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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헌 Jun 24. 2024

내게로 오는 사람, 사물들에게 친절할 것이다.

조금 더 기쁘게 사는 습관

이사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환경의 변화는 마음을 변화시킨다. 이삿짐을 정리하며 남은 흔적들을 훑으며 지난 시간을 회상하고 다시 계획하도록 도와준다. 그것들은 관계, 계획, 목표, 가치가 될 수 도 있다. 또 습관도 포함된다.


이전에 살던 곳은 도로 하나면 건너면 산이 있었다. 그래서 매주 산에 올랐다. 직장에서 일로 인한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주말 아침이면 산행을 했다. 2시간 동안 걸으면서 한 주간 쌓인 마음의 티끌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버렸다. 일주일 동안의 긴장, 관계, 해야할 일에 대한 불안들이 들어오고, 정리되어 나갔다. 등산로 입구에서 붙잡고 간 몇 개의 질문은 하산 길에 명료한 대답으로 찾아왔고 몸은 그 무게를 버리고 더 가벼워져 있었다. 


이사 온 의식으로, 다시 만난 '동네 보물찾기'부터 시작했다. 동네를 떠난 건 7년전 이었다. 그래서 저녁마다 골목길 산책을 했다. 음식점, 공원, 헬쓰장, 커피숍, 마트와 전통시장, 빵집, 무인가게, 수제맥주집까지 눈에 담았다. 동네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경의선 숲길이 지난 10년동안 가장 크게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원 하나의 힘을 느꼈다. 경의선 철도지하화로 10년전 공원조성부터 목격한 터라 나무들이 울창하게 가지를 뻗은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마당에 자란 나무들을 오랜 간만에 만난 기분이었다.     


보물을 찾았다면 매일 즐기며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방법은 아침은 달리기, 저녁은 산책이었다. 사실 나는 아침형이라 이른 아침 동이 터오르는 것을 책상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는 것을 좋아한다. 창문을 열고 도로소음을 들으며, 책을 보거나 일기를 쓰고 시간을 나눠 베란다 요가를 하기도 했다. 아침에 나가서 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저녁 산책 몇 번만에 마음을 바꿨다. 붐비지 않는 시간에 사랑하는 공간을 제대로 만나고 싶었다.       

이사로 생활환경이 바뀌니 자동적으로 몸과 마음이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는 무드가 저절로 찾아왔다. 그렇다면 차려진 밥상위에 숟가락만 얹기. 좋은 습관 만들기 워밍업으로 저녁에 운동복부터 챙겼다. 몸과 머리를 놀라지 않으려면 부드럽게 접근해야 했다. 운동복, 신발, 헤드폰과 모자를 한 세트로 준비해두었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자마자 예정된 시나리오를 가동했다.  


집에서 공원 입구까지는 걸었다. 그리고 곧바로 적절한 페이스로 뛰기 시작했다. 보통 뛰면서 음악을 듣지만 달리기의 지루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작은 목표를 정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으로 들어오는 것,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들 중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양쪽 길가의 풍경, 산책하는 사람들, 꽃과 나무, 땅과 하늘 그리고 몸의 감각, 호흡,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생각 등......


이것은 마치 요가에서 동작을 하면서 시선을 고정시키는 응시점을 뜻하는 '드리쉬티'와 비슷했다. 뛰면서 무엇을 볼 것인가도 매번 달라질 수 있다. 오늘은 산책하는 사람들로 정했다. 사람들의 얼굴표정, 운동화, 옷 색깔, 걷는 자세가 눈에 들어왔다. 산책시키는 주인과 반려견의 상호작용도 담았다. 드리쉬티는 매일 달라질 것이다. 중간쯤 뛰어 템포러리 가든에 도착했을 때 늙은 아버지가 더 늙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부모를 돌보는 그 애뜻함이 내게로 왔다. 내가 손을 잡으면 손가락들을 꽉 쥐어주는 엄마의 손아귀의 힘이 느껴졌다. 나이 든 부자의 모습은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시간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 다. 이것이 마치 몇년 후 일 같지만, 그 입장이 되어보면 바로 "내일"이 되어버린다고.


점점 숨이 가빠졌다. 빨라진 심장박동의 신호를 받아주었다. 속도를 줄이고 걸었다. 숨을 고르고 다시 달렸다. 연남교 아래 펜스에 하이파이브처럼 터치를 했다. 출근하지 않는 자의 기쁨이 스쳐 지나 갔다. 바로 오늘을 위한 수많은 행위의 '자기결정'이다.  공백의 하루를 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선택해서 하루를 채운다. 그리고 드리쉬티를 선택한다. 오늘 하루에 대한 나의 드리쉬티는 '머무는 시선마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 ' 좋은 것은 더 좋게 경험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수건으로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달리기는 물론 힘들다. 하지만 긴 구간을 작은 구간으로 쪼개고, 단거리의 응시점을 정하고, 조깅으로 튼튼해진 몸과 미리 만나는 즐거움을 확대한다. 땀에 젖은 운동복을 세탁기에 넣었다. 나를 위한 햐루의 첫번째 선택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이사 덕분에 좋은 습관하나를 보태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동네가 좋아지고, 집이 좋아지고, 방이 좋아지고, 창이 좋아지고, 책상이 좋아진다. 책상 서랍안의 소품들이 더 좋아지기 시작한다. 물건들과 상호작용이 깊어지면 감정도 깊어진다. 그러면 기분좋은 감정이 마음을 채운다. 부드러운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공간은 친밀해지고 그 안에서의 관계는 따뜻해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공간에서 어떤 어휘를 가장 많이 말할까? 어떤 말들로 이 공간을 채울까? 나를 위한 루틴과 리추얼로 모든것을 이롭게 할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포함된 나는 더 환경친화적이 되고, 내게로 오는 사람, 사물들에게 친절할 것이다. 어제 보다 더. 이사로 기분좋은 습관 하나를 얻었다.


"잘 산다는 것은 내게 오는 사람, 

믈건 하나 하나조차도

마음을 담아 만나고, 잘 대접하고, 보내고, 이별하는 것을 배우면서

사랑의 세기를 키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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