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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Oct 02. 2022

<집사의 일기> 다시 쓰는, 내 사랑 미미에게-3

[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43] Ⅱ. 책임에 대하여 ⑧끝

아이들이 오고 매우 좋은 것은 미미에 대한 좋은 기억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미미와 아이들의 생김새를 비교했고, 하는 짓을 견줬다. 홍모녀에게 미안하지만 난 우열을 가릴 수밖에 없다. 얘들아 미안, 미미 언니가 정말 정말로 예쁜 얼굴을 가졌거든. 황희 정승도 어쩔 수 없으실 거다.


미미란 내게 아름다움, 귀여움, 모든 좋은 것들의 절대적인 기준이 됐다. 떠난 고양이에 대한 신격화(?)가 지나친가 싶었는데 아이들을 보면서 느낀다. 역시는 역시, 미미는 미미다. 우주 최고 예쁜이, 너는 내게 영원히 하나뿐인 최고. 누구도 너를 대신할 수 없다는, 익히 알던 참인 명제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비교는 나쁜 것으로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 않다. 홍시와 홍주는 미미를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해서도 안 되는 온전한 존재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하는 짓도 무척이나 다르다. 개라는 종과 비교해 고양이의 특징을 일반화할 수 있지만, 같은 고양이자 동일 품종인 미미와 홍시, 홍주는 너무나 달라서 어떻게 일반화가 안 된다. 그렇다. 홍시는 홍시, 홍주는 홍주, 그 자체로 훌륭한 고양이들을 내 가족으로 맞았다.


아이들 하는 짓이 갈수록 예쁘긴 하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내 전부로 사랑하지 않겠노라 나는 굳게 다짐했다. 예뻐하고 귀히 여기겠지만 조금은 무심한 보호자가 되려 애쓸 것이다. 미미에겐 엄마라고 했지만, 아이들에겐 의식적으로 언니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너무 좋아하고 의지하고 요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이 아이들에게도 더 좋을 것이다. 어찌 됐든 나는 너희들의 영원한 가족이자 최선을 다 하는 보호자일 테니까.


미미와 나는 서로에게 하나뿐이었다. 우리 둘이 정말이지 좋았고 행복했지만, 아이가 별이 되고 너무나 힘들었다.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미미에게 다른 애착 관계가 있었다면 훨씬 묘생이 풍성했을 것이다. 모녀를 함께 데려온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 내 가족이자, 고양이 가족의 삶을 모두 주고 싶어서.


모녀 사기단이 내 삶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이 털북숭이들은 못 생기고 부실한 데다 여기저기 하자가 있지만 상당히 귀엽다. 홍주는 이목구비가 정말 멋대로인데, 특히 부정교합으로 왼쪽 아랫니가 항상 드러나 있다. 늘 지기만 하는 악당 같은 우스꽝스러운 정서를 풍기는 얼굴이다. 너구리 꼬리는 과연 일품인데, 멀리서 부르면 총총 달려오는 꼴이 수직으로 선 먼지떨이가 날으며 춤추는 느낌이 든다. 그때마다 난 웃음을 참고 꼬리괴물이라 부르며 핀잔을 준다.

미미 동생 홍시 홍주

표정에 생기라곤 없던 홍시는 어느덧 귀티 나는 부잣집 며느리의 아우라를 뿜으며 사기를 치고 있다. 새초롬한 눈매로 과거를 묻지 마세요, 하는데 모른 척 하기엔 너의 앞발과 몸통이 몹시 두툼하다. 그리고 매사에 시큰둥한 줄 알았더니 굉장한 흥부자 사냥꾼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홍주랑 레슬링도 잘해준다. 처음엔 해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홍주를 먼저 덮치며 내빼는 것을 몇 번 목격했다 이노옴. 집사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쌓이면 제법 스윗할 것 같다. 스킨십에 질색하는 아이를 이틀 전에는 급기야 잠깐 안는데 성공. 여사님, 홍여사, 엄마아기 등으로 부른다.


서운한 점도 있다. 무엇보다 둘 다 “냐옹”에 몹시 인색하다는 것. 하루에 한 번 목소리 듣기가 힘들다. 엄청난 이야기꾼, 대답쟁이였던 미미와 다르게 모녀는 말이 없다. 내 인생의 아무 말은 팔 할이 미미 덕분이었는데. 과묵한 고양이라니 아무 말이 다 혼잣말이라 민망하다.


 '모닝 냐옹 서비스'의 부재도. 미미는 배고픈 아침 정말 대단한 집념으로 집사를 일으켜 세웠고, 나는 그 창의적이고 멍충미 넘치는 일련의 행동을 모닝 냐옹 서비스라 부르며 즐겼다. 냥냥 목 놓아 울고, 긁고, 때리고, 급기야 집사의 코나 턱을 깨물고 도망가는 그 잔망미.


