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나라,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를 여행지로 삼은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어차피 벨기에랑 네덜란드도 가는 참에 룩셈부르크도 가보자라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벨기에나 네덜란드에 비해서 룩셈부르크 하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저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꽤나 유명했던 밴드의 대표곡 중의 하나가 룩셈부르크였고 친했던 동기 하나가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끝도 없이 불러대던 통에 그 음악의 멜로디만 귀에 익숙할 뿐이었다. 파리에서 테제베를 타고 룩셈부르크에 도착했을 때는 밤늦은 시간이라 그때는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 별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었다.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관광에 나섰다. 북적이던 파리와는 다르게 도시 전체가 차분하고 맑은 느낌이었다. 우선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그랜드 듀칼 궁전에 가보기로 했다.
그랜드 듀칼 궁전을 찾아 시내 이곳 저곳을 헤맸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만 한 화려한 궁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몇 차례의 검색 결과 우리가 근처를 스쳐간 건물 하나가 바로 우리가 찾던 그 궁전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 자체로는 작다고 볼 수 없지만 보통 궁전이라고 하면 생각할 만 한 규모는 아니었다. 특이한 점은 궁전의 규모만이 아니었다.
궁전의 이름 자체도 로얄 팰러스(Royal Palace)나 임페리얼 팰러스(Imperial Palace)가 아닌 그랜드 듀칼 팰러스(Grand Ducal Palace)다. 다시 말해, 우리 말로 하자면 왕궁이나 황제궁이 아니라 대공궁인 것이다. 이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지 이해하려면 우선 중세의 봉건제도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보통 봉건제라고 함은 황제나 왕에게서 그 휘하의 귀족들이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등의 작위와 그에 상응하는 봉토를 받고 황제나 왕에게 충성과 병력을 제공하는 형태를 이루어진다. 여기서 공작이나 후작은 꽤나 대귀족으로 여겨지고 백작만 해도 위세를 무시할 수 없는 영토와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아래로 자작과 남작들이 있는 그런 형태였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룩셈부르크의 최고 지배자의 명칭이 대공, 즉, 대공작이라는 것이다. 보통 한나라의 대표자는 국왕이나 황제 등의 명칭을 쓰기 마련이지만 룩셈부르크는 그들의 지배자의 명칭을 대공으로 부르고 있다. 스스로 왕국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공국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공작이 힘 있는 대귀족이라고는 하나 왕이나 황제들에게는 충성과 복종을 맹세해야 하는 위치인 것이다. 굳이 주변 강국들에게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지 않더라도 왕의 지위를 주장하지 않은 것은 주변의 강대국들을 의식한 행동이라고 보인다. 룩셈부르크의 영토 자체가 프랑스와 독일 , 네덜란드 등 주변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형태이다 보니 섣불리 칭왕을 하여 주변국들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오랜 시간 동안 중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중국을 의식해 황제를 칭하지 못하고 왕의 칭호를 사용하고 형식적으로 나마 중국 황제에게 왕위를 책봉받는 형태를 취해왔었던 역사가 있다. 때때로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된 연호를 쓰는 등의 자주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지만 그 시절은 중국 대륙이 혼란스럽거나 우리나라의 국력이 막강할 시기에 한정될 뿐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이처럼 룩셈부르크도 주변 강국들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대공의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어쩌면 오랜 기간 전란에 휩싸인 유럽 대륙에서 룩셈부르크가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생존전략이지 않았을까.
유럽에서의 성당은 그 도시의 정체성과도 같다. 때문에 룩셈부르크의 대성당도 빠뜨리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이 성당 역시 노트르담 성당으로 우리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모시고 있는 성당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화려 하지는 않지만 경건한 분위기가 기분 좋게 나를 감싼다. 오전이어서 그런지 때마침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성당 안으로 흘러들어온 빛들이 경건함을 더해준다.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아 감사한 마음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작은 봉헌을 하고 초에 불을 밝혔다. 앞으로의 여행이 순조롭기를 바라면서. 물론 같이 간 친구는 한국에서나 열심히 성당을 다니라고 놀렸지만 말이다. 왜 한국에서는 미사에 잘 가게 되지 않는지 나 스스로도 미스터리긴 했다. 웅장한 성당의 내부는 사람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경건함을 깨운다.
룩셈부르크의 명물 중에 하나가 아돌프 대공 시절 건설한 아돌프 다리이다. 노트르담 성당과 그랜드 듀칼 궁전이 있는 구시가지와 현대식 건축물이 즐비한 신시가지를 잇는 유명한 다리이다. 건설 당시 그 거대한 규모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 다리는 험준한 협곡으로 이루어진 이 도시의 과거과 현재를 이어주는 요긴한 다리이다. 과거에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에 바빴던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가 현재는 철강 산업으로 인하여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로 손꼽히는 나라가 되었지만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 모두가 룩셈부르크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아돌프 다리는 룩셈부르크의 과거와 현재를 단단하게 이어주고 있다.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을 꼽자면 벤첼 고리 성벽이다. 성벽 자체가 고리 모양으로 룩셈부르크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벽의 일부인 보크 포대에 걸터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참으로 룩셈부르크는 천연의 요새인 듯싶었다. 성벽 자체도 인간의 힘으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의 험준한 협곡을 적극 활용하여 튼튼하기 만들었다. 때문에 적은 석재로도 두터운 성벽을 만들 수 있었을 거라나 생각이 들었다. 중세 방어전의 핵심은 공성전이었기에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두터운 성벽의 존재가 그 무엇보다 든든한 아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추후 화약과 대포가 발명되면서 유럽이 대부분의 성들이 그 효용성을 잃어갔지만 룩셈부르크의 벤첼 고리 성벽은 자연의 암반을 활용한 성벽이라 거대한 포탄으로도 쉽사리 뚫릴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난공불락이 바로 눈 앞에 있는 기분이었다 과거에는 전쟁에 대비한 든든한 요새였지만 현재는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성벽 주변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도 그만이었다. 바쁜 여행 일정에 잠시 쉼표를 찍는 기분으로 천천히 성벽 주위를 걸으며 룩셈부르크 여행을 마쳤다.
프랑스와 독일 모두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덕에 룩셈부르크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의 음식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에 딱 알맞게 도시 중앙의 기욤 광장에서 장이 열려 그곳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저렴하게 접할 수 있었다. 우선 독일의 명물인 소시지, 그중에서도 커리 부어스트를 맛보았는데 숯불에 구운 소시지의 맛도 풍미가 있었지만 소스로 뿌려져 나온 커리 소스가 매우 맛이 좋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카레맛은 아니고 향신료 맛이 가미된 달짝지근한 소스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으니 갈증가 허기짐이 한 번에 해결되었다. 역시 소시지는 최고의 맥주 안주인가. 오늘만큼은 치킨에 대한 애정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커리 부어스트를 양껏 먹은 후 다음은 프랑스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시장 한쪽에 자리 잡은 크레페 가게에서 바나나를 곁들인 초콜릿 잼 크레페를 주문했다.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보니 우리나라 메밀 전병을 만드는 것과 흡사하다. 역시나 제조자의 숙련된 손놀림이 있어야 균일한 모양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같다. 잘 익은 바나나를 썰어 넣고 초콜릿 잼을 발라 어느새 내 손에 쥐어진 크레페의 달큼한 향기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한입 베어 무니 역시 예상대로 맛있었지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초콜릿 잼을 좀만 더 넉넉히 발라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시골 장의 인심은 한국에서만 기대해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