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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헌 Jun 02. 2024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면 저녁요가

이마에서 땀방울이 톡 떨어졌다. 들숨과 날숨으로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자세에 집중했다.  파르쉬보따나아사나(Parsvottanasana, 파르쉬바=측면, 우따나= 강하게 늘인). 두  다리를 쭉 펴고 골반은 정면을 바라보게 한다. 숨을 내쉬면서 상체를 앞쪽으로 숙이면서 오른쪽 다리 위로 포갠다. 자세를 유지한 채 깊은 호흡을 한다. 

마음이 몸과 하나되어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금이 당겼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자세를 유지했다. 이런 순간이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 즐거움을 붙잡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았다.  선생님에 따라 수업의 몰입도는 차이가 있다. 그것이 수련의 양과 비례한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선생님은 자세에서 흐트러지기 쉬운 부분을 정확히 집어내셔서 그 부분에 다시 주의를 보내라고 말씀하셨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마치 선승의 어깨위에 내려앉는 죽비처럼 목소리는 단호하게 들렸다.


운동도 마찬가지지만 요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완전히 집중하는 순간들을 마주하는 기쁨 때문이다. 무거운 몸이 어느 순간 나비가 날개를 접듯 가벼워진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몸의 컨디션이 좋다고 해서 항상 그런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 공간, 감정, 참여하는 자와 이끄는 자의 절묘한 조화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요가와의 인연은 2019년 호치민에서 베트남어를 배운 지 일년이 지났을 때였다. 늘 호치민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의 도서관 구석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더운 날씨를 피해 갈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중 하나였다. 어느 날 베트남 선생님께 공부하는 사이 운동을 하고 싶은데 주위에 요가할 곳이 있느냐고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바로 옆 화르 체육관에 요가 수업이 있다면서 동료 몇 명이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점심시간에 가보았다. 12시 정오 클래스는 이미 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복도에서 강사의 구령소리가 들렸다. 창문으로 빼꼼히 수업을 바라보았다.  빈자리가 없이 뺴곡했고 수업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져 아침 6시 반 수업에 등록했다. 


다음날  수업시간, 내 옆자리의 중년 남성 한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중장년이 더 많았다. 서울과 비교 했을때 수강생의 평균 연령이 굉장히 높은것이 놀라웠다. 수련기간이 최소 5년부터 10년이 넘는 지속적인 열정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나처럼 완전 입문자가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아침  2시간을 2년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특히 긴 곱쓸머리가 매력적인 Long과 미스 베트남같은 Loan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친절하게 이끌어주셨다. 두 분 다 오십이 넘으셨다. Long 선생님은 아파트 22층까지 매일 걸어오르고, 일요일 아침이면 홀로 되신 노모를 커피숍에 모시고 가 엄마의 얘기를 들어드린다고 하셨다. Loan 선생님은 무용을 오래 하셨는데 음악을 선곡하고 여러 아사나를 묶어 즐겁게 수련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요가뿐만 아니라 수련으로 어떻게 일상이 깊어질 수 있는지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셨다. 


베트남에서 요가는 연중 더운 날씨 때문에 간편한 복장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턱이 낮은 운동이다. 우기가 시작된 어느 날 아침 수업 중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졌다. 쏴아- 쏟아붓는 빗소리가 아침부터 데워진 날씨를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그때도 파르쉬보따나아사나를 취한 채 상체를 숙이고 눈을 감고 호흡을 세고 있었다. 들숨으로 들어오는 아침의 시원한 공기와 퍼붓는 빗소리, 게다가 수업의 정점으로 치달아 최대로 부드러워진 몸이 하나가 되어 마치 다른 곳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빗소리, 가벼워진 몸, 그 순간에 집중하고 있는 마음. 기억나는 것은 그때가 내 인생의 행복한 순간의 한 장면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는 거였다. 수업이 끝났을 때 비는 그쳤고 햇빛이 쏟아졌다. 창문까지 드리워진 나뭇잎들은 햇빛으로 반짝 반짝 눈이 부셨고 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리고 있었다.


서울로 복귀해서는 직장근처 요가원에서 일주일에 세번 점심요가를 했다. 일하는 시간을 구분한다면 오전을 정화시킬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하여 8시에 일을 시작했고 4시간이 지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는 좋은 향과 나쁜 향이 함께 들러붙어 있었다. 거친 말과 격려의 말을 구분하고 마음이 담긴 말과 거짓과 겉치레의 말을 구분했다. 공기정화기는 부서마다 힘차게 돌아갔지만, 동료에 대한 배려나 매너, 공감은 바쁘다는 이유로 생략되어 스스로 걸러야 했다. 전화 목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되어 도서관처럼 조용한 사무실에서 옆 동료의 기분은 메신져의 이모티콘으로 밖에 읽을 수 없었다. 내 일이 아니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점점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소통이 안되는 상사를 보며 동료는 AI상사가 더 나을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하루의 중간 요가가 내 마음의 필터가 되어주었다. 오전에 들어온 것들이 맑게 정화되어 나갔다. 다시 한 손에 샌드위치를 들고 바로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요즘 습관중의 하나는 마음이 어수선할 때 일단 몸부터 움직이는 것이다. 집근처 헬쓰장에서 걷거나 뛰기도 하고 저녁에는 수업시간에 맞춰 요가원에 간다. 동네 요가원에 나보다 나이먹은 사람이 적다는 것도 놀랍지만 늦은 저녁 9시 수업에도 몸으로 하루를 정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명상음악의 멜로디는 더 깊게 와 닿는다. 다른 공간에서 이 음악을 들었더라면 같은 기분이 들리 없다. 매트외에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텅 빈 공간이 주는 위로도 있다. 매트에 앉아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나로 향하는 인트로를 사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매트안에서 수련이 전부가 아니예요. 일상의 매 순간이 매트위라고 생각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새겼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싱잉볼이 울렸다. 종의 큰 파동이 가슴에까지 닿아 가볍게 부딪혔다. 다시 두번째 진동이 몸을 투과하여 지나갔다. 종소리가 탄생하고 파동과 같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모습을 천천히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 나를 통과한 말, 잡념, 생각의 잔영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내일을 위한 약속을 했다. 요가가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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