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편-살았던 도시 호치민)
호치민의 아침 바람에는 퍼(phở) 냄새가 실려온다.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는 아침 5시30분. 아파트 앞 사거리 교차로에는 이미 오토바이의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다. 1차선에는 자가용들과 버스들이 방향등을 켜고 기다리고 있다. 반짝이는 불꽃이 되어 오토바이들이 완만한 커브를 만들며 일렬로 움직인다. 사방으로 불규칙하게 흩어지기도 한다. 달라붙고 멈춘다. 움직이는 별빛같기도 하고 분주한 일개미 군단처럼 움직임이 일사불란하다. 금방이라도 부서질것 같은 오래된 3층 아파트 단지 마당에는 새벽 시장이 열린다. 아침5시면 과일이나 야채들을 실어 나르는 상인들의 움직임이 어둠을 깨운다. 수십개 색색의 파라솔이 작은 사각형의 마당에 하나둘씩 차례로 열리면서 공간을 메운다. 시장 앞 2차로에도 차량통행을 위해 중앙선을 가르는 철제 가로막을 세워 세웠지만 길 양쪽으로 행상이 하나 둘씩 들어선다.
베트남의 도시들은 태양의 움직임을 앞선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6시 50분까지 학교에 간다. 강렬한 햇빛이 들이닥치기 전에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보드라운 아침 기운을 가슴에 품고 그 기운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담는다. 한국의 초가을에 느껴지는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시원하고.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바람은 아침의 선물이다. 그래서 어둠이 서서히 사라지는 새벽과 동이 터오르기전의 아침은 부드러움 그 자체이다. 사이공 강변에는 이미 여러 척의 배들이 진한 황금색의 불을 밝히고 있다. 점점이 불을 켠 주변 건물들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강의 수면아래로 드리워져 있다.
이제 서서히 붉은 노을이 회색, 빨강, 노랑으로 층을 이루며 서로 섞여지고 경계가 사라진다 . 물감 팔레트에 담아놓은 여러개의 색깔보다 더 조화를 이룬 붉은 덩어리가 가로로 길게 퍼져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장 주변에는 오십년은 족히 넘었을 듯한 연립주택들과 세로로 길쭉한 직사각형의 단독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모여있는 주택들은 일자형, 디귿자형, 병렬형 구조다. 아직 밝음이 문턱을 넘지 않는 시간, 개가 짖고 닭이 운다. 자전거 뒷자석에 갓 구운 반미(바게뜨)를 가득 싫고 "여기 뜨거운 반미 있어요." 라며 스피커 볼륨을 높인 아주머니, 아저씨 행상이 동네 여기 저기를 누빈다.
시간이 가면서 오토바이 소리가 더 맹렬하게 울린다. 웅~하는 교통소음이 29층 아파트까지 올라온다. 닭우는 소리, 개짖는 소리, 오토바이의 질주하는 소리, 자동차 경적, 앰블런스 소리, 뱃고동 소리에 행상의 스피커 울림까지 한데 섞여 마치 멀리있는 폭포의 웅장한 중저음 배경음처럼 귓가에 들려온다.
시장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는 야채 청년은 오늘도 큰 플라스틱 바구니에 여러 종류의 야채들을 풀어 놓는다. 망고, 파파야, 생강, 비트, 손가락만한 작은 오이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사십여가지나 될 듯한 여러 종류의 야채들을 자기 구역에 펼쳐놓는다. 사각형의 오른쪽 모서리의 자리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정리를 시작한다. 과일이나 야채중에서도 손님들의 눈에 띄기 쉬운 것들을 모아 그 안에서 질서를 부여한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이 시장에서 가장 부지런하면서도 정직하다. 사이공 강변의 새 아파트에서 2019년 이쪽으로 이사왔을때 좋은 점중의 하나는 이 시장이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청년을 만났다. 그의 선한 눈빛과 정직함에 반해 아침에 일어나는 즉시 베란다에서 출근을 지켜보았다. 그의 경건한 노동을 한참을 바라다 보는 것이 내 일과의 시작이었다. 엄마와 같이 장사를 하다가 어느날부터는 형도 같이 나왔다. 내가 갈때마다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단 한번도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다. 대부분 아주 간단한 베트남어로 얼마예요? 비닐 봉지 하나 주세요. 라고 빨리 말해도 억양이나 발음탓으로 외국인이라는 것을 들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상인들의 경우 물건 가격을 1.5배, 2배로 올려 부른다. 속상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때때로 마스크를 하고 가장 짧은 문장으로 더 빨리 말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도 여지없이 익숙한 장례음악이 들려온다. 불과 2주만에 몇번의 장례를 목격했다. 집에서 장례를 치르기 때문에 죽은자를 보내는 의식안에서 산자들의 슬픔은 얼마동안 일지라도 인식된다. 죽음이 일상에서 격리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죽음의 품위를 떠올리는 이방인에게 위로가 된다. 지난주에는 너무 아름다운 하얀 국화 화환이 길을 따라 셀수없이 늘어져 있었다. 플라스틱 꽃이 아니라 생화로 하나 하나 아름답게 장식되어 하마터면 결혼식으로 착각할뻔 했다.
