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것은 마음에 아름답게 갈무리하기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기간동안 나는 한국이라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일년동안 생각보다 한국은 많이 바뀌었고 나는 다시 많은 것을 배워야했다. 자가격리가 풀리자마자 새로운 부서에 인사를 갔고 곧 그동안 놓친 업무상의 변동사항 등을 추적해가며 적응했다. 한국에서의 삶은 모스크바의 그것보다 치열했고 현실에 적응하다보니 모스크바에서의 기억이 먼 옛날의 일처럼 희미하게 느껴졌다.
모스크바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나와 아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리 부부가 러시아에 있는 동안 큰 사고없이 무사히 다녀온 것, 그리고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동안에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건강한 것에 감사했다.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 세웠던 계획들 중 현지 상황과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인하여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아쉬움들 보다 모두가 무사히 평안한 것이 더 중요했다.
한국에 와서 부모님들을 뵙고 그동안 못했던 자식 노릇들을 해갔다. 부모님들, 조부모님들은 그동안 많이 연약해지셨고 이제는 가족에서의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되고 있었다. 꿈을 좇는 청년에서 현실을 사는 어른이 될 시간이다.
모스크바에서의 1년은 여행에 대한 갈증과 아쉬움을 해소시켜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좋은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 더 보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다음 세계여행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인생은 온통 미스테리 아닌가. 언젠가 타고난 성향이 있으니 다시 여행길에 나서기야 할테지만 당장은 모스크바에서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현실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