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냐? 예술이 먼저냐?
달걀은 닭보다 먼저라도 좋다. 하지만 예술은 사람 앞에 설 수 없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끝나지 않은 논쟁거리다. 대개 진화론을 근거로 한 이론들은 달걀을 앞세우고, 성경과 같이 태초의 시작을 서술한 책을 보면 닭이 먼저임을 말한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무엇이 옳다 결론내기가 참 어렵다. 그래도 난 개인적으로 지금의 현상대로 보면 분명 달걀을 낳는 건 닭이기 때문에, 그리고 달걀이 먼저였다면 이것을 품고 부화시켜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닭이 먼저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반박 시 당신의 말이 맞다. 무엇이 먼저든 내게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하면 당연히 사람이 먼저다. 이렇게 질문하면 누구라도 당연히 사람이 먼저라고 하는데 막상 질문을 바꾸거나 상황을 대입하면 자신들도 모르게 사람을 뒷전에 두는 경우가 많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솔비의 그림은 예술일까?
인스타그램에 솔비에 그림에 관한 피드가 뜨면, 온갖 그림에 관한 지식쟁이들과 실제 전공생까지 와서 읍소를 한다. 그리고 좋아요 개수를 보니 많은 공감을 얻는듯하다. 요지는 자신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그녀의 그림은 예술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자신들과 같이 전공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기본을 거치지 않은 솔비를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인지도를 가지고 그림을 알려서 얻는 이득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들의 배운 학문이 반드시 거쳐야 할 예술의 관문인 것처럼, 자신들만이 예술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처럼, 또한 마치 사람의 인생보다 예술이 먼저인 것처럼 말이다.
솔비의 그림이 아니라도 당신들의 그림은 팔리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대중들에게 그림을 알리기 위해 힘쓴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리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읍소를 하며 마치 자신들의 밥그릇을 뺏긴 것처럼 구는지 알 수가 없다. 본인들의 논리대로라면 정말이지 그림에 대해서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림을 알지 못해서 평가할 수 없는 데 그림에 관심을 갖고 구매를 하거나 관람을 하기 위해 미술관을 방문할 이유가 있을까?
전공을 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는 일에 열심을 갖는 사람을 예술로 인정하지 못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반 대중들이 그림을 관람하기 위해 찾는 일은 비아냥거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본인들을 굶게 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들의 예술을 이해해 주기 위해 대중들이 기본기까지 터득해 가며 다가가야 하는 숙제를 가지란 말인가? 예술은 그 자체로 공감하고 느낄 수 없는 것이란 말인가? 도대체 그 좁은 우물에서 무엇을 하기 원하는 것인가?
도리어 인지도가 있다는 연예인들이 자신들을 홍보하는 것 때문에 지경이 넓어진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 그렇게 그림이라는 것에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고 더 나아가 다른 그림을 보게 만드는 것까지 닿는 것은 왜 생각지 못할까?
비단 그림뿐 아니라, 예술 중 하나인 '춤'도 그 몸살을 앓은 적이 있다.
일전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프로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춤에 크게 관심이 없던 대중들도 그들의 열정과 춤에 대한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인기에 힘입어 그곳에 나왔던 리더들은 많은 사랑을 받는 예능 프로인 '아는 형님'에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하지만 위에 사진과 같이 춤을 설명하는 중 팝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팝핑'이냐 '팝핀'이냐의 문제로 저격하는 글들이 생기면서 일파만파 되어 대중들에게 많은 질타를 받은 일이 있었다.
물론 춤을 진정성 있게 배우는 입장에서 그 역사와 명칭 등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어가 있기 전에 춤은 존재했고, 심지어 그 단어가 없어도 우리는 춤을 출 수 있다. 단어 하나 차이로 의미가 바뀌는 일도 아니고 전문성을 의심받을 이유도 없다. 이미 자신의 인생의 내력으로 증명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 그 단어가 왜 먼저 되어야 하는가?
본질과 비본질의 구분
예술이 제 아무리 대단해도 인간의 인생에 비해 항상 후순위다. 제 아무리 비천한 인생을 살다 간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위대한 예술에 밀릴 수 없다. 인간이 없이는 예술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예술을 신의 영역으로 들먹인다면 그건 인정하겠다. 신이 없다면 인간이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 또한 예술은 인간을 앞설 수 없다. 이것을 이해하는 건 우리가 본질과 비본질을 이해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예술은 모양이다. 무언가를 담은 그릇에 불과하다. 그릇이 중요치 않거나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무엇을 담을지 우리가 정한다. 그림, 춤, 노래, 글. 여러 예술들의 모양이 존재한다. 그 모양은 다르나 본질은 같다.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한 표현이고 흔적이다. 그러니 꼭 그것들만 예술이겠는가? 그냥 살다 간 인생들은 다 예술이다. 남거나 지워지거나 흩어지거나 잊히거나 보존되거나 남겨지거나 기록되거나 모양은 제 각각 된다 할지라도 예술은 그저 인생을 담는다.
그러니 우리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진정성 있다면 서로를 대하는 태도 또한 그래야 할 것이다.
예술이냐의 문제와 소비되느냐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작가가 죽고 세대를 거치고서야 인정받는 예술들이 있다. 지금 당장 휘발성 있게 평가되고 소비되는 것들도 있지만 세대를 거쳐 연구하고 정의하는 이들로 인해 더 사랑받고 가치를 인정받는 예술들이 있다. 작가, 저자들이 생존해 있을 때 그 가치를 인정받아 혜택을 받고 사는 일들은 그나마 현대에는 더 빠르고 쉬워졌다. 우리가 아는 고전들은 대개 살아생전에는 핍박받거나 그리고 쓸 수 없는 환경에서 이루어졌다는 것도 익히 들었을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거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자신이 사랑해서 하는 예술을 지금 당장 몰라준다고해서 소비되는 예술가들을 핍박하는 반향으로 갈 것도 아니며 그들 때문에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알아야 할 예술이라면 시대가 지나서 깨닫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해도 당신의 인생은 이미 예술이지 않은가?
나는 개인적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동경한다. 내가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많이 지켜볼 수 있어서 많이 행복하다. 우리나라는 어찌된 일인지 예술가들이 참 많다. 나는 그들의 벌이로 그들의 실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아마 대중들도 그럴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알리는 일은 예술과 별개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 또한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