천천히 붉은 태양이 지평선같은 도시의 하늘위로 떠오른다. 산도 작은 언덕 하나 없는 호치민은 끝도 없이 펼쳐진 평지위에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지평선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태양은 마치 강림하는 아침의 신처럼 등장한다. 어제의 하루가 어땠는지 그 움직임과 고단함을 알고 있고 이제 새로 "오늘"을 빛으로 드리워주겠다고 말하는 처럼 살포시 솟아오른다. 닭들은 그런 하루가 다가옴을 알리기 위해 목청을 한껏 올리는지도 모르겠다.
아파트를 걸어나오면 작은 두꺼비 커피숍(cà phê cóc)마다 이미 아침 손님들이 많다. 달달한 연유 커피인 카페 쓰어 다(cà phê sữa đá)나 진한 아이스 커피(cà phê đen đá)를 마시며 앉아 있다. 성인 무릎에도 못미치는 작고 낮은 탁자와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마치 '두꺼비'와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가게 앞 인도에 테이블과 의자를 모두 내어 놓는다. 브라질 다음의 커피 수출 2위인 베트남은 일상에서 커피를 떼놓고 이야기 할 수없을 정도로 커피를 즐긴다. 특징이라면 우리보다 다섯배는 진하게 커피를 마신다.
커피숍은 아침부터 뜨겁게 달구어지는 날씨를 피신하는 가장 최적의 장소이고 커피뿐만 아니라 간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고 친구 및 동료와 생활, 일, 축구, 정치 뉴스에 대해 수다를 떨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커피값은 테이크 아웃은 천원이 안되고 가게안에서는 2천원에서 2천오백원 정도에 즐길 수 있다. 집주변 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핸드폰 앱으로 주문을 확인하는 그랩(grab) 기사들과 국수와 음료를 파는 노점, 복권 행상이 눈에 차례로 들어온다. 소고기 쌀국수 가격이 한 그릇에 2천원정도이니 많은 사람들이 외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주거지역 어디나 아침 시장이 열려 있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즐긴다. 코로나 이후 투자감소, 민간소비와 건설투자 등 내수회복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연말이지만 관광도 주춤하고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동생인 란이 아침을 같이 하자고 해서 시내에 있는 식당에서 만났다. 란은 주말 아침에는 거의 단짝 친구와 만나 여유로운 아침을 즐긴다고 했다. 닭고기 쌀국수를 주문했다. 야채를 듬뿍 넣고 맛보니 오래 끊인 진한 육수가 서울에서 먹는 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침 바람에는 퍼(쌀국수)의 진한 국물 냄새가 같이 실려온다. 식사후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이른 아침에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오토바이로 달리는 순간이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이전부터 오토바이를 배우고 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면허를 딴다. 위험하지만 오토바이를 능숙하게 운전하는 여기 여성들을 볼때마다 삶을 지켜나가는 단단함의 무기처럼 보여진다. 카페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연중 여름인 호치민은 주말 아침이면 가족단위로 카페와 나와 외식을 즐긴다. 테이블에 할아버지 할머니, 손녀손자와 부부가 함께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파트 옆 자주 가는 커피숍에서도 주말 아침에는 부부가 어린 아이들을 동반하여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족간의 따뜻한 유대가 강하다. 물론 보수성과 그 구속으로 인해 세대간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9시 반이 넘어가니 햇볕이 점점 강렬해진다. 연중 밝은 빛에 노출돼서 일까 이곳 사람들은 쉽게 우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여름 한 계절 옷차림만큼이나 삶은 간소하다. 옷장은 비어있고 치장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일과 관계로 머리가 아파지면 그대로 내달리는 대신 멈추고 속도를 줄인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덜 본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추억하든 망각하든 그들이 원하는대로 둘뿐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어쩌면 간소한 삶이 사람들의 감정까지도 간추리게 만드는 습관을 주었는지 모른다. 이들이 해방시킨 것은 국가뿐만이 아니라 나를 억압하고 경계를 긋는 것들로 부터 매일 자신을 해방시킨 오늘의 결심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