결혼을 했다면 옆에 부인과 아이들이 미혼이라면 여자친구가 가장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나는 후자 쪽에 속하는데 나의 이런 진지함을 좋아해 주고 인정해 주는 여자다. 물론 나는 위에 말한 친구처럼 늘 진지한 사람은 아니다. 장난스러울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정한다. 하지만 나의 진지함에 대해 폄하하거나, 전혀 진지할 줄 모르는 사람이거나, 역차별적으로 장난만 치려고 하고 배려가 없는 사람들은 그냥 손절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그건 성향의 차이도 아니고 가치관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성격이 반대인 것은 장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치관이 다르고 상충되는 것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 정치 이야기는 가족, 친구끼리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치관이 반대이면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10대때부터 친구였고 아직까지 연락이 닿은 그 손가락 중에 하나인 친구와 최근 카톡대화를 하다가 문득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주절주절 써본 글이다. 평소 역차별적인 걸 참 싫어한다.
술은 일절 입에도 대지 않는데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느라 술자리에는 자주 참석하고 2차, 3차 가리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살았다. 술을 좋아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내가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술을 마셔서가 아니라 매번 따라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나를 전혀 배려하지 못하는 역차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 때문이다. 한 번쯤은 내가 좋아하는 차를 마시면서 회식을 할 수도 있고 시간을 보내줄 수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늘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면 그건 일방적인 차별이고 더군다나 그걸 문제 삼기까지 한다면 그들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이런 진지함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왜 내가 너의 장난을 잘 받아주기를 바라는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