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37] Ⅱ. 책임에 대하여 ③
2016년 4월 네덜란드 동부의 작은 도시 아른헴(Arnhem),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생명체가 누워있다. 59세 여성 마마. 얼마 남지 않은 존재의 마지막을 차분히 기다리는 모습은 더 이상 생에 미련이라고는 없는 듯하다. 침착하지만 무기력하게, 돌보는 이가 주는 음식엔 고개를 내젓는다.
마마에게 오랜 친구가 문병을 왔다. 1972년부터 우정을 나눴으니 40년 넘는 지기다. 친구의 깊은 주름과 완전한 백발이 그 역시 오랜 세월을 살아왔음을 알려준다. 허공을 응시하던 마마의 텅 빈 눈이 환하게 반짝이고, 얼굴이 미소로 가득 차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랜 친구를 만난 그녀의 활짝 드러난 이는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미소라는 말로는 부족한 파안대소다. 축 늘어졌던 그녀의 팔은 반갑게 친구를 향한다. 와락 끌어안은 굽은 손으로 연신 친구의 이마를, 머리를 쓰다듬는다.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기쁨과 반가움을 숨길 수 없는 표정과 강렬한 사랑의 표현이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한다. 오랜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마마는 며칠 뒤 조용히 숨을 거뒀다.
이 장면에서 너무도 ‘인간적인’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죽어가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침팬지다. 네덜란드 아른헴의 로얄 버거 동물원(Royal Burgers Zoo) 침팬지 콜로니에서 가모장으로 무리를 이끌던 마마가 보인 행동이다. 침팬지와 인간. 종이 다른 두 친구의 뭉클한 포옹 장면은 ‘마마의 마지막 포옹(Mama‘s last hug)(*주 1)으로 알려지며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침팬지 마마는 자신의 다가오는 죽음을 알았을까. 그간 먼저 떠난 친구 침팬지들을 보면서 한 존재의 삶이 끝나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인지하고, 자신의 삶도 끝나고 있다는 인식이 있었을까. 답은 알 수 없지만 음식은 거부할망정 죽음 앞에서 힘껏 사랑을 표현하고 행복한 얼굴을 할 줄 아는 이 동물이 우리와 다른 감정과 사고체계를 갖고 있는 생명체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동물의 죽음 인식에 대해 똑 떨어지는 결론은 없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식이란 주관적이며 동물들의 발화되지 않는 인식을 측정할 도구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단지 행동으로 미지의 세계를 유추해 볼 뿐이다. 동물의 죽음과 관련한 행동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동물사망학(Animal Thanatology)이 길잡이가 되어준다.
어린 자식이나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침팬지나 범고래, 코끼리들의 장례식 등 동물의 죽음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미국과 캐나다 연안의 북태평양 동부 바다에서 포착된 어미 범고래 탈레쿠아(Talhequah) ‘J35’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한 번쯤 인터넷에서 보았을 것이다. 멸종위기 종인 이 범고래는 2018년 7월 출산한 지 얼마 안 돼 새끼가 죽자 17일 동안 아기를 업고 다녔다. 죽은 아기가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주둥이로 들어 올린 채 사투하듯 1600㎞나 되는 거리를 헤엄쳐 다닌 것이다. 때로 이 범고래가 쉬는 동안 친구들이 아기를 대신 떠받치는 모습도 목격됐는데 지극한 모성애라 할만했다.
유튜브에서 ‘Grieving Dolphin’(애도하는 돌고래)을 검색하면 J35를 비롯해 아기 돌고래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는’ 어미 돌고래들을 볼 수 있다. 세계인을 울린 J35의 행동이 아주 드물게 목격되는, 특출 난 행동이 아님을 알게 된다. 주둥이나 등을 이용해 죽은 아기를 가까스로 수면 위에 올려 며칠, 몇 주를 헤엄쳐 다니는 어미 돌고래들이 종종 목격돼 영상으로 남은 걸 보면 죽음에 대한 애도는 돌고래들에게 드물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든다.(*주2)
유인원들에게도 비슷한 관찰 기록이 많다. 죽은 아이가 미라가 될 지경까지 업고 다닌 침팬지 엄마나 엄마 침팬지가 죽고 우울증 행동을 보이다 뒤를 따른 어린 침팬지들의 사례가 연구자들에 의해 보고되고 있다. 유튜브에서 ‘elephant funeral’(코끼리 장례식)을 검색하면 죽은 친구 코끼리를 위해 장례를 치르는 코끼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물 권리선언>, <개와 사람의 행복한 동행을 위한 한 뼘 더 깊은 지식> 등을 쓴 미국의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가 목격한 슬퍼하는 코끼리들과의 만남도 인상적이다.(*주3) 마크 베코프는 코끼리 연구자를 만나러 간 케냐의 삼부루 국립공원에서 첫 번째로 만난 야생 코끼리 무리에게서 느낀 침울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축 늘어진 코끼리들은 고개를 떨군 채 초원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침울함은 인간에게 슬픈 감정을 전염시킬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곧 얼마 떨어진 곳에서 만난 두 번째 코끼리 무리는 기대한 야생 코끼리의 모습 그대로 한가하고 밝았다. 그의 의문은 코끼리 연구자 친구를 만나고서야 풀렸는데 첫 번째 코끼리 무리 우두머리가 최근에 죽었고, 그 이후 애도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까운 개체의 상실에 대한 진지한 반응, 즉 망자에 대한 동물들의 애도가 죽음 인식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또한 동물은 종에 따른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죽음 인식과 대처를 일반화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다만 동물들의 애도 반응은 영장류, 고래, 코끼리 같은 최상위 지능을 가진 동물뿐만 아니라 조류, 설치류 등에게도 나타난다. 슬픔을 느끼고 나아가 애도하는 것은 일부 동물이 보이는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동물의 보편적인 정서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주1 : 프란스 드 발의 책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의 원제목이기도 하다. 마마에게 크나큰 환대를 받는 오랜 친구는 동물 행동학자 얀 반 후프로 이 동물원의 침팬지 콜로니를 만든 이다. 프란스 드 발 역시 1974년부터 이 콜로니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명저 ‘침팬지 폴리틱스’를 썼다
*주2 : https://www.youtube.com/watch?v=ymgfO_xckLs&t=24s
Grieving Dolphin Carries Dead Calf Around For Days, Seen During Dana Point Whale Watching Safari, 2013년 3월
*주3 : 마크 베코프가 2020.2 심리학 전문 매거진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에 기고한 글 ‘What Do Animals Know and Feel About Death and Dying?’에 소개된 일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