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통해 배우는 과정의 소중함
아침 다섯 시 반. 오늘은 하루 종일 비 예보가 있었다. 열린 창문 밖으로 도로소음과 함께 매미소리가 들려왔다. 어제도 비가 많이 내려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예상밖이었다. 짝짓기를 위한 수컷 매미의 처절한 울음은 매일의 노동처럼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매미의 시간처럼 우리의 시간도 연기처럼 소멸되어 가고 있다. 단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 수 있다는 것 뿐이다. 여름 끝자락즈음이 되서야 나무 밑에 죽어있는 매미들을 마주하고 그 사이 강렬한 태양빛이 사그라들고 가을이 오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우리의 여름도 매미의 시간처럼 가버렸다는 것을 그제야 안다.
일을 그만 두고 나니 일할 때 보다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달라지지 않았고 잠드는 시간도 비슷했다. 단지 일의 내용만 바뀌었을 뿐이다. 매미에서 배짱이로. 어제는 7월 개강한 여성발전센터의 한식요리 수업이 있었다. 앞으로 오십년을 더 산다고 한다면 건강을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고, 기술을 익혀 요리가 좀 더 즐겁기를 바라는 단순한 바람으로 " 한식조리기능사반"에 등록했다. 첫 시간 선생님은 시험 치를 사람의 숫자를 헤아렸다.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곧 바로 마치 실기 시험장에 와 있는 것처럼 개별 음식의 중요한 조리 포인트와 유의사항을 강조했다. 오늘의 요리는 생선양념구이, 육원전(肉고기육 圓 둥글원 煎 달일전), 풋고추전이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조기를 손에 쥐었다. " 빨간 아가미를 벌려 자르고 배 쪽으로 젓가락을 넣어 부드럽게 휘저어 내장을 빼내세요." 강사님이 생선 다듬는 법을 시연으로 보여주었다. 비늘을 벗겨내고 지느러미, 꼬리를 정리했다. 생선의 배를 가르지 않고 내장을 빼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배를 가르지 않으니 접시에 내놓을 때 모양새가 예쁠 수 밖에 없었다.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힘 조절에 실패하는 순간 배를 뚫고 젓가락이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했다. 손의 감촉을 느끼며 재료를 대하는 섬세함부터 배웠다.
다섯 개의 조로 나뉘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에 와 있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마저 돌았다. 제한된 시간동안 세 개의 음식을 만들고 무우와 오이는 채썰고(0.2*0.2*5cm), 당근은 골패썰기(0.2*1.5*5cm), 흰자와 노른자는 마름모(한면의 길이 1.5cm)썰기와 채썰기로 담아내야 했다. 풋고추전도 고추를 반으로 가르고 씨를 발라낸 후 끓는 물에 한번 데쳐주었다. 고추의 초록색을 좋게 하기 위해 노른자에 흰자를 조금만 넣어 계란물을 입혔다. 너무 두껍지 않게 소를 넣고 프라이 팬에 넣어 지져냈다.
시간 제한으로 순발력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재료의 성격을 철저히 아는 것이 기본이었다. 갈은 쇠고기에 두부를 치대는 일을 방만하는 순간 동그란 모양이 갈라져버린다. 매 순간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보고, 냄새 맡고, 만지면서 감각에 몰입해야 했다. 썰고 저어주는 반복적이고 리드미컬한 행동에서도 스스로 법칙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오늘도 세명의 조원 중 가장 먼저 음식을 완성했다. '다음엔 정확함을 목표로 하고, 속도를 줄여 꼴찌로 만들어야지." 다짐했다. 항상 너무 빠른 게 문제였다. 빠르면 당연히 정확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의 즐거움을 음미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주었다. 반죽을 치대며 손바닥을 만나고, 국물이 지글 지끌 끓는 소리를 듣고, 향이 퍼지는 일련의 감각적 경험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일할 때와 같이 결과만을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속도에서 꼴찌하기"를 요리 수업의 일차 목표로 정했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과정을 묻는 대신 결과물을 보여주면 되었다. 하지만 요리는 과정 그 자체였다. 재료를 씻으며 촉감으로 만나고 성질을 이해하여 자르고, 간을 맞추고, 불 조절로 얼만큼 익혀야 하는지 매 순간 그 안에 머물러야 했다. 과정에 집중하며 각 단계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해 주는 작업과 같았다. 아주 "정직한 과정"이었다.
수업의 압권은 조리가 끝나고 15명 각자가 만든 작품을 한꺼번에 긴 조리대위에 올려놓고 품평회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열 다섯 개의 열이 만들어지고 순서대로 세 접시의 요리가 가지런히 놓여졌다. 같은 재료를 주고 채썰기를 했는데도 색깔, 생김새, 담아낸 방법이 제각각 달랐다. 선생님의 평가가 있기도 전에 우리 눈이 눈동자를 굴리며 가장 맛깔스럽고 보기에도 예쁜, 미각과 시각에 동시에 호소하는 음식을 찾아냈다 음식은 만든 이의 취향, 선호도, 성격을 반영하고 있었다.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니 자신을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요리를 통해 세상에 나의 본질을 드러내었다. 이것은 마치 여정을 제대로 즐기며 아름다움을 포획하기 위해 가장 애쓴 예술가를 알아채 주는 의식처럼 다가왔다.
같은 조의 스물 넷 재희씨는 지난번에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요리가 처음이라 잘 못한다고 하면서도 재료를 오랫동안 세심하게 만지고 온전히 조리하는데 집중하는 초롱초롱한 눈빛이 첫 시간부터 내 주의를 사로잡았다. 아야! 채희씨가 무우채를 썰면서 손을 베고 말았다. 손가락에 요리 근육이 하나 더 생기고 있는 중이라는 증거같았다.
오랫동안 과정의 즐거움을 잊고 일을 했다. 이메일을 확인하자 마자 피드백을 날리고, 전화를 받으면서 문서를 작성하고, 서둘러 회의에 참석하고, 데드라인에 쫓겨 호흡은 늘 빨랐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동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의 즐거움은 과정보다 결과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한번에 하나씩 하는 것이 어려웠다. 언제나 빠름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고 믿었다.
요리는 오늘 한 접시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선별하고, 재료의 성격을 파악하고 질감을 느끼고, 오감으로 느끼고,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여정 그 자체였다. 어떤 기술을 쓸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고, 매 순간 완전히 존재하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한 접시의 요리가 탄생했다.
두번째 요리수업을 마치고 다음 시간부터는 자원해서 일찍 도착해서 재료 준비를 담당하기로 했다. '꼴찌로 음식만들기' 도전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한 접시의 음식이 이렇게 다가올 줄 몰랐다. 끊임없는 활동의 압박에서 벗어나 속도 대신 멈춤을 선택한 배짱이의 관점 덕분일른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매미의 시간 뒤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