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가끔씩 '시니어' 클럽 공지가 붙는다. 지금까지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겨 흘낏 쳐다만 보고 눈길을 돌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 시니어'를위한 요가 수업 공지가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마침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아파트 소장에게 '영 시니어'와 '시니어'는 다른 모임이냐고 물었다. 젊은 여자 소장은 웃으며 같은 모임이라고 했다.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영'(young)을 '시니어' 앞에 추가했다며수업에오라고 나를 부추겼다. 걷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그렇지 않아도 근력운동을 시작하고 싶었던 참이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요가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 아침 8시 반부터 9시 반까지다. 수업 끝난 후 하루를 온전히 다 쓸 수 있어 수업 시간도 마음에 들었다.
목요일 아침, 서둘러 아침을 먹고우리 동 바로 옆에 있는 1층짜리 경로당으로 향했다. 좀 이른 시각이지만 세 사람이 벌써 와 있었다. 다 처음 보는 분들이다. 그중 한 젊어 보이는 분은 나랑같은 동에 산다고 했다. '영 시니어'라고 해서 용기를 내 처음 와봤다고 했다. 기존 회원들은 젊은 사람이 둘이나 왔다며 반갑게 우리를 환영했다. 세는 나이로 올해 70이 된 나는 어디를 가도 이제는 나이 많은 축에 속하는데, 나한테 젊다고 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회원수는오늘 처음 온 우리 두 사람까지 모두 여덟 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시 나이가 중요하다.회원들의 나이가 벌써 다 파악되었다. 나이순으로 따지니나는 여덟 명 중 여섯 번째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이 다섯 명, 나보다 어린 분이 두 명이다. 나는 젊은 그룹에 속한다. 제일 나이가많은80대 회장님은 넘어져서 운동은 못 하고 가끔씩 응원차 들리신다고 한다. 에너지 넘쳐 보이는 60대 중반 총무가 내민 용지에 이름, 동호수, 핸드폰 번호를 쓰는 것으로 회원 가입은 간단하게 끝났다.
수업은 요가를 한다는 공지문과는 달리체조와 라인댄스 위주로 진행되었다. 몸치인 나한테는 요가보다 체조가 오히려 좋다. 사실체조도따라 하기가 버겁다.왼쪽 발을 오른쪽 다리 위에 얹어 놓고 서 있는 동작을시작하자마자 나는 균형을 잃고 털썩 발을 내려뜨렸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나보다 연배가 많으신 분들은 우아하게 오래 서 있는다. 스텝을 외워야 하는라인댄스는 더 어렵다. 노래까지 나오면 망연자실 그대로 서 있게 된다. 오늘 처음 온 우리 동에 사는 젊은 분은 나랑 달리 센스 있게 잘 따라 한다.
"오른쪽 팔을 올리고..."라고 말하면서 선생님은마주 보고 있는 학생들이 따라 하기 쉽게 왼쪽 팔을 올린다. 말과 행동을 반대로 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베테랑 선생님은 고맙게도 학생 눈높이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회원들은오랫동안 운동을 해서인지모두 잘한다.나만 못한다. 몇몇분들은 인근 체육관에 가서 수영 등 다른 운동도 한다고 한다. 뭐든지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체조도 라인댄스도 유연하게 잘하는 건 꾸준한 노력의 대가다. 초보인 나는 그냥 따라서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큰 운동이 되는 것 같아 빠지지 않고 수업에 나올 예정이다.
운동이 끝난 후,시간이 되는 사람들은잠깐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분홍 티가 돋보이는 멋쟁이 회원님이 손수 만들었다는 전을 나눠주셨다. 아침에 참석하기도 바쁜데 언제 음식까지 준비하셨는지 대단하다. 이분은 80세라고 한다. 지금부터 나도 열심히 운동하면 10년 뒤 이분처럼 건강하고 활기차게 나이 들 수 있겠다는생각을했다. 회원들을 둘러보며 3년 뒤의 나, 8년 뒤의 나, 10여 년 뒤의 내 모습을머릿속으로그려보았다. 나보다 젊은 두 사람은 나까지 포함한회원들 모습에서자신들의 미래 모습을 보고 있을 것 같다.
'영 시니어' 클럽에 참석해 운동으로 건강을 다지고, 나보다 연배가 많은분들을보며 미래의 내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엘리베이터에서 오는 금요일에 모임이 있다는 공지를 보았다. 이제 '영 시니어' 공지를 보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열심히 읽는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 회원들이 동네 식당에 가서 점심을 같이 한다고 들었다. 이번 금요일에 마침 약속도 없으니 참석해야겠다.