이 모녀들에겐 양반의 피가 흐르는지, 내가 늦잠을 자 분명 배가 많이 고플 아침도 너무 점잖다. 냥냥 항의가 없는 것은 물론 침대로 올라오는 일도 잘 없다. 일찍 눈이 떠진 어느 날, 누운 채 기색을 살피니 홍시가 침대 아래서 식빵 자세를 하고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맹렬한 눈빛, 아 한참 저러고 있었구나 느낌이 왔다. 벌떡 일어나 점잖게 쓰다듬는 것으로 화답했지만, 그 침묵시위가 의외로 귀여워서 몰래 웃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집사라 자부했던 나는 홍시로부터 겸손을 배우기도 했다. 난생처음 고양이 발정을 겪으면 서다. 암고양이의 발정이란 무엇인가? 집사가 팬더가 되는 것이 발정이구나! 나흘의 발정 기간, 관짝에라도 들어가 몇 시간만 조용히 자고 싶었다 정말. 미미는 내게 오기 직전 중성화를 했는데, 저 힘든 것을 우리 미미도 오래고 겪었겠구나 짠하기도 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시절의 미미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조금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하릴없이 속상했다.


그리고 나의 가장 큰 기쁨과 슬픔, 우리 미미의 내가 모르는 시절을 아이들을 통해 떠올린다. 미미는 내게 만 다섯 살이 조금 넘어왔는데, 어릴 때 사진이나 영상 등을 전혀 못 받았다. 아가였던 우리 미미도 어린 고양이 홍주처럼 통통 뛰어다녔을까. 커다란 눈을 굴리며 강아지풀 따위에 볼 품 없는 수염을 부르르 떨었을까, 생각만 해도 광대가 올라간다. 우리 미미가 홍주 같았다면, 저 꼬리괴물도 자라 미미 같이 좋은 따봉 고양이가 될까.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어깨 고양이 미미를 흉내 내 홍주를 어깨 위에 올리고 콧등을 시큰거리기도 한다.

 

홍시야, 홍주야. 나란 집사는 미미가 준 선물이야. 미미가 가르쳐 준 모든 것, 내가 배운 많은 것을 너희에게 줄 거야. 아주 능숙하게 약이나 유산균을 먹이는 내가 한때 알약에 쩔쩔매던 바보였단다. 너희에게 하듯 미미에게도 자주 츄르를 줬어야 하는데, 살살 달래 이를 닦였어야 하는데, 짧은 네발로 걷는 너희들을 위해 바닥 청소를 깨끗이 하고, 화장실을 더 자주 치워줄 것을.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 자식을 낳을 생각이 없는 나는 천륜으로 이어진 동물 가족이 곁에 있는 것이 몹시 흥미롭다. 이 친구들은 내게 가족, 관계, 삶으로 향하는 더 큰 감수성을 선물할 것 같다.


사람들이 대체로 피로 이어진 가족을 일구고 사는 것과 달리 동물들은 거의가 혈연과 떨어져 인간과 맺어진다. 나는 엄마와 딸 고양이가 이 덥고 습한 여름 부둥켜 앉고 서로 그루밍하는 것을 보는 게 정말 신기하다. 푹푹 찌는 날 캣타워 꼭대기에서 꼭 붙어 집사를 소외시켜도 좋다. 행복한 고양이도 좋지만, 행복한 고양이'들'은 더 좋다는 것을 두 아이들로부터 배운다.


미미 너에게도 고양이 가족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너무 늦게야 알았다. 엄마가 네 자매 토미를 만난 것을 알고 있지? 정말이지 멋지고 귀여운 토미였어. 수다 유전자를 공유한 대단한 냥냥꾼인 미미와 토미, 너희 자매가 함께 냥냥거리며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7월 28일, 내 예쁜이가 별이 된 날. 너울거리는 마음이 범람하지 않도록 평소보다 바쁜 하루를 보냈다. 미미를 아꼈던 친구들에게 인사를 부탁하고, 미미 뒷담화로 제법 웃기도 했다. 그렇게 종종 거리다 귀가하니 주린 고양이들이 조용히 종아리 사이를 바쁘게 맴돌고, 무성영화 배우처럼 눈을 반짝인다. 서둘러 배불리 먹인 아이들을 미미에게 인사시키고, 미미에게 초를 켜주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하고, 슬프고 슬펐지만 모든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역대 가장 길었다는 장마가 끝나고 있다. 내가 좋아하던 여름과 비는 이제 가장 소중한 상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무척 힘들게 지나온 터널의 끝에 여름과 비의 고양이들이 다시 있다. 그것도 두 마리나. 한반도를 떠나는 질긴 비구름이 내 소중한 슬픔까지 거두어 가진 않겠지만, 새로운 계절은 조금은 다를 것이다. 따봉고양이의 바통을 이어받은 친구들이 힘찬 우다다를 준비하고 있으니까. 미미와 함께 빛나던 여름과 청춘이 끝난 자리에, 어느덧 새로운 시간이 달리고 있다. 미미야 사랑해, 고마워.


20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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