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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Apr 11. 2024

봄 햇살처럼 반짝 나타난 옛 제자

동네 한의원에 예약한 진료가 끝나는 대로 남편과 만나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은퇴한 우리는 북적대는 시간을 피해 이르거나 늦게 식당을 찾는다.


점심으로서는 좀 른 시각인데도 젊은 남자가 줄을 서고 있었다. 내리쪼이는 햇볕을 피해 식당 입구 건너편 그늘진 담을 따라 나란히 서 있는 남자들 뒤에 우리도 줄을 섰다. 식당 입구에서 떨어진 곳이라 "여기 줄 서신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기다리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둘씩 셋씩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 차례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식당 입구로 걸어오던 여자 군인과 남자가 그냥 식당 안으로 쑥 들어갔다. 아마도 식당 입구 건너편에 서 있는 줄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 앞에 서 있던 남자들은 식당으로 들어간 두 사람을 황급히 따라가 자기네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도 뒤따라 들어는데, 여자 군인이 보고 "xxx 아니세요?" 라며 반갑게 인사건넸다. 군복은 낯설지만 얼굴은 낯익다. 우리 과 졸업생이다. 오래전 가르쳤던 학생을 이렇게 느닷없이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다! 너무 반가웠다.


식당 주인은 구석에 있는 빈자리를 가리키며 남편과 내게 앉으라고 했다. 제자 부부는 멀리 떨어져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정답다. 제자는 꾸준하고 성실학생이었다. 제자의 남편도 인상이 선하다. 우리 과는 어학 계열이었지만 여학생들 중에 군인이 된 졸업생몇 명 있다. 군복을 입은 씩씩한 제자가 대견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밥을 먹다 말고 의자에서 일어나 서둘러 카운터로 가서 4인분 식사비를 지불했다. 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주고 싶었다. 7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식당 주인이 식사비를 내느냐고 물어 오랜만에 만난 제자라 반가워서 낸다했다. 어느 학교냐고 물어 말씀드리니 그 학교 출신 군인이 많다고 했다. 그런가?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군사학과가 있으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학교에 대해  알고 있는 식당 주인에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식당 주인은 제자 앉은 쪽을 쳐다보며 제자가 소령이라고 알려주었다. 소령이 되려면 군대에 한 10년은 있어야 한다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군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군인에 대해 세세하게 아시는구나.


밥을 먼저 먹고 일어난 제자 부부가 우리 자리로 와서 얼마 전 학교에 갔는데 내가 은퇴해서 보지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서울에 살면서 게다가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 고속버스로는 두 시간, KTX로는 1시간 반 넘게 걸리는 모교를 방문을 했다니 그 정성이 고맙다. 아직도 20대 초반 학생으로만 생각되는데 중학생, 초등학생을 둔 두 아이의 엄마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다. 군대에서 같이 근무하는 동기들과 함께 연락 주겠다며 제자 부부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제자가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런데 떠난 줄 알았던 제자가 어느 사이 따뜻한 생강차 두 개를 사서 식당을 막 떠나려는 우리 앞에 내밀었다. 내가 그랬듯이 제자도 오랜만에 만난 내게 뭔가를 주고 싶었나 보다. 


벤치에 앉아 제자가 사준 따뜻생강차를 마신다. 달콤하고 맛있다. 어깨 위로 떨어지는 봄 햇살도 밝고 따스하다. 살랑이는 나뭇잎도 싱그럽다. 모든 게 다 감사해지는 4월의 행복한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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