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왜 쓰는 가?
일 년이 되었다. 23년 7월말로 직장을 그만두고 일을 쉬었다. 1년의 시간이 지난 다음은 어떻게 달라져있을지 많이 궁금했었다. 한번도 일을 쉬고 놀아본 적이 없고 직장을 나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 삶을 잘 견딜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여름 퇴사여서 조금은 다행이었다. 강렬한 태양빛이 에너지가 되어 스며들었다. 아마 겨울이었더라면 매서운 바람에 어깨가 움츠려들고 예상치 않은 우울감도 찾아왔을 것이다.
한달을 휴가로 보내고 9월부터 바로 심학원의 창작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과정은 인문, 심리, 자기계발 콘텐츠로 자신의 고유관심사를 찾고 이를 기반으로 책울 발간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8월 마지막주 토요일 문요한 학장님과 12명의 학우들이 OT에서 첫 대면을 했다. 우리는 24년 7월까지 11개월동안 지정도서를 읽고, 서평을 쓰고, 격주로 온라인 합평회와 한 달에 한번 오프라인에서 만나 매 달의 질문에 대해 리포트를 쓰고 발표하고 토론했다.최종 목표는 자신의 관심주제에 대한 '창의적 전문가'로 다시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이었다.
나는 50 퇴직자로서 일하지 않는 삶, 1년간의 여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수 십년을 직장에만 있었던 직장인의 삶에서 일하지 않는 자의 삶으로 바뀌어 겪는 감정, 습관과 루틴, 관계와 자기 탐색 등 퇴직입문자로서 경계에 들어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왜냐면 누구나 한번쯤 그 "어느 날"이 찾아가기 때문이었다.
글쓰기 과정에서 여러 번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라는 질문과 마주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글쓰기는 이른 아침 일어나 양초를 켜고 향을 피우고 좌정하는 명상과 같다. 오롯이 나 혼자만을 위한 시간으로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공간이다. 플롯도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내려갔다. 매일 가장 많이 생각했던 단어들과 생각이 순차적으로 세상밖으로 튀어나오는 운동과 같다. 사건이든, 사람이든, 상황이든 가슴에 울림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 사라지기전에 뇌리에, 몸의 세포에 각인시키는 작업이다. 마음에 사진으로 찍어 그 장면과 감정을 영구보존하는 것이다. 마치 붙들고 싶은 생각을 미라로 만드는 작업과도 닮아 있다. 중요한 것을 각인시키는 행위이고 통증을 주는 것들의 근원으로 내려가 보는 내밀한 나와의 소통이다. 아픔과 슬픔의 뿌리를 잡고 내려가 감정의 진앙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행방을 찾고 어디에 씨앗을 뿌리고 자라나고 있는지, 열매를 맺고 다시 사그러드는지 추적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중3 겨울방학, 시골을 떠나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일기를 썼다. 노트는 열다섯 소녀의 외로움, 새로운 환경의 적응,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고 인정받고 싶었고, 앞으로 다가오는 삶에 대한 불안함을 빼곡하게 담아주었다. 이후 직장생활의 시작과 사랑과 결혼, 해외근무, 복직과 퇴사를 결심했던 모든 과정을 지켜봐주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가장 정직한 순간이며 나를 찾는 행위이다. 과거가 현재가 순환하고 , 미래가 현재를 데려가고 다시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일 년이 지났고 일 년동안의 흔적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흘러가는 강물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 치고, 굽이치는 몇 번의 여울목을 만나면 방향과 에너지를 잃고 주저앉아 오래 울었을른지 모른다. 아무 계획없이 직장을 나와 무엇을 해야할 지 답답한 마음을 이 삼개월 공백후 바로 재취업으로 달려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그 마음에 고삐를 만들어주었다. 바로 달려나가는 대신 좌정을 하고 내 안의 욕망을 길들이고, 무엇이 날 뛰고 있는지 제대로 응시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은 명료해진다. 짙은 안개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위협을 제대로 응시하고 방향을 잡고 첫 발을 내딛도록 용기를 준다. 내가 만든 두려움인지, 주위에서 던진 두려움인지 그 실체를 잘 구별하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다음 스텝에 힘을 실어준다. 일상은 단단해지고, 관계는 부드러워지고 삶은 군더더기가 없어지도록 한다.
그렇게 일년 후의 오늘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마치 나의 아바타처럼 나를 꼭 닮은 모습으로 서 있다. 치매약을 드시고 계신 엄마는 내가 이사를 나왔어도 잘 지내고 계신다. 남편은 건강을 회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울과 불안의 조각들이 남아 있다. 17년이 지났지만 나는 다시 신혼초처럼 '사랑의 기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다시 학생이 되었고 다음달 부터 새 문턱을 넘어 경계안으로 들어간다. 매일 아침 명상과 요가, 경의선 숲길에서 달리기를 하면서 나를 만나고, 책을 읽는다. 무엇보다 글을 왜 써야하는지 1년이 지난 지금 조금 더 분명해졌다는 것이 반가울 뿐이다. 오늘도 달리고 오늘도 나